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나/나의 이야기

콩쥐 팥쥐 이야기 재고

haanbada 2023. 6. 6. 00:19

**

**

조선 중엽 전라도 전주 부근에 사는 퇴리(退吏) 최만춘(崔滿春)은 아내 조씨와

결혼한 지 20여년 만에 콩쥐라는 딸을 두었다.

불행하게 콩쥐가 태어난 지 100일 만에 조씨가 병들어 세상을 떠나자

최만춘은 살림과 어린 콩쥐를 위해 과부 배씨를 후처로 맞아들였다.

계모는 자기의 소생인 팥쥐만을 감싸고 전처 소생인 콩쥐를 몹시 학대하였다.

나무 호미로 산비탈의 돌밭매기, 밑빠진 독에 물붓기, 하루 만에 베 짜고

곡식 찧기 등의 도저히 불가능한 일들을 콩쥐에게 마치 하인 부리듯 시켰으나

그때마다 검은 소 . 두꺼비 . 직녀선녀 . 새떼 등의 도움으로 콩쥐는 맡은 일을

해결하였다. 뿐만 아니라 직녀선녀가 준 신발의 인연으로 감사와 혼인하게 되었다.

그러나 콩쥐는 팥쥐의 흉계에 넘어가 연못에 빠져 죽게 되고,

팥쥐가 콩쥐 행세를 하였다. 그 뒤 연꽃으로 피어난 콩쥐가 계속 팥쥐를 괴롭히다가

마침내 감사 앞에 나타나 자초지종을 고하였다.

감사가 연못을 물을 퍼내 콩쥐의 시신을 건져내니 콩쥐는 도로 살아났다.

감사는 팥쥐를 처단하여 배 씨에게 보냈고, 이를 받아본 계모는 놀라자빠져 절명했다.

**

올해는 예년보다 좀 일찍 한가위가 찾아오고 주말을 낀 연휴기간 중 날씨도

맑다고 하니 시골에 가서 모닥불 피어 놓고 둘러 앉아 막걸리에 두부김치를

곁들여가며 보름달을 보았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한가위를 앞두고도 우리 생활상을 보면 양극화 심화 때문인지 예전과 달리

재래시장도 한산하며, 들뜬 명절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오늘은 서두에 올린 조금은 낮서른 우리의 설화인

“콩쥐밭쥐 이야기”을 가지고 생각해 보고 싶다.

본인이 최근 읽은 스토리가 대창서원본(1919년) 것인지 혹은 태화서관본

(1928년)인지는 모르겠으나 인터넷 블로그에 올려주신 내용이었다.

 

 

설화는 말 그대로 구전되어 내려오는 이야기인 구비문학이 일종이다.

설화는 그 발생이 자연적 집단적으로 집단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함으로

어떤 독창적인 형식 보다는 전형적인 형식창출에 기여하여 그런 형식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문학과 예술을 탄생시켜 사회집단의 미적욕구를 만족시킨다.

 

즉 형식논리에 의해 진행되지 않고 역동적인 비틀림, 반전, 터무니없이 비약된

그러나 감각의 논리로 구체적인 소재를 논리적으로 결합을 통해 실존에 대해

통찰하게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굳이 설화를 신화, 전설 , 민담으로 나누고는

신화는‘ 신성성과 진실성 , 신성한 시공간 , 신성한 주인공’을,

전설은 ' 구체적인 시공간 속의 진실성 , 특정 사물 '을

민담은 ' 불특정 시간과 장소, 흥미 교훈성 '을 준다는 믿음이나 인식의

정도에 의거 구분하는데 사실 분리하기 애매한 것도 많이 있다고 본다.

  

전설이 이야기의 특징으로 지역성과 역사성을 꼽는다면 한 고을의 내력,

짙은 향토적 애향심을 일으키는“ 콩쥐밭쥐”이야기는 전설의 범주에 속하나

스토리의 주제는 소통의 단절이라는 아포리아다.

신화에서 다루듯 삶의 난제(아포리아 aporia)의 해결 전개 방식은 다양하나

영의 영역과 현실과의 단절을 관념적으로 해결책을 보이려 한다.

 

이야기는‘ 조선중엽 전주 서문 밖 30리 부근에 사는 퇴리 최만춘’이라고 시작된다.

실제로 김제시(행정구역 바뀜으로) 금구면 일대 둔산마을에는 최씨 집성촌이 있다.

그리고 조씨부인의 집성촌은 인근 하천리에, 배씨부인의 집성촌은 상리에 있다고 한다.

둔산이 와우형( 소가 옆으로 누어있는 모습, 검은 소가 등장)으로 마을을 감싸고 있고

신임 원님이 넘던 두월천이 마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고, 연꽃이 피어났던 두죽제(

팥쥐방죽)같은 연못이 많이 산재해 있다.

어쩌면 마방자리(마굿간 딸린 주막)가 있는 앵담마을에 역참이 존재했다고 하는 것을

봐서는 교통의 요지에 위치한 구암·둔산마을에 머물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던 이야기가 이곳에서 시공간을 초월해서 향토적으로 재 각색되었다고 본다.

  

불공과 적선으로 20년 만에 한 옥녀를 낳았으니 이름을 콩쥐라 지었다.

병사한 정씨부인 대신 재취로 들어온 과부 배씨에게는 팥쥐라는 딸이 있었고

“두 모녀는 인물은 반반했으나 심보가 매우 사악했다”라고 했다.

그래서 팥쥐모는 전처의 현신인 콩쥐에 대한 경계심으로 인해 끊임없이 가학성으로

표출되어 난제로 등장하게 되고 혈연관계인 가족 공동체는 심한 갈등관계에 빠진다.

  

신화는 상호관계의 균형이 심하게 깨진 것에 대해 대칭성을 회복시키는 노력으로

감각적인 사실과 상징적인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양의성이 있는 감각소재를

이용해 심오하게 사고하고 변증법적 논리로 대담하게 이해에 도달시키려 한다.

 

 

 

전통적으로 콩과 팥은 제의에 쓰이는 음양적인 성격이 모호한 곡식이었다.

콩의 재배연대는 기원전 4000년 후기 시대에 해당되며, 1997년 대동강 산석구역

표대유적에서 발견된 탄화된 콩은그 재배연도가 BC3000년경 것이라 한다.

참고로 고대그리스와 로마에서 쥬피터신에게 바치는 제의나 망자를 위한 제의에는

반드시 주부가 콩을 삶아 재단에 올려야만 했다고 한다.

액막이 용인 팥도 중국과 일본에서는 정월보름에 꼭 팥죽을 먹었으며 ,

우리나라도 매년 동짓날 팥죽을 쒀서 먹거나 이사 후에 끊여먹고 있다.

 

‘콩깍지가 눈에 씌었었다’가 남녀의 성적관계와 죽음의 이미지로 연결되는 것은

콩깍지는 남자의 고환을 상징하고, 여자의 경우 음순에 해당되는 양의성을 보이고

콩은 보다 남성적인 형태나 특징을 가진 음핵의 상징으로 , 여성안의 남성이고

남성안의 여성으로,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감각적 상징의 논리에 있다

콩은 곡류이기 전 삶과 죽음에 가까운 영역의 먹을거리로

에로스적인 무의식의 힘(마나)을 소유하는 것으로 파악되어지는 것이다.

 

성격이 모호하고 음·양적이며 수상한 소재로 제비를 다른 예로 들어 보면

북반구에 속하는 유럽지방에서는 겨울철에 제비는 수중세계인 호수나 늪에서 

동면을 하는(어두운 계절을 나고) 거식성 새로 생각되었었고, 계절이 바뀌어

여름이 되면 먹구름과 천둥 속에서 어느 순간 나타나 밝은 빛과 건조한 계절을 

주는 상징적인 양의적인 새로 인식되어 왔다고 한다.

 

  

콩쥐는 진정성을 다해 가사를 돕고 , 계모의 말에 순종하는 아름다은 영혼의

소유자로 나온다.

이질적 요소의 등장으로 지위를 상실하고 균형이 심하게 균열된 것을 조정하기

위해 마을 수호령인 검은 소(신의 선물)가 등장한다.

 

 

이어서

당연히 받아야 할 접대의 주인공( 공통적으로 부엌데기 )들은 초자연적인 힘에

의하지 않고는 풀 수 없는 과제를 푸는 과정이 전개된다.

“콩쥐팥쥐” 이야기애서 과제와 해결 협력자 구도를 도식화하면

밑 빠진 독 채우기 - > 수백년 묵은 두꺼비

벼 석섬 찧기 - > 참새 때

짜던 배 다 짜기 - > 선녀인 직녀

“샹드리옹(cendrillon)”이 나온 샤를 페로(1628~1703)의 동화집(1685년)에서는

대모 요정이 나타나 주인공이 귀족만 참가하는 궁전파티 에 참가할 수 있도록

쥐덫 속 시궁쥐 3마리 - > 멋진 수염 달린 뚱뚱하고 쾌활한 마부로

뒷밭 물통 옆 도마뱀 6마리 - > 하인들로

늙은 호박 - > 황금마차로 변하게 하고 입고 있던 누더기 옷을 눈부신 예복으로 

변하게 하여( 부친은 지방 자작 ?) 신데렐라는 궁전무도회에 당당히 입장한다.

 

 “ 아센푸텔 ( aschenputtel )” 재를 뒤집어쓴 소녀 (1920년) ,

독일 그림형제( J&W Grimm)가 수집하고 편집한 그림 동화에는

재속에 던져진 콩 줍기 - > 비들기 , 산새

궁전에서 열리는 무도회 참석하는 소원 - > 개암나무에 기도하면 나타나는 흰새(=

엄마의 무덤 곁에 심겨진 신성한 개암나무 뿌리가 모체와 연결로 현신 함)

  

주인공(샹드리옹, 아센푸텔)들이 신고 있던 유리구두나 황금구두는

시간에 쫒겨 황급히 집으로 가려고 서두르다 , 이를 눈치챈 왕자가

계단에 발라놓은 꿀이나 송진에 붙어 볏겨지고,

콩쥐의 경우는 "비켜 섯거라"원님 행차를 알리는 큰 소리에 놀라

황급히 피하다 꽃신을 개울에 빠뜨림으로 벗겨진다.

 

 

주인공들이 신고 있던 화려한 구두나 꽃신은 모두 여성 성기를 상징한다고 본다,

12시란 조건은 귀족처녀로서 요구되는 요조숙녀가 갖추어야 성에 대한 태도요 ,

처녀성을 의미하므로 신과 발은 남녀 성기의 관계로 신발을 바꾸어 신을 수도 없다.

왜냐하면 신발은 남녀 성기처럼 정해진 임자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실은 구두나 꽃신은 가죽신의 변형이라고 보고있다.

  

설화에서 본능의 어두운 영역의 힘인 ' 에로스'는 사랑을 이야기 한다고 말하기

보다는 존재들 간의 상호관계를 이야기하는 면에서 직설적으로 자주 나온다.

고대 수메르왕국의 여사제와 도시왕국 왕 사이에 일어나는“ 성스로운 결혼 ”이나

그리스 로마신화에서 신에 의한 인간과의 결합이나,

트로이전쟁 말미에 나오는, 트로이 왕자 안키세스를 사랑하여

여신 아프로디테가 낳은 영웅 아이네아스에서도 찾을 수 있다

비록 그는 오디세우스가 이끄는 스파르타 연합군에게 완전히 패했지만 여신의

도움으로 무사히 빠져나와 긴 항해 끝에 지금 이탈리아 라티움지역에 정착하여

고대 로마제국의 시조가 되었다는 베르길리우스의 대서사시에 있다.

 

  

주인공이 아궁이 와 재가 쌓여 있는 곳으로 공통적으로 내몰리는 상황이나

벗겨진 신발을 되찾지 못하고 절뚝거리며 걸어가는 상황은 이렇다

불의 발견으로 극면의 전환( 원시문화에서 개화된 문화 향유)을 가능하게 하는

아궁이란 장소는 신성성과의 소통이 가능한 장소가 된다.

즉 불의 전승은 연약한 인간을 맹수로 부터 벗어나게 해준 삶과 죽음의 문제였다.

그리고 더럽고 낡은 옷을 입고 부엌으로 내몰린 상황과 보석으로 잔득

장식된 금실 은실로 짠 드레스는 사회적 신분의 높낮이를 철저히 분리하는

것으로 한 개인이 사회이익 조직에 의해 고정된 신분제도를 없앤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인데 결혼이라는 축제를 통해 결합상황을 연출함으로

관념적(관념의 셰계에서)으로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한쪽 신만을 신고 발 한쪽을 대지를 밟고 걸뚝거리며 가는 것은

대지에 운명적으로 묶여 있는 인간을 상징한 것이다.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를 보면 테베왕 라이오스는 신탁을 받고는

오이디푸스의 뒷꿈치를 망치로 때리고 들판에 버리자( 차마 자식을 죽일 수 없어)

양아버지를 만나 생명을 유지하고 절뚝거리며 살게 됐고 신탁을 받고

스핑크스의 수수께기를 풀므로 상으로 테베왕이되는 과정에서 아버지가 재거되고

부인로 맞은 모친 이로카스테 사이에 4남매를 었으나 사실인지로 인한 자살로

모친마져 잃고 눈봉사가 되어 끝없는 방랑의 길을 걷는다.

즉 어머니(대지)의 신체를 통해 탄생한 이상 대지로부터 독립할수 없는

모슨된 존재가 인간이다. 무의식적인 갈등인 거세불안 같은 것.

   

“ 신화란 초자연적인 존재의 행위를 통하여 우주라는 실재의 전체를 말하거나

그 실체가 어떻게 하여 존재하게 되었는지를 말하고 있다 ” 라고

종교학자이며 철학자인 미르치아 엘리아데( Mircea Eliade1907~1986)는

그의 저서 ‘신화와 현실’에서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황당한 마법은 그것의 실존제 여부가 문제가 아니라 중개기능을 하는

적당한 수단으로 현실세계의 불균형 비대칭을 을 잠시 조정된 상태로 만드는 것

외의 의미( 방편적인 수단임)는 없다.

  

어머니의 결손에서 시작되고 사악한 계모(어두움의 영역)의 등장이 필요한

콩쥐밭쥐와 같은 스토리 변형된 종류는 450 ~ 700여 가지 넘는다고 한다

그리고 무도회나 잔치에의 참가형식은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도성국가 여신을 모신

지구라트에서의 성혼례( 신성한 결혼의 의례 )가 남긴 흔적으로도 생각된다.

 

역사 이전의 시대에 삶과 번영의 근간이 되는 풍요로운 수학을 기원하는 사원의

의례는 하늘을 상징하는 왕이 지구라트의 꼭대기에 있는 방을 찾아가서 땅을

상징하는 여사제( 여신의 대리자)와 성 결합을 하는 의례를 치르는 일이었다.

즉 지구라트는 저승과 이승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 성혼례는 도시국가의

구성원들의 축제로 이어졌고 지금까지도 어려가지 형태로 남아있는 것이다.

 

“ 신화의 본질은 신성성, 영원하며 현실을 초월해서 존재하는 근원적인 무엇,이다

미개사회에서 현존하고 있는 신화, 생명력을 가진 신화 ,는 단순히 설명되어지고

있는 설화일 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진실이다”라고 사회인류학자 ,

말리노우스키 (B.K. Malinowski 18884~1942)는 말했다.

  

요즘 연일 신기록을 수립하며 흥행몰이를 수립하는 영화 ,‘명량대첩’신화라든가,

헐리우드산 슈퍼맨의 신화 등은 인간이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인지함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자신이 특별한 인간임을 입증할 것을 꿈꾸는 평범한 현대인이 동경하는

그 무엇을 만족시켜주는 것이다.

(인간은 이중의 정체성( 로고스logos , 에로스eros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미토스( mythos , 실재할 수 없는 것)적 사유방식에는 삶의 조건과 제약을 극복하고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는 에너지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삶의 내면을 주관하는 인간의 무의식 저변에는

원시 선조들이 무엇인 가를 처음으로 경험하고 알았을

때에 받은 강렬한 충격이 ‘성공을 향한 집념’으로

그리고

역사적 시간의 제약을 넘어 서는( 신과의 결합 등 )신화적 영웅에 투영되어 동일시

되는 과정을 통해 되고 싶은 ‘원초적 완전함’이란 DNA적 욕망으로 내재되어 있다.

  

일본의 예술인류학자이며 철학자이신 나카자와 신이치씨는 구체적으로

현대판 연예계를 신데렐라에 나오는 아궁이에 비유하고 있다.

음식물을 요리하는 과정은 인간이 미개에서 문화생활로의 진입을 말하는 것으로

가상문화의 전성기를 살아가는 일본인들에게 지나친 전자게임 등에 몰입으로

가족과 주변인과의 단절을 경고하며 이 신화가 갖는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그리고 한류열풍에 힘입어 전셰계적으로 주의를 끌고 있는 싱어스타의 등용문인

케이블 TV의 슈퍼스타6 나 화려한 차동쇼 같은 것은 성결혼식 후의 축제와 같다고

생각된다. 무대를 휘감는 현란한 빛과 색, 눈부신 복장 , 수많은 관중무리

,가수나 모델( 무녀 ), 심사위원 겸 멘터( 사제), 엄청난 돈의 낭비 등은

마치 우리가

고대 성스러운 성결혼식의 제례의식( 祭禮儀式)에 축제에 참가하는 듯한 분위기를

주어 원초적 경험에 대한 향수를 자극받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이 신화에서 보여주는' 보이는 것과 보여주는 것'에 집착해

현실의 구조적 모순은 돈과 외적 아름다움이 해결해줄 것으로 믿고 있는데

콩쥐가 왕자에게 선택된 것은 마법에 의해 변모된 남다른 외적 아름다움이

아니라는 것이다.

왕자나, 왕, 감사에 선택되기 위해 발가락을 자르거나, 뒷꿈치 자르기를 시도했으나

다 들통이 나고 만다, 이점에서 현재 만연하고 있는 성형에 경고를 주고 있다고

생각되어진다. 겉으로 보여지는 오염된 욕망은 신성성이 결여로 해결책이 못된다.

 

 

성혼례 제례를 보여 주는  제례잔

 

금번 맞이하는 한가위 연휴기간에 우리의 구전설화를 주의 깊게 읽어 보면서

무의식의 저 깊은 공간에 내제된 욕구인 ‘ 우리 인생의 시간으로부터의 탈출하여’즉

현실에서 지워진 신비롭고 상상적인 저 '미지의 시간으로 침짐(沈潛)’함으로

원초적인 향수를 달래보심 어떨까.

 

 

**

2014.9.7. 한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