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나/나의 이야기

강씨봉 백설이 봄으로 흐른다.

haanbada 2023. 6. 13.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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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능선을 상큼한 바람이 가르지른다.

시원한 화음으로 폐부를 씻어주는 봄바람이 분다.

계곡 버들가지에 은빛 생기가 돌고 서어나무의 가지 끝에서는

발그레한 혈색이 돈다.

겨우내 잔뜩 물이 오른 생강나무의 꽃눈들이 금방이라도 망올을 터트릴 것 같다.

능성에서 조망하는 풍경 속의 숲은 이제 붉은 혈색이 감도는 회춘이다. 

 

                      -   2018. 3. 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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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봉국 철원성에 대한 연구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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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성은 제대로 연구하기가 쉽지 않다. 단순히 전방에 위치한 정도가 아니라,

군사분계선이 철원성 한가운데를 지나면서 성 전체가 비무장지대 안에 절묘하게 위치해있다.

궁예가 세웠던 철원성(궁예도성)이 남과 북 모두가 갈 수 없는 DMZ(비무장지대)에 위치해 있고 도성의 

한가운데는 남북의 군사분계선이 지나고 있기 때문이다.

철원성은 흙과 돌을 섞어 만든 토성이다. 외성 12.5km, 내성 7.7km, 궁성 1.8km  29만평 규모로

도읍으로 삼았던 905년부터 918년까지 태봉의 중심지 역할을 담당했다.

궁예가 꿈꿨던 국가 운영체계와 사상적 기반, 당시 주민들의 삶의 흔적 등이 남아있을 것으로 보이는

철원성은 궁예는 영원한 평화가 깃든 평등세계를 꿈꾸며 이곳에 도성을 조성했다.

일제 강점기부터 조금씩 조사된 결과론 외성, 내성이 있었다는 걸 발견했다.

이후 내성 내에 궁성이 또 있다는 것 또한 발견됐다.

또한 주요 특징으로 당나라 장안의 모습을 본딴 사각형 구조였으며 지형상 왼쪽 성궐이 조금 삐뚤어져 있다.

당 장안성 구조를 수용한 것은 발해의 상경성과 비슷한 모습을 가지게 했다. 

외성 > 내성 > 궁성 순으로 지은 것 또한 동일하다.

후에 고려 만월대도 같은 방식으로 성을 쌓았다 한다.. '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강씨봉에 근무할 때 방문객에게 자주 올리던 말이었다. 

저 역시 강씨인지라 여기저기 자료도 많이 찾아봤다.

평안도에는 왕씨 일가 외에도 무인 집안으로 강씨가 있었다.

왕건이 반란을 일으키고 궁예의 태봉국을 무너뜨렸을 때 왕후 강씨는 지금의 강씨봉으로

두 아들을 데리고 피난을 왔었던 것같다.  직접 옛 집터의  주춧돌들도 살펴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뜻 좋은 역사사지인데도 발굴하려는 노력은 전혀하지않았다.

사실 철원도 6.25가 나서 폐허가 되기 전에는 쌀 주산지일 정도로  넓고 살기 괜찮은 고울 같았다.

왕건은 개성 송악으로 수도를 천도하기전  고려를 세우고도 철원에 1년간 있었다고 한다.

2017년 겨울 강씨봉을 찾아 갔을 때도 산속 구비길과 따라 흐르던  가평천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강씨봉에 오르면 서북쪽으로는   암소갈비가 유명한 일동. 이동면이 위치하고

북쪽으로 산정호수 너머로는 삼부연폭포가 있는 철원이고 북동쪽으로는 있는 봉 높은 화악산

너머로는 물 좋고 마당쇠가 살이 통통쪄서 맛좋은 백숙가게가 유명한 백운계곡이 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아침에 봉레 오르면 전방 전차부대에서 시동거는 계곡따라 들려오는 괭음

세월이 참 빠르게 흘러 지나가는 것 같다,

언제 한번 방문할 예정이다.   

그 쪽에는  화가 한 분과  한 때 친했던 갑짱 시골 친구도 살고 있다. 만나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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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이 보인다.

 

 

 

 

 

 

지금 보이는 덩굴나무가 다레나무이다.

 

 

 

 

 

 

 

 

 

 

 

 

 

 

 

 

 

 

 

 

 

 

 

 

여름 피서객용 가시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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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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