삶과 나/미술 관련 27

김환기의 작품세계 감상

** * * * 김환기(1913~1974)화백의 작품세계는 그가 1934년 아방가르드 양화연구소를 설립하여 추상미술운동참여하고, 도쿄 니뽄대학의 미술학부및 동 대학원 미술학 석사과정을 마친 1936년, 긴자 기노구니아 회랑의 4회 전시회를 비롯, 1937년 도쿄 아마기 화랑의 제1회 개인전을 개최한 일 그리고 귀국 후 해방 전후 서울대 미대교수로 제직하며 신사실파적 뉴모더니즘운동을 전개하뎐 시기를 포함, 즉 1930년대 본격적으로 규비니즘적 순수조형을 탐구하며 추상미술의 길에 들어서 귀국하여 해방 전후 1948년 신사실파 그룹을 조직하여 활동했던 기간을 화백의 초기미술 수업시대로 보고 있으며 대표작으로 향(1937). 혼도(1938) 등이 있다. 파리체류(1956~58) 3년을 포함하여 전통적인 한국의 ..

겸재 정선의 경교명승첩

** * 겸재는 영조16년(1740년) 경신년 겨울 65세 나이에 양화나루 건너에 있는 양천현의 현령(종5품)으로 승진 발령된다. 양천은 지금 강서구 가양동으로 서해의 세곡선이 오르내리는 경강의 인후에 해당하며 한성부와 강화를 연결하는 요충지였다. 뿐만 아니라 삼각산으로부터 북악산 인왕산으로 이어지는 화강암봉들과 남산 그리고 한강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펼쳐져 天下絶勝을 만들어내고 있어 그 내력을 일목요연하게 조망할 수 있는 곳은 양천만한 곳이 없다. 지금도 한강하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아득하게 넓어지는 강폭을 앞에 두고 바라보면 그 곳이 서울 북산을 관조하기에 더 없이 좋은 장소임을 알 수 있다. 사생을 위해 승선하여 경강을 오르내리는 것 외 양천현아 뒷편 나지막한 궁산에 오르면 눈에 담기는 풍광이 그대..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 ) 감상

** * 소상팔경도 연원 동양의 전통적인 자연관과 산수사상 그리고 이상향에 대한 관념을 가장 잘 보여 주는 미술 부문인 팔경도의 원류는 11세기 후 반경 중국 북송대의 문인이자 화가였던 송적(1015~1080)이 그려낸 작품인 ‘소상팔경도’에 두고 있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문인 사대부들이 중국보다 더울 활발하게 그려낸 소상팔경은 초기에는 중국의 이념화된 정형산수를 기조로 삼았는데 그 대표적인 화제가 소상팔경이었다. 이러한 소상팔경도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고려조 명종(재위1170~1197) 때로 명종은 고서화 수집과 감상을 즐겨하여 여러 문신들에게 소상팔경을 소재하여 당대의 유명 화가와 문인에게 그림을 그리고 시를 짓게 했다. 화가로는 이광필, 시로는 이인로, 이규보, 이제헌 등의 소상팔경 시가 있다...

시의도

** * 고대 그림에는 함축적이고 상징적인 묘사가 많습니다. 이런 그림에 대해 신화와 전설 그리고 종교상의 교리에 비추어 그림을 해석하는 것을 도상학적 이해라고 한다. 그림 바깥에 있는 문헌 지식이나 고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입니다. 근세 이후에는 더 이상 이런 그림을 그리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방식이 그림은 설혹 그렸다고 해도 수가 얼마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근세 이후 동양에서 문자와 관련해 해석학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그림이 다시 등장한다. 이러한 현상은 그림을 그린 주역이 문인이었다는 사실과 관련이 다분하다. 동양미술사를 보면 송대 이후 문인들이 그림 제작에 나서서 회화의 주도권을 장악한다. 이른바 문인화가 유행하게 된 것이다. 이는 문인들이 그림을 제작하고 감상하는 주역이 되면서 화제가 그림에 들..

낚시 그림

** 조선의 사대부들은 인생 후반전에는 세상의 고단함과 갈등으로 부터 떨어져 나와 자연에 묻혀 심신을 수양하며 살아가는 강호한정과 안빈낙도의 삶을 그들의 꿈으로 그렸다. 강호안정과 안빈낙도의 삶은 그 말그대로 전원에서의 안분자족하는 생활이다. 선비들의 벼술을 버리고 귀거래사를 꿈꾸웠던 신선과 같은 은밀한 어부를 인생의 최종목표로 삼는 물아일체의 삶을 소망했다. **

창덕궁 후원

** 창덕궁은 조선의 3대 임금, 태종 5년인 1405년에 경복궁의 이궁으로 세웠다. 지금의 창덕궁이 있는 향교동에 이궁을 짓도록 명한 것은 법궁인 경복궁을 건설한지 10년 만의 일이었다. 창덕의 의미는 “덕의 근본을 밝혀 창성하게 하라.” 뜻 '인군은 창덕에 힘써야한다. --이에 명하노라, 창은 창하게 성은 성하게 하라는 뜻이니 , 덕으로 이름함은 덕의 근본을 밝히고 성을 본받고 덕에 힘쓰라, 덕에 힘쓰면 국운이 길고, 국운이 길려면 오직 덕에 부합해야 한다.' 창덕궁은 경복궁에 비해 왕의 의도데로 설계되어 후원을 비교적 넓게 만들었는데 왕권이 강했던 세조 때에는 후원을 2배 정도 더 확장했다고 합니다. 지형의 조건을 살려 궁궐 건물을 앉혔고, 나중 동쪽에 창경궁을 생활의 공간으로 세워 확장하여 사용하..

경회루와 향원정을 본다.

*** 경회루 경회루는 큰 연회를 베풀거나 외국사신을 접대하던 곳으로 1867년에다시 지은 누각이다. 옛날에는 높은 2층 누마루에 올라 서쪽으로 인왕산,동쪽으로는 궁궐을 아름다운 경관으로 감상했고, 주위의 넓은 연못에서뱃놀이를 했던 곳이다. 2층 누마루는 3겹으로 깔았다.중심 3칸은 천지인, 그 바깥 12칸은 1년 열두달을, 가장 바깥의 24기둥은24절기를 의미하는 등 동양적 우주관을 보여줍니다.현재의 경회루 연못은 서남쪽이 개방되어 쉽게 접근할 수 있다.인공과 자연의 어우려진 아름다움을 누구나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누마루에 올라 대궐 전경을 눈 아래로 굽어 볼 수 있다.그러나 옛날에는 높은 담장으로 둘려 싸여 임금의 초대 없이는 감히 넘볼수 없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즉 선택받은 사람만 들어갈 수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