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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서 있는 허수아비에게
외로우냐고 묻지 마라
어떤 풍경도 사랑이 되지 못하는
빈 들판
낡고 해진 추억으로 한세상 견뎌 왔으니
혼자 서 있는 허수아비에게
누구를 기다리느냐 묻지 마라
일체의 위로도 건네지 마라
세상에 태어나
한 사람을 마음속에 섬기는 일은
어차피 고독한 수행이거니
허수아비도
혼자라서 외로운 게 아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외롭다
사랑하는 그만큼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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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수아비”/ 이 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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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란 무엇인가
시간은 오직 미래로만 흘러가고
시간이 흘러가는 곳이 미래인가
시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공간이란 사물이 들어 설 수 있는
거리가 존재하면 그것이 공간이다
시간의 존재 원리가 현상화 되는
장이 공간이요
공간적인 구조가 없다면
시간은 원천적으로 그 존재의
토대가 없게 된다.
시간의 흐름에는 어떠한 법칙이
존재할까?
미래란 현재가 원인되어 발생하는
수동적인 현상일 뿐일까?
시간상 어떤 사건의 미래가 먼저 존재하고
과거가 나중에 존재하는 일이 있을까
다시 말하면 미래의 현상이
단순히 과거가 원인되어 나타나는
수동적 결과가 아니라 ,
미래가 오히려 과거를 끌어당겨서
과거가 그 곳을 향해 끌려가는
역인과의 법칙 현상은 없을까?
동양의 운명학에서
인간의 운명은 미래가 먼저 정해져 있고
생활현상은 미래에 끌려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고 ,
주역도 그러한 현상을 수긍하고 인정하고 있다
즉 시始에서 종終으로 흐르는
과거시의 방향을 역逆으로,
종에서 시로 흐르는 미래시의 개시방향을
순으로 규정하고,
순역적順逆的 관점에서 규정한 시간 속에서
인간의 위치(四柱)를 파악하고 실존적 삶의
문제의 해결을 모색하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 유가의 고전에 ‘주례’, ‘의례’, ‘예기'가 있다.
오경의 하나 중 예법의 이론과 실례를 풀이한 경인
예기禮記의 첫 머리에 나오는 志不可滿란 문구의 뜻은
‘완전하게 끝까지 달성하려 들지 말라’가 있다고 합니다.
운명의 이치를 찾는다고 해도 세상은 어쩌면 삶의
‘궁극의 이치’또는 경지란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희망 달리 말하면 미련을 가져야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인 것 같다. 사실 희망은 미련일 수 있습니다.
희망이든 미련이든 더 나아가 집착이든 그런 염원 없이는
인간은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명리(운명)학에서 운명이란 무엇이고 미리 무엇을 예측한다는
것인가.
운運은 변화하는 환경이고 명命이란 부모로부터 태어나면서
형성된 그 사람의 성질이다.
사람의 길은 타고난 성격, 취향과 능력, 기질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고 운적인 요소는 그 길에 영향을 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운이란 것이 사람의 진로를 좌우지 하지는 않는다고 결론을
내리는 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즉 운의 우연성과 작용력이 크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사람의 성취를 결정하고 삶의 전체적 상을 다듬는 것은 사람
자체의 요소들로부터 정해지더라는 말이다.
시제의 개념에 대해 정리해 봅니다.
시간은 사물의 변화를 인식하기 위한 개념으로 광음이라고도 한다.
시간이란 과거· 미래로 이어지는 명백히 불가역적인 연속 상에서
발생한다고 합니다. 영어로 indefinite continued progress로 굳이
번역하면 ‘존재· 사건의 분명한 연속된 전개과정’이라 할 수 있겠다.
과거 : 특정한 경험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이 이전에 벌이거나
경험한 것을 의미한다.
미래 : 현재를 기준으로 그 뒤 시간 혹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예측 불허한 시간으로 아직 오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러면 현재란 처음으로 느낄 수 있는 지금의 시간을 이르는 말이지만
그 ‘크기’는 과거와 미래를 구분하는 경계선으로 ‘0’의 값을 갖는다고 한다.
즉 우리가 느끼는 현재는 늘 과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는 시간여행을 하면 그 개념이 바뀐다.
예를 들어 2024년 1월1일인 오늘 2023년 12월 31일로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면 오늘 현재는 역으로 과거가 된다.
시간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기본적인 물리 법칙은 모두 시간 대칭이기 때문에, 이들에 따라서는
시간의 방향은 정의할 수 없다(시간의 방향성이 없다)고 한다.
공이 낙하하는 것을 동영상으로 찍어 역방향으로 재생하면 이상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단지 공을 위로 던져 올린 것으로 보일 뿐이다.
물리법칙에는 시간의 방향성이 없지만 우주는 확률이 높은 사건의 방향으로
진행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거다.
이것을 정량적으로 기술하는 물리량을 ‘엔트로피’라고 한다
현대우주론에 따르면 우주는 빅뱅이라는 폭발로 시작되었다.
빅뱅의 순간 우주는 하나의 점으로 응축되어 있었다.
이것은 엔트로피가 극도로 작은 상태다.
결국 시간이 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우주가 빅뱅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심리적으로 느끼는 시간의 방향성도
빅뱅 때문이란 말이다.
역방향의 인과는 가능한가.
시간과 공간이 본질적으로는 다르지 않은 것이 상대성 이론으로 나타난
것으로부터, 광속을 넘어 이동하는 것으로 역방향 인과나 과거에의
시간 여행도 할 수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가능성이 시사되었다
다시 재기해본다 ‘현재’라는 것이 무엇일까.
밤하늘을 바라보면 수많은 별들이 보인다.
대부분의 별들은 지구로부터 어마어마하게 멀리 떨어져 있다.
지구가 속한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별인 알파-센타우리도 빛의 속도로
4년 이상 가야 한다. 즉 내가 지금 보는 알파-센타우리는 4년 전의 모습이라는 말이다.
다른 별들은 훨씬 이전의 모습이다.
따라서 밤하늘에는 수많은 과거가 펼쳐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의 ‘현재’가 다른 별들의 과거를 포함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별들에만 적용되는 문제가 아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의 모습도
엄밀하게 말해서 과거의 모습(빛이 반사되어 나에게 도달되는 유한시간 후)이다
우주에서는 어떤 ‘것’도 빛보다 빨리 전달될 수 없다.
따라서 이것은 단순히 과거의 모습이 보이는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현재가 과거와 공존하는 거다.
과학이 철학에서 태어났다 지만 아직도 탯줄이 붙여있는 부위가 시간과 공간이다.
이 탯줄을 잘라야 하는데 철학도 과학도 정답을 주지 못하고 상상만 존재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나오면서 시공간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다.
과학에서는 공간과 시간을 하나의 시공간으로 보기 시작한다.
즉 독립된 두 개의 변수가 아니라 서로 침투가 가능한 두 개의 변수로 본다.
예를 들어 한 관찰자가 보기에 거의 동시에 발생한 두 사건도, 또 다른 관찰자에게는
시간의 순서가 역전(동시의 상대성)되어 보일 수 있다.
시간은 정말 실재하는 변수일까, 공간에서 일어나는 변화 추이를 시간이라 부르는
가상 변수가 아닐까?
매일 아침 뜨는 같은 해만 보면 시간이 흘렀다고 보기 어렵다.
나뭇잎이 단풍지고 바람에 떨어지는 것을 보거나, 이것들을 바라보는
내 신체가 변화하기 때문에 시간이 흐른 듯이 보인다.
만일 내 몸이 늙어가는 것이 멈춘다면 굳이 시간을 도입할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변화 그자체인 시간이란 변수도 약속의 기준이 될 수 있어 왔다.
- 이 상 -
< 시간의 본질 >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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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 한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