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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중인 수인선 폐선로가
뻘밭 속에 파뭍혀 있다
제 살 속에 완강하게 끌어안고
집착처럼 버티는 동안
모든 길은 이 개펄에 끊긴다
빗속에서 뒷걸음치는 농게 몇 마리
뚫린 입으로 게거품을 뿜어 올린다
흐린 하늘을 가득히 띄운다
수차가 부서진 채 나뒹굴고
바닥에 귀 대어보면
시간이 팽팽하게 걸러지는 소리
소금들이 체중을 내리는 소리
바람이 딱새 몇 마리
수평선 위에 가볍게 내려놓는다
그 너머 햇살 맑은 바다에서
온종일 마룻장 삐꺽이는 소리가 들린다
옛 물길 거슬러오다가 발 헛디딘 허공이
밤 도독처럼 흥건히 잠겨 있다
몸부림치지 않고는 한 발짝도
건너뛸 수 없다고
뻘밭 속에 탈선한 고통 몇량이
더둠 더둠 느리게 얼굴 지운다
소래포구가 저를 지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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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 " / 노향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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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반복이며 삶의 아름다움이
반복에 있다는 것을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살하며 - 그에게 갑자기 닥쳐왔듯이 -
파멸하는 것이 당연하다 왜냐하면
희망은 먹어도 배부르지 않는 과일처럼 손짓하며
기억은 충분하지 않은 쪼들리는 여비이지만
반복은 축복으로 만족시켜 주는
매일 매일의 빵이기 때문이다. ”
- 키에르케고르
산업사회에서 시대정신이라는 장거리 경주는
우리에게 가속을 권한다.
천천히 보다는 빨리 가는 것이 쉽고
그것을 선호하는 우리와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사람들은 골동품 취급을 받는다.
가속을 지향하는 행동과 수행목표가
기술과 산업을 활성화 시키는
원동력이 되어왔기 때문이다
더 빨리하면 더 큰 물질적 이윤을 얻을 수도 있지만
파괴적인 가속과는 다른 형태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
있다
고마움, 애정, 사랑 등이다
인생이라는 경주에서는 위대한 경주의 승자는
빠른 사람들이 아니고, 오히려 느린 자들
최후까지 남아 있는 자들이라고도 한다
가속화가 더 빠른 종말을 부른 예가 있다
마라톤 전쟁에서의 아테네군의 승리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조금도 쉬지 않고 달려온 병사의 죽음이다
인위적인 시간의 조직적인 구속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희망
주기적인 일상의 합리성 때문에 생기는
만족스럽지 못한 분주함에서 탈출하고 싶은 욕망은
느림에 대한 동경으로 나타나는데
느림이 무엇보다도 잘 맞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느림에 의지한다고 본다.
바쁘고 일이 많으면 우리는 사랑을 잃게 되고
사랑은 노동이 됨으로,
사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느림이다
느림의 영역에는 신중함 그리고 반복을
통해 지각의 다양함과 사고의 자유를 가능케 하여
새로운 것 , 다른 것을 눈에 보이게 하고 과거를
극복하게 하는 창조적 시간이 있기 때문일까 ?
음악을 듣는 행위는 감각의 물질적 한계를
초월한 비가시적 공간을 통해
현실세계의 경계를 넘어 미지의 열차를
타는 것과 같다고 한다 무한한 세계로
그래서 신과 인간을 연결시켜 주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음악이 나온다
움직임의 역동성 자체인 소리와 소리가 서로 어우러져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동시에 모든 것을 암시할 수
있는 생명의 자유를 연출하는 빈 공간이 음악이다
시인 노향림님 詩의 빈 공간에는
풍경과 소리가 항시 어우러져 있다
그런데 그 소리는 조화로운 생명의 소리가 아니라
환청같이 어두운 비애가 흐르는 영혼의 불협화음이다
감정이 절제된 풍경에 소리를 집어넣음으로써
그의 비관주의를 공명시킴으로
그의 시를 보는 순간
시선이 전에 그 소리에 감염되어 버린다
풍경은 쓸쓸한 것 밀려난 것들이
순순히 시간에 몸을 맡기고 내버려져 있지만
그것을 보는 시인의 눈을 통해
현대적 삶과 현대인의 처해 있는 상황이 은유된다.
2017. 11.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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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6. 한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