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나/나의 이야기

강가에서

haanbada 2024. 5. 15.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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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바이스( 齐白石 ) 새우

 

**

 

 

바람이 불었네

그리움이 출렁거렸네

 

흐르는 달 빛 속

가슴 열고

그대 누운 사랑 안아

영혼을 재웠지만

 

강가에는

시간을 싣고 간

나룻배

어둠을 흔들고 있었네

 

강물은

떠날 이별을 사랑했고

나는

짧은 사랑을 그리워했네.

 

**

*** “ 강가에서 ” / 시인 유재원

**

 

허물을 벗는 것에 대해 옛 부터

선인들이 예사롭지 않게 생각해 왔다

신화 속의 세계나무로 등장하는 뱀이 그렇고

땅위 생명체에 영양분을 공급하며 성장 중 여섯 번에

걸쳐 껍질을 벗는 나방류 애벌레도 그렇다.

잠자리의 애벌레 경우는 3개월간 총 15번 허물을 벗는다.

 

허리 굽은 왕새우를 그려보자

행복한 부부생활을 누리며 백년해로를 기원하며

새우를 그리고 그 그림에 의미를 부여하는 데

새우란 놈은 일생에 딱 한 번 껍질을 벗는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껍질을 벗는 과정에서 생긴다.

성장하려고 껍질을 벗는데 이때 새우의 단 냄새가

주위에 널리 번져서 온갖 종류의 고기 때가 몰려와서

서로 먼저 차지하려고 박 터지게 싸운다는 것이다

 

삶을 사는 동안 도약과정이 있는데

많은 경우 이 때가 가장 취약한 시기인 것 같다

좋건 싫건 좀 잘 되려고 하면 원수가 생기고 찾아온다.

 

경봉스님의 게구를 끝으로 적어본다

遠方山色依然翠 원방 산색 의연취

風月相來也未休 풍월 상래 야미휴

아득히 산 빛은 의구히 푸른데

바람과 달이 오가기 끝이 없구나.

 

이제 시 ‘강가에서’의 시구를 살펴 보자.

 

바람 / 그리움

달 빛 / 누운 사랑

강가 / 나룻배

강물 / 이별 / 사랑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이며 작가인 폴 발레리(Paul Valery 1871~1945)의

‘해변의 묘지’, ‘젊은 파로크’ 중 유명한 메타인지 몇 구절 적어 본다.

“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 내가 무엇을 알고 , 생각하며, 느끼는지를 인지하는 것,

타인의 무엇을 알고, 생각하며, 느끼는지를 인지하는 것을 인지하는 것.

나는 있으면서 자신을 보는 나를 보는 존재다, 그 다음도 이와 같다. “

 

바람은 그것의 비시각성(볼 수는 없고, 느끼고 경험할 뿐)과 가변성(샛바람,

마바람, 갈바람, 삭풍, 시간적 변화)의 특징으로 우리 내면의 풍경을 은유적

으로 삶과 이별 죽음, 생의 열기와 의지 실현을 견인하는 풍경으로 애용된다.

 

나를 보는 이유는 의식과 무의식, 삶과 죽음, 존재와 비존재의 모든 영역을

탐사하고 싶게 됨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 인간의 뇌구조 자체임으로

필연적이라 한다.

삭막하고 고단한 사유의 사막을 끊임없이 걸어 나가 뜨거운 삶의 한복판,

삶을 끌어안는 찬란한, 벅찬 생명의 열기(의지),에 당도하게 하여 삶의

찬가가 치고 올라오게 하는 것으로

무엇인가를 모른다는 생각, 무엇인가를 더 알고져 하는 생각이 좌절 보다는

우리의 흥미를 더 유발하게 한다.

작가의 일관된 주제인 사유의 힘은 우리의 삶을 적극적으로 살게꿈하는 것인

법당이나 불탑의 처마에 매달아 놓은 방일이나 나태함을 일깨워 주는

풍경과 같은 동인動因이다.

 

바람 / 그리움  / 달빛

 

물론 한밤 달빛이 비추이는 누운 사랑(벼개깃) 곁 바람은

창밖의 매화 가지에 매화꽃 두어 송이 피고 매화 향기로

벼겟머리에 비추는 달빛에 잠못이루는 송강의 ‘사미인곡’의 속의

바람(그리운 님= 왕), 동풍의 답신(매화향기, 달빛)으로 도 나타난다.

그것은 권력을 희망하는 생의 활력과 의지이자 , 희망의 전신이다.

여기의 바람 / 그리움 /달빛은

화자의 슬픔, 고독, 자존감, 처절함을 나타내는

강열한 배경의 되는 흐름으로 존재한다.

 

 

강가 / 나룻배

강은 언제나 배를 떠올리게 하고 누군가를 향한 고마움을 

생각나게 꿈해준다.

이쪽과 저쪽 , 차안과 피안을 하나로 이어주는 배가 있기에

우리 각자 끊어진 삶과  세계를 하나로 만들어 갈 수 있는 것 같다.

우리가 한세상 살다보면 얼마나 여러 차례 다른 사람의 

나룻배 신세를 지게 되는지.

문득 강가에 이르렀을 때 길이 끊어져 당황할 때가 참으로 

많았음을 상기해 보면 그렇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고 보면 더불어 살아야 하는 존재로

함께 사는 공동체의 화합은 개인간은 물론 

구성인 모두에게 행복으로 인도하게 꿈하는 길이 된다.

말은 마음이 음성을 통해서 드러나는 현상

즉 마음 나누기인데 그런데 우리들은 종종 효과적인

이 마음 나누기에 실패하는 것 같다.

마음을 표현하기에서 우리들은 자주

사실과 생각과 감정의 구별에 혼란을 경험한다고 한다

사실과 생각을 혼동하고, 생각과 감정의 표현에 혼란을

겪는 다는 것이다.

내가 보여지는 눈, 상대방의 마음에 비치는 나의 모습에도

책임을 짊과 동시에 마음 나누기

나의 감정을 포착하고 표현하는 데  그리고

상대방의 감정을 공감하고 반응을 하는 것에도

책임을 지는 자세로 사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강가에는 항시 바람이 머물렀나 싶으면 흐르고

우리도 저와 같아서

강물이 끊임없이 흐름과 파동성 그리고 굽이침으로 

사랑과 그리움과 외로움을 일깨워 준다.

 

강물 / 사랑 / 이별

강물은 연이은 흘러감 속에서

물결과 파도의 간단없는 일어남과 쓰러짐 ,

밀려옴과 밀려감의 끊임없는 반복이

바로  그리움과 외로움,  사랑함과 미워함 ,

체념과 미련으로 이어지는 인간사의 모습 그리고

사랑의 본모습과 다를바 없는 것으로 비쳐진다.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 정희성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일부

 

흘러가는 강물은 우리의 사랑과 시간의 흐름을

더 나아가 인생의 속절없는 흘러감을 일깨워 준다.

 

삶/ 바람 / 사랑 / 이별 / 강물 / 그리움

바람은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걸림없는 성정으로 인해

어디서 불어 오고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이 자유롭지만

인생이란  삶  또한 바람의 성정처럼 오고 감을 알 수 없다.

유한한 인생이란 구속 속에서 , 인생의 삶은  고독, 시련, 방황,

구속, 해방, 희망을 바람처럼 꿈꾸거나 저항한다.

바람은, 강물은 우리가 소중하다고 느끼는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함은 덧 없는 것이라는 항시 것을 가르쳐 주는 것 같다.

강변에 서서 강물을 보느라면 ..

 

새우는 예로부터 문인들이 사군자와 함께 그려왔다.

중국에선 새우를 뜻하는 ‘하(蝦)’와 화합을 뜻하는 ‘화(和)’의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화합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언제나 새우는 무리로 등장한다.

물 속에 비친 달 그림자를 에워싸고 새우들은 군무를 즐긴다.

새우를 관찰해 보면 

전신에 갑옷 같은 껍질을 두르고 있으면서도 굴신屈伸이

자유롭기 때문에 꼼지락 꼼지락 하는 동작이 순조롭다彎彎順

즉 "매사가 순조롭게 되다"의 뜻으로 해석된다.

반면 바다새우海老 는 등이 굽어서 바다의 늙은이라고 불리우며,

부부가 한평생 같이 지내며 함께늙는, 해로(偕老)를 뜻 한다.

인생 반려자로 만난 부부가 늙도록 같이 지내며 위로하며 사는 것은

커다란 축복중의 하나일 것이다.

이런 말이 있다.

늙어서 배우자가 없는 것(老而無妻 老而無夫)은 인생 네가지 궁핌(사궁四窮)에

든다고.

詩  '강가에서'를 다시 읽으며  바람, 사랑 , 강물 , 해로 를 생각해 봤다.

 

*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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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5.15.  한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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