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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산 한옥마을 한옥건물을 예로 들었습니다. **
지하철 3호선 충무로역이 있는 남산 북쪽 기슭에 위치한 필동은 흐르는 계곡이 깊어
여름철 피서지를 겸한 물놀이 터로, 신선이 사는 곳으로 불릴 만큼 아름다워 청학동으로
불렸답니다.
조선시대 한양에서 경치 좋은 삼청동, 인왕동, 쌍계동, 백운동과 더불어 한양 5동으로
손꼽히는 곳이였습니다.
서울시는 시내에 산재되어 있던 민속자료 한옥 다섯 채를 이전 복원하여 1998년에
남산골한옥마을을 조성하고 선조들의 생활모습을 조명할 수 있는 전통문화예술 공간으로
꾸몄습니다.
오늘은 전통가옥으로 보기에는 좀은 특이한 그려면서도 조선말기 명성황후의 15촌 조카,
평안감사, 여러 판서,그리고 한성판윤까지 역임했던 관훈동 민씨(민영휘)가옥을 살펴보면서
조선말 최고위층 양반집이였던 한옥을 살펴보기로 합니다.
이 가옥은 1870년 지어졌다고 추정되는 저택의 일부로 종로구 관흥동 30-1번지에 있던
가옥을 이전 복원한 것으로 서울시 민속문화제 제18호에 해당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사는 집과 입은 옷에 의해 인격(금.권력)이 판단 되어진다고 믿고
여기에 더해 명예, 권력, 금력 셋 모두 차지하려는 분들이 많이있어왔자요,
민영휘가 그(탐관오리) 중 한분으로 고종14년에 별시로 병과에 합격한 문신입니다.
친청파에서 친일파로 변신하여 1877년 제국수립 후 헌병대 사령관, 육군부장을 역임하고
1910년 한일합방후 조선귀족령에 의거 자작,공작,백작 중 자작을 수여받은 자로 일제강점기에
조선 최고갑부의 가옥입니다. 궁궐 건물에 필적되며 비교적 쉽고 자유럽게 접근이 기능하여
살펴보는 데 많은 이점(가옥 내부 공간구성 면 관하는데)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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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은 구조면에서 서민이 주로 사용한 초가집과 양반의 기와집
그리고 집장사가 지은 집(개량 한옥)으로 크게 구분해볼 수 있습니다.
기와집은 집주인의 지위와 신분의 고하에 따라 집의 크기, 방수, 담과 문이 다릅니다.
집과 길의 경계인 담장도 신분에 따라 높이와 모양이 달라졌답니다.
위에 보이는 대문은 안채의 정문으로 평대문 보다는 살짝 높은 감이 있습니다
행랑채와 같은 담으로 이어진 사주문(고위직 가옥에서나 보임직한)입니다.
중문 너머로 장대석이 깔린 안채와 마당 일부가 보입니다.
건넌방에 앉아서 중문이 내려다 뵈는 공간 구조입니다.
벽은 회벽으로 기와 덮개를 입혔습니다.
안마당으로 들어서면 행랑채를 등지고, 왼쪽으로 부터 안채 부억문이 보이고
남면한 3중창을 한 전면 3칸 안방이 있고
이어 안방의 작은 대청, 작은 건넌방, 큰 건넌방 대청마루가 보입니다.
안채의 건넌방(안주인의 사랑방, 혹은 귀하신 노모방)이 보이는 데
석측 기단(다층 묘단) 위에 사다리 기초석 기둥으로 세운 1고주7량 가구로
앞면 측면 뒷면을 툇마루(좀 특이)로 돌린 상태입니다.
물론 팔작지붕(고주가 필요함)이고요. 안마당을 보면 거치물이 없는 텅빈 상태입니다.
그리고 지금 보면 작은 대청마루 너머로 뒷마당(후원)이 대청마루 창문 너머로 보입니다.
여기에서 전통 한옥의 특이한 점 세 가지가 보입니다.
첫째 , 겨울에는 불리한 점(3중창으로 대비)이 있지만 대청마루만 열어 놓아도
대류 현상으로 후원에서 불어 오는 시원한 바람이 마당(햇볕으로 데워진)으로
나와 상승하면서 집안이 열기가 빠져나간다.
둘째, 양식건물과 달리 방이 가급적 외기에 더 많이 면하려고
창문은 두면, 세면에 접하도록 냈다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방을 둘러싼 문이 열리면 바로 바깥과 통한다는 것이다.
안밖이 불이라는 생각(사상)에서 항시 자연과 벗하는 삶을 즐겼다는 것입니다..
셋째 신분이 높은 양반의 집의 경우 담을 높게 쌓는 경우도 있지만
서민의 집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양반 기와집의 담장도 담 너머로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높이로 ,서로 소통하는 사람이 사는 중심 공간 구조였다는 것.
즉 한옥은 기본적으로 과학적이고 자연 친화적이고 사람 중심 소통공간이었다.
위에 보이는 사진은 부엌에 연결돤 광채로 북.서쪽으로 뒷문과 굴뚝이 보인다.
이 문은 높이가 좀 낮아서 잘못하면 머리가 부딪치기 좋게 만들어졌다.
2주문을 통해 안채 뒷마당이 보이고 장독대와 항아리들과 우물이 보인다.
장독대는 뒤뜰의 햇볕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 우믈이 가까운 곳에 위치했습니다.
'음식 맛은 장맛'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장이 식생활에 중요한 역활을 했기 때문에
옛날 어머니들은 조석으로 독과 항아리를 정성껏 돌보았습니다.
뒷문으로 들어 오니 부엌과 광채가 보입니다.
농본사회라 광에는 농기구와 멍석이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6칸 부엌이라 넓습니다.
여기는 옮긴 평지지만 원래는 전저후고 지대의 후원에는 귀화요초와 나무숲이 조성됩니다.
굴뚝이 두 개이니 넓기는 넓은 집입니다.
저쪽에 별당채가 보이고 작은 건넌방 뒤에도 큰 굴뚝이 있다.
안채 큰 대청마루로 상당히 넓습니다. 북쪽에 건넌방이 있고 오른쪽으로 큰 건넌방이 위치합니다.
과년한 딸이 거주하는 별당채도 몇 칸이 될 정도로 넓습니다.
천정 쪽에 들어열개 분합문들이 걸려있습니다.
방과 방을 분활하는 문은 장지문입니다.
안채 건넌방 너머 내외담 그리고 그 너머로 사랑채가 보입니다. 궁궐 건물 같습니다.
안채 안방 남면의 툇마루와 평주, 고주, 툇보가 보입니다.
안방 마님의 내실이 보입니다.
벽체는 창호로 짜여 있는데 창호란 건물에 달린 창과 문을 총칭하는 용어입니다.
창호는 짝수에 따라 외짝을 독창, 두짝을 쌍창이라고 하는데 여기는 쌍창입니다.
위치에 따라 외벽에 설치되는 여닫이 덧문과 대청과 방사이에 설치되는 들어열개문을
분합문이라합니다.
외벽에 설치되는 분합 창호는 두짝이 일반적이며 대청 앞에 설치되는
분합문은 네짝, 다섯짝이 보통입니다.
다만, 대청과 방 사이에 분합문은 가운데 광창을 달고 위 아레 벽지를 바르고
빛을 차단 독특한 분합이 사용되는 이 광창을 연창이라 쓰고 불발기창으로 읽고, 통상
불발기분합문이라 부르는데 여기에는 불발기창을 내지않았습니다.
보온을 위해 외벽에 다는 창은 세겹으로 달았습니다.(쌍창-영창-흑창-갑창)
안방 대청마루 안쪽으로 안방도 미서기문으로 둘로 나뉘어져있습니다.
대청마루는 고주7량이라 천정도 높고 넓습니다
사랑채의 정문은 4주 솟을대문으로 종2품 이상이 타고 다니는 자가용 '초헌'이 통과하는데
어려움 없게 평담 위에 높게 만들어져 있다.
마당 건너 아궁이가 있는 부뚜막과 침실방벽이 보인다.
안방에서 바라본 누마루로 사랑채의 가장자리에 위치하며 학문, 지인간 토론과 휴식공간으로 남성공간이다.
이 집의 경우는 누마루가 인현궁의 두배 이상의 크기다.
사대부 가옥은 기본이 기와집으로 여유와 지위가 있으면 행랑채(노비가 있다는 것),
훌륭한 누마루가 있는 사랑채와 별당채 그래고 사당을 두고 담장을 두른 집일 것이다.
집 주위에 담장을 둘러 쌓고 그 안에 여려 채의 집을 짓다보니 여러개의 마당이 생긴다.
구조적으로 보면 여성 공간인 안채는 주인마님을 비롯한 여성의 공간으로 대문으로부터
안쪽에 위치하며 보통 안방, 안대청, 건넌방, 부엌으로 구성되고 ,
사랑채는 외부로 부터 방문한 손님들에게 대접하는 장소로 쓰이거나
이웃과 친지들이 모여 친목을 도모하는 장소 및 교양과 학문을 쌓거나,
뜻을 같이하는 지인이나 동지와 학문과 정치를 논의하는 남성의 공간이었다.
건물을 관하는 것은 건물의 내부적 공간 구성요소를 살펴보는 것이다.
즉, 가구의 배치와 입체면인 초석, 기둥, 창호, 바닥, 천정, 지붕 등을 하나씩 들여다 보는 것이다.
전통한옥의 서양식 건물과 크게 다른 점은
집이 집터에 붙여있는 것이 아니라 얹혀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옥은 건축의 역순으로 분해해서 그대로 옮겨서 다시 지어 사용할 수가 있다.
지붕 들어내기- 추녀.서까레 제거- 가구(주두.공포.보.도리 )- 기둥 - 초석 - 기단 들어내기
가옥은 천정 위 개판위에 쌓은 적심과 지붕의 무게로 터닦기한 기초 위에 얹혀있는 것이다.
끝으로 한옥 관하기 포인트를 한옥짓기 순으로 살펴보자
- 터 딱기와 기초 넣기
좌향, 달구질, 초석, 주춧돌
- 기둥 세우기
그랭이질, 고주, 평주, 퇴주, 진주, 우주(귀기둥)
- 창방설치
기둥과 기둥사이를 연결하는 가로재(횡재)를 말하며 기둥과 창방이 연결되면
건물의 평행틀이 갖추어진다.
벽재를 볼 때 기둥과 기둥 사이를 가로 지르는 부재는 모두 방자로 불린다.
평방, 인방(새로 부재), 문지방(가로 재)
- 주두 놓고, 공포짜기
주두는 기둥머리나 창방, 평방, 등의 횡부재 위에 놓여 상부의 하중을 받아
기둥이나 벽체로 전달시켜주는 됫박 처럼 네모진 부재 이고 공포는 규모가
큰 건물의 처마를 길게 빼기위해 설치하는 복잡한 부재
- 보와 도리 걸기
보나 도리는 모두 량(梁) 이라 한다.
지붕의 하중을 제일 먼저 받는 부재로 기둥과 기둥 사이에 매어진다.
건물의 측면에서 볼 때 ㅈ하우로 놓여 긴면이 보이는 것을 보라 부르고
앞뒤로 길게 놓인 것이 도리다.
대들보, 종보, 퇴보, 종도리, 중도리, 주심도리
도리의 갯수에 따라 3량집, 5량집, 고주5량집, 고주7량집 등으로 부른다.
- 첨자
주두 또는 소로에 얹혀 도리 방향 또는 그와 직교하는 방향으로 십자맞춤하는
부재로, 지붕과 기둥 사이에 배치하는 것으로 가장 오래된 공포 형식이다.
그 형식에 따라 주심포, 다초, 익공식으로 나누어진다.
추녀, 서까래, 그리고 지붕모양이 있으나 생략한다.
다음은 전통 한옥 중 기본적인 기와집을 올려 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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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7.12. 한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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