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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강물 저편
우리 집 마당엔
오동나무 하나 있었다
그 큰 나무엔 울엄니 저고리
보랏빛 오동꽃
흐드러지게 걸렷고
까치밥이 익을 때면
또아리 같은 오동이
연등처럼 걸렸었다
옆집 사내아이
방아깨비 마냥 뛰어 내리며
“가시내는 못한다. 가시내는 겁쟁이”
오! 나는 파르르 목청이 돋아
전신주 참새보다 높이 올랐다
하늘은 도라지꽃처럼 푸르고
땅은 눈물처럼 흔들려도
강물에 뛰어들 듯 몸 던졌는데
연꽃으로 되지 못한 나는
오래도록 희디흰 봉대를 끌고 다녔지
아직도 나는 수렁을 헤매고
계단을 헛디디며
햇살이 열매를 익히듯
인생은 깊은 맛이 배일거라
여유를 보이지만
가슴은 청동의 녹
목숨의 줄기는
시래기처럼 마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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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詩 ⌜시래기처럼 마르고 있다⌟ / 김정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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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가 없다면
삶은 얼마나 삭막할까
세상의 모든 언어를 압축한 한 음절의
어휘가 있다면 꽃이라 한다.
꽃이란 잎이 변한 생식기관이란
생물학적 이미지 보다는
사랑의 은유적 언어요 가치와 보람
삶과 죽음, 위로와 평화, 이상과 현실,
생명의 절정, 영원한 환생이란
미학적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강물에 몸을 던졌지만/ 희디흰 붕대를 끌고
가슴은 청동의 녹 / 목숨이 시래기처럼 마르고
시인에게 꽃은
인생을 수식하는 배경인 동시에
추구해야 할 이상이며
이루고 싶은 꿈의 모습이지만
무조건적인 이상의 추구만이 아니라
기다림과 눈물의 과정을 통해 꽃을 바라본다.
역학적인 관점에서 푸른색(동/春)은
소생과 사랑,
붉은색(남/夏)은
출산과 부활
흰색(서/秋)은 반성을
황색(土)은 관용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울 엄니 저고리 보랏빛 오동꽃
하늘빛 닮은 도라지꽃
붉고 희게 피는 연꽃
시인은 계절별로 세 가지 꽃을 피어주며
사람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의 절정을 노래한다.
시인이 계절에 대한 관심은
생명사랑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이다.
꽃의 과정이 없다면 씨를 통한 부활은
기대할 수 없겠다.
죽음은 우리의 의식 밖의 범주이므로
언급하지 않는다
공간에 적용되는 원근법을
시간에 적용하면
그리운 과거는 시간의 강물 저편에 보여진다.
꽃(사랑) 과 시래기( 반성)를 대조시켜
목숨이 마르는 시련을 통해
인생의 깊은 맛을 알 수 있는
가능성과 희망을 보여주고 있으며
사랑에서 오는 외로움과 슬픔을
독자와 함께 공유하고 싶은
시인의 미학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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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1.16. 한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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