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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쥐 팥쥐 이야기 재고

** ** ╔ 조선 중엽 전라도 전주 부근에 사는 퇴리(退吏) 최만춘(崔滿春)은 아내 조씨와 결혼한 지 20여년 만에 콩쥐라는 딸을 두었다. 불행하게 콩쥐가 태어난 지 100일 만에 조씨가 병들어 세상을 떠나자 최만춘은 살림과 어린 콩쥐를 위해 과부 배씨를 후처로 맞아들였다. 계모는 자기의 소생인 팥쥐만을 감싸고 전처 소생인 콩쥐를 몹시 학대하였다. 나무 호미로 산비탈의 돌밭매기, 밑빠진 독에 물붓기, 하루 만에 베 짜고 곡식 찧기 등의 도저히 불가능한 일들을 콩쥐에게 마치 하인 부리듯 시켰으나 그때마다 검은 소 . 두꺼비 . 직녀선녀 . 새떼 등의 도움으로 콩쥐는 맡은 일을 해결하였다. 뿐만 아니라 직녀선녀가 준 신발의 인연으로 감사와 혼인하게 되었다. 그러나 콩쥐는 팥쥐의 흉계에 넘어가 연못에 빠져 ..

긍재 김득신의 작품 감상하기

** * * 1. 생애 영조 30년(1754년)에 태어나 순조 22(1822)년까지 살다간 화원 김득신金得臣은 본관이 개성開城이고, 자는 현보賢輔, 호는 긍재兢齋, 초호는 홍월헌弘月軒이다. 대대로 화원(畵員)을 하여 유명한 개성 김씨 가문은 곡산 노씨(谷山盧氏), 신평 한씨(新平韓氏) 등의 여러 화원 가문과 혼인을 맺으며 그들 가문 사이의 네트워크를 확장시켜 갔다고 본다. 아버지 김응리(金應履)는 화원은 아니었지만, 신평 한씨 가문의 화원 한중흥(韓重興)의 딸과 혼인하였다. 외할아버지와 큰아버지( 복헌復軒 김응원(金應煥)가 당대의 유명 화원이었던 점은 김득신, 김석신, 김양신 삼형제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화원으로 첨중(僉中)을 지낸 한중흥(韓重興)의 외손자이며, 김홍도의 선배로 알려진..

추상화의 선구자, 힐마 아프 클린트

** ** * 힐마 아프 클린트는 현대미술사에서 이루어진 재발견 중 가장 중요한 사건의 당사자였다. 2018년 뉴욕 솔로몬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린 ‘힐마 아프 클린트 회고전’은 개관 이래 최다 관객수인 60만명을 기록한다. 교과서에도 미술사 책에도 나오지 않는 화가의 전시장에. 전시 도록은 미술관에서 가장 많이 팔린 도서가 됐다. 2019년부터는 아프 클린트의 그림이 뉴욕 현대미술관의 신소장품 전시관에 대여 작품 형식으로 전시되며 미술사의 아웃사이더가 일약 스타로 도약했다. 칸딘스키, 몬드리안, 말레비치보다 추상화를 먼저 시작한 스웨덴의 여성 화가, 힐마 아프 클린트는 그전까지 기존 미술사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었다. 아프 클린트의 이례적인 그림은 미술관을 찾아온 미래 세대에 의해서야 널리 공유되고 ..

반유 半有

** * * 나무 하나가 흔들린다 나무 하나가 흔들린다 나무 둘도 흔들린다 나무 둘도 흔들린다 나무 셋도 흔들린다 이렇게 이렇게 나무 하나의 꿈은 나무 둘의 꿈 나무 둘의 꿈은 나무 셋의 꿈 나무 하나가 고개를 젓는다 옆에서 나무 둘도 고개를 젓는다 옆에서 나무 셋도 고개를 젓는다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이 나무들이 흔들리고 고개를 젓는다 이렇게 이렇게 함께 * *** “ 숲” / 시인 강 은교 ** 공항 고속화 도로 좌우로 펼쳐지는 전철 구조물 과 운하 너머로 보이는 가로수와 숲이 생기를 머금고 초하를 노래하는 것 같다 영종교 다리위 도로옆 SOS 비상주차 틈새에 주차하고 멀리 끝없이펼쳐진 뻘톱과 섬들에 카메라 엥글을 마춘다 어제가 入夏라 그런지 스쳐가는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진다. 현대인의 추구하는 아름..

겸재 정선과 금강산 여행

** * * 겸재 정선의 금강산 사생은 3차에 걸쳐 행해진다. 첫번째는 그의 평생의 친우 사천 이병연이 금화현감으로 재직하던 1711년 겸재 나이 36세되는 해로 동년 8월 그의 스승인 삼연 김창흡이 그의 시제자로써 조카뻘되는 청풍계의 주인인 모주 김시보와 송애 정동후를 데리고 그의 6번째 금강산 유람에 겸재가 따라간 것으로 이때 그려진 것이 그림 13폭의 신묘년 풍악도첩'으로 겸재의 진경산수를 연구하는데 길잡이가 된다. 두번째 여행은 그 다음해인 임진년 8월 가을에 사천의 부친인 수암 이숙과 동생인 순안 이병성 그리고 후배인 시인 국계 장응두 등 4명이었다. 이 때 그려진 화첩이 그림 30폭의' 해악전신첩'이라 하는데 불행이도 전해지지않고있다. 세번째 여행은 겸재 나이 72세된 해인 정묘년 정월 초하루..

고사리에 대한 소고

** * 한국의 고유음식이 뭐냐고 질문을 받으면 일 초의 기다림도 없이 비빔밥이라고 말해도 큰 무리는 없는 대답으로 무난하다고 본다. 그리고 제사상에 고사리가 빠지면 앙꼬(팥속) 없는 찐빵 꼴이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고사리를 많이 먹었기에 조상들이 즐겨 드신 고사리는 제사음식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가 되어있다는 이야기다. 중국의 고사에 고사리에 대한 일화가 나오는데 고죽국의 왕자 형제 백이와 숙제는 부왕 유언으로 인해 서로 왕위 계승을 미루던 차에 주나라 무왕이 부친인 문왕의 장례도 치르기 전에 은나라를 쳐 통합하는 것을 보고 무왕을 섬길 수 없다고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먹고 연명했다는 이야기기 있다. 제5공화국시절 호주에서 수입한 젖소(홀시타인)를 제주도의 중 산간..

구스타프 클림트의 미술세계

** * * 1.생애 19세기말 20세기초 오스트리아의 유겐트양식(Jugendstil, 장식미술양식) 운동을 대표하는 화가로 클림트는 아르누보와 상징주의 영향을 받아 황금빛의 화려한 화면과 풍부한 장식성을 추구하며, 강렬한 여성의 이미지를 창조한 예술가이다. 1862년 오스트리아 빈 근교 바움가르덴에서 태어났다. 19세게 말 도시개발사업으로 링 슈트라세가 될 주변지역으로 보헤미안적으로 빈에 이주해 온 가정의 7남매 중 둘째인 장남으로, 오페라가수가 꿈인 전직 가수인 모친과 직업적으로 성공을 못거든 조각가이며 금 세공업자인 다혈질 부친을 둔다. 어린시절 세계경제불항(1873-96)영향으로 경제적 타격을 받아 화가는 가정의 매우 궁핍한 생활로 인해 14살 되던 해에 다니던 학교마져 그만두게 된다. 다행이 1..

우화 중심 우리매미 생태 알아보기

** ** * 말복도 꼭 일주일 남았다. 처서가 지나면 매미울음소리도 약하게 들리겠지, 며칠 전 이틀 동안 시간을 내, 저녁 9시 반부터 10시 늦게까지, 이틀 후는 8시 반부터 10시까지 아파트단지(3단지 연결) 내에 있는 도시공원과 단지 사이 녹색 통로를 선택해서 관찰했는데, 아무래도 사람들 왕래가 잦은 곳 보다는 평소에 생각했던 남향에 녹색통로에 접한 아파트 베란다가 있는 정원 쪽 20~30년생 소나무 느티나무, 벚나무 계수나무 등이 잘 가꾸어진 폭 50m 전후, 길이 150~300m 이상 되는 인공 수림지역으로 선택했다. 준비물은 곤충채집통, 포충망, 스마트폰, 자전거용 후래쉬, 손수건으로 간단히 후래쉬는 장단거리 빛 조절 가능하고 손수건은 촬영 빛 강약 조절용으로 사용 했다. (저녁촬영은 삼각대..

시간에 대해

** ** 하루 종일 산만 보다 왔습니다. 하루 종일 물만 보다 왔습니다. 환하게 열리는 산 환하게 열리는 물 하루 종일 물만 보고 왔습니다 하루 종일 산만 보다가 왔읍니다. ** *** “ 하루 ” / 김용택 ** 요즘처럼 출퇴근에 매인 현대인에게 하루는 시계 속에 있다 그러나 우리 선인들은 하루를 해와 별에서 보와 왔다 얼마나 낭만적(?)인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하루의 크로노미터(測시계)는 지구의 자전이라 한다 워낙 그 빛이 강해서 구름이 끼던 눈비가 오든 날이 기울고 동이 트면 새날이 시작되기 때문에 좀더 지적 기능이 요구되는 星日 보다는 먼저이다 밤하늘에 가득 점점이 박히듯 떠서 반짝이는 별은 그냥 그대로 거대하고 놀라운 하늘시계( 二十八宿수)로 東方七宿칠수인 각, 항, 저, 방, 심, 미...

누에나방 산책(야생포함)

** * * 누에나방의 고치를 풀어 만든 생사(견사)는 60년대~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주요 수풀품목에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지금도 되돌아보면 6.25로 인해 그나마 남아있엇던 생산시설마져 파괴되버린 50년대 초반의 우리나라 경제인구는 농민이 70%라는 구조에서 주 수출품은 지하자원으로 보릿고개(5~6월 춘궁기) 굶주림을 날품과 초근으로 참고견디며 농산품을 수출하려 해도 원가가 맞지않는 가운데 1952년에 생사 수출량은 중석 다음으로 높은 200만 달러였다. 양잠산업의 수출사업화라는 기치 하에 '수출장려 보조금'을 제도화하여 10년을 시행한 결과인 1961년도 생사 수출액이 270만 달러였으니 상황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알만하다. 사실 우리가 초등학교 시절 집에서, 기아해결과 생사수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