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 5

** ** * 어둠이 내리면서 나의 섬은 밝아 왔다 어둠이 내리면서 나의 꿈은 별빛으로 내리고 하루의 심지를 끈 자리에 깨어나는 섬 가장 진실된 나무하나 자라고 있는 나의 섬에 나는 돌아와 있었다 돌아와있는 이 하나의 사실 눈이 찔리는 저 현실로부터 등을 돌리고 바라보는 신세계 나의 두발은 초원 위를 걷고 있었다 꿈의 마른 잎을 따 내면 안식의 꽃 한 송이 피어나고 순한 불빛이 영원처럼 섬을 둘러 왔다 돌아와 있는 이 하나의 현실 가슴 깊이 키운 새 한 마리 창공을 난다 몸 하나로 무한 공간을 받쳐든 나의 섬 서서히 어둠이 가고 어둠 따라 섬을 떠나고 하늘로 이어진 수천의 층계도 내려 앉는다 섬이 지워지고 어제와 같이 아침이 오고 있었다 ** “ 섬 ” /시인 신달자 ** * 흐드러지게 피었다 져버린 목..

상선약수上善若水

** ** * 겨울이 다 가도록 그는 어딘 가에서 떨어져 나온 나사못을 주워 모았다 소속에서 이탈한 버려진 것의 독백을 독백하며 빙빙 비틀린 고랑의 녹을 닦고 또 닦는다. 천천히 시들어가는 희망의 녹을 털어 내듯, 타고난 배역에만 충실했던 나사못과 그는, 갇힌 나무상자 안에서 같은 대본을 힐끗거리며 한통속이 되어갔다. 새 촉을 밀어내고 있는 춘란을 하루 종일 바라보다 역시 같은 대본을 들고 상자 속에서 나온다 나사못 하나쯤 빠져나가도 열리는 장롱과 나사못 한두 개쯤 빠져나가도 말할 수 있는 라디오가 의식의 뿌리부터 썩어가는 그루터기 같은 자신을 찍어 누르고 있다 반짝 한 방울의 눈물을 떨군다 그는 춘란의 새 촉이 보이지 않게 자라고 있는 줄을 모른다 겨울이 다 가도록 그는 소라껍질 같은 자신 속에서 나사..

빈 들

** ** * 아프다. 지금은 노울 한 끝도 닿지 말아라 익은 벼 낫질에 밀려 다 떠나고 정으로 남긴 벼 그루터기 마져 파헤쳐진 들의 가슴엔 달빛 한 자락도 아프기만 하구나 뒤따르다 쳐진 바람 한 자락 어디선가 앓다 날아온 잡새 한 마리 그림자만 떨구고 날아가 버릴 때 다 떠나는 것을 보지 않으려고 들은 눈을 감는다 영롱한 하늘 한 자락 끌어 몸을 덮고 싶지만 속속들이 와 안기는 건 차가운 어둠 메마른 나체로 드러누운 들의 가슴을 덮는 것은 서리뿐이다 서리뿐이다. * ** * " 들의 노래 " / 시인 : 신달자 ** 시기적으로 한로寒露는 지났고 이제 상강霜降(10/23)을 맞이하겠지 상강이 뭔가 찾아보면 한로와 입동立冬 사이의 절기라고 한다 들판에 오곡이 무르익으면 우리는 또한 모든 것을 거두어 가버린..

** ** * 섬 길을 가다 보면 가끔 섬을 만날 때가 있다 바다를 그리워하며 갈 길을 잃고 낯선 모습으로 서성이는 뒷모습 쓸쓸한 것 들은 섬이 된다 섬은, 어둠이 내리는 시간에는 저물지 않는다 둥지 잃은 갈매기를 기다리듯 나를 기다려준 굽고 휘어진 골목 낡아 빠진 옴팡집 문패도 없는 그 술집도 한 때는 섬이었다 살아 가다 보면 바다가 아니더라도 가끔 섬을 만날 때가 있다 흐드러지던 봄 꽃이 속절없이 져버릴 때 가을을 재촉하는 찬 바람이 불어 올 때 사랑을 잃어버렸을 때는 사람도 섬이 된다. ** ' 섬 ' / 시인 : 김세완 ** * 詩人에게 詩란 오랜 시간 시인의 삶에 깊히 박혀 아픔을 주던 그리움의 파편들이다 사랑을 잃어버린 가슴은 사막이 되고 사랑이 머물다 지나간 자리에는 아픔만이 머문다 그러나 ..

시간이란 무엇인가

** ** * 혼자 서 있는 허수아비에게 외로우냐고 묻지 마라 어떤 풍경도 사랑이 되지 못하는 빈 들판 낡고 해진 추억으로 한세상 견뎌 왔으니 혼자 서 있는 허수아비에게 누구를 기다리느냐 묻지 마라 일체의 위로도 건네지 마라 세상에 태어나 한 사람을 마음속에 섬기는 일은 어차피 고독한 수행이거니 허수아비도 혼자라서 외로운 게 아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외롭다 사랑하는 그만큼 외롭다 ** *** “ 허수아비”/ 이 정하 ** 미래란 무엇인가 시간은 오직 미래로만 흘러가고 시간이 흘러가는 곳이 미래인가 시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공간이란 사물이 들어 설 수 있는 거리가 존재하면 그것이 공간이다 시간의 존재 원리가 현상화 되는 장이 공간이요 공간적인 구조가 없다면 시간은 원천적으로 그 존재의 토대가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