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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파 이하응의 묵란도 세계
고종제왕의 아비 대원군으로 알려진 석파 이하응(1820~1898)은 조선조 말
한 왕조(세도정치가 판치던)의 끝자락에서 와신상담하며 이산 정조대왕이
급거 후 어린 순조의 수렴청정으로 시작된 안동김씨와 풍양조씨 집안들의
삼정을 문란케하는 권세 속에서 한 많은 세월동안 가난과 멸시를 이겨내고
신정왕후 조대비와 암약맺고 둘째 아들 명복(고종)을 조선 제26대 왕으로
추대하게 함으로 수렴청정 배후 실세 대원군으로 관가개혁, 서원철폐 등 과감한
개혁을 통해 국정을 쇄신했으나, 서구문화 흡수장애인 쇄국정책과 왕권회복을
위한 경복궁 중건 등 격변기에 무리한 정책과 사업을 고집하여, 좁은 세계관,
열강의 간섭을 역량부족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또 고종의 개방정책에 맞서 권력
경쟁에 벌여 결국 조선몰락의 기로에 단초를 제공했다고도 볼 수 있는 조선말의
큰 정략가, 권력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 12세에 모친을 17세에 부친을 여위였던,,
한편, 그의 정치 이력에 못지않게 추사 김정희의 묵란화의 제자로 날카로운 필세로
자신만의 독보적인 묵난화인 ‘석파란’의 대가이기도이다.
추사 김정희(1786~1856)로부터 난초 그림 만큼은 최고라고 찬사를 받을 만큼
석파도 묵란 분야에서는 탁월한 빛을 발했는데 ‘석파 묵란첩’를 보면 추사의
예술세계와 얼마만큼 공감된 석파의 예술세계인지 짐작할 수 있겠다.
참고로 추사 김정희 예술세계를 감히 살펴보면 석파 그림 감상에 도움 되리라
생각하여 적어보면
추사에게 글씨와 그림은 삶의 표현인데. 추사체는 굵고도 힘찬 필세로 강한 의지를
드러낸다. 거기에 그림이 곁들여지면 내면을 전하는 또 다른 강한 수단이 된다.
검은 먹물을 찍은 붓이 한 가닥씩 솟아오르고 휘어지는 선으로 변하면서 바위가
되기도 하고 뿌리다발에서 수많은 난초 잎이 피어나고 꽃이 개화하기도 한다.
추사는 이런 난초로 인생과 학문, 예술을 이야기했다(‘詩書畫仙一致).
추사의 ‘난맹첩’ 속의 혜란의 세계를 3단계로 나누어 그의 고도의 추상적 이론의
완성을 살펴보자..
* 1단계 - 1809년 이후
1805년 스승 초정 박제가(북학파)가 갑자기 세상을 뜬 후인 그의 나이 약관 24세
(1809년 순조 6년)에 동지겸사은부사인 부친 김노경을 따라 청의 연경에 가서 청조
연경학계의 유명인 조강, 서송, 그리고 두 거유인 옹방강, 완원을 만나고 교유관계를
나누게 된 것이 추사의 삶과 학문 예술세계의 중대한 분수령이 된다.
* 2단계 – 1820~ 1830년대
중국의 사상가 양주(전국시대 노자의 제자)학파의 화풍을 따르다.
양주학파의 특징은 ‘자연에서 받은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사상인데 이는 노자와
장자사상을 잇는 도가사상에 역사적 교량 역활을 했다고 한다.
* 3단계. - 1830년 44세 이후
제주와 함경 북청에 유배를 갔다 온 후 과천에 부친과 말년 과지초당에서
은거생활하며, 학문과 예술혼을 불태우다.
그의 묵란화 ‘불이선란’은 판화를 보듯, 칡 붓으로 그린 인문화 보듯, 고고한
자태로 향기를 내뿜는 듯한 난초로 지조높은 선비의 인품과 충절을 지키기 위해
고난을 참아내는 군자만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일까?
작품의 화제인 부작란화이십년(不作蘭畵二十年)으로 시작된, 이는 ‘붓을 꺽고
난초를 그리지 않은 것이 20년‘ 만에, 부분에서 그의 실사구시의 정치적 의념을
담았다고도 한다.
추사의 제자로 혜란을 추사의 난법으로 그린 동문 제자로 소호 김응원은
석파 이하응을 대신해서 난을 치면,석파는 자신의 낙관을 찍어 판매했다고도 한다.
석파 이하응의 작품량은 많은 데 비해 볼 기회가 적은 것은 사실 대부분 부잣집에
보관되거나 대다수가 일본인들의 수장고에 보관되어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최근 ‘병란도 대련’ 한 쌍과 ‘묵란첩’ 10폭이 그동안 일본의 한 소장가에 의해
보관되어 오다가 학고재 우찬규 대표가 입수해 공개되기도 했다.
석파 이하응의 작품 특징을 적어 보면
1, 가느다란 잎이 꺽이지 않는 우리민족의 기세를 닮은 듯 끊어지기라도
할 듯 야들야들 하면서도 힘이 넘쳐난다.(삼전법과 서미 선묘)
2. 잎맥이 간결하면서도 힘이 있고 유연하여 보는 자의 마음을 청민하게 한다.
3. 석법의 음양(농담), 괴형이 전통을 벗어나 있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기법으로
잘 포치(괴석이 암반 면에서 튀어나온 모양)해 냈다.
(만년에 갈수록 다양한 형태의 괴석이 등장)
4. 난을 치는 법이 추사와 닮은 듯하나 대소, 강약, 허실에서 독창성이 돗보인다.
5. 구도와 기법이 신기에 가까운 화면운용으로 특이하다.
추사와 석파의 묵란도의 공통된 점은 두 화가 모두
때를 제대로 만나지 못해 불우함과 억울한 분한 마음을 밖으로 자연스럽게
쏟아내는 행위로 난화를 쳤다는 것이다.
즉, 그 둘의 난화는 신화세계에서 화성(여름 신)이 주는 자손의 번창이라는
번창의 의미도 아니고, 벽사의 의미 또한 아니며, 속세를 떠난 은자의 고결한
기풍이나 군자의 상징으로 난화를 그린 것이라기 보다는
맘속에 솟구치는 분노를 삭히는 수단으로 또는 개혁이라는 정의사회 구현이란
정치적 이념이 스며져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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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림은 이하응의 30대 중반에 그린 난화라고 한다.
훌쩍 자란 훤칠한 키의 난초 세 줄기 잎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가늘면서도 길게
드리워져있다.
짙은 먹으로 그려진 긴 난잎과 옅은 먹으로 표현된 짧은 난잎과 꽃대는 논담의 차이로
화면의 깊이감을 보여준다.
향기를 내뿜고 있는 꽃대들은 잎과 함께 왼편으로 기울어져 마침 한 마음 으로 함께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화제: 동심지언 기취여란은 주역 계사편 13번째 괘인 천하동인에 나옴,
" 같은 마음의 말은 그 향기가 난과 같다."
우리집의 난과 혜(일경구화)는 쑥 보다 많아서/
심벽에 바르듯이 마음대로 칠하고 어지럽게 발라도 되네/
가소로운 것은 겨우 말을 배운 아이 조차도/
붓을 거꾸로 잡고 봄바람을 그릴 줄 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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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사 묵란도
** 소호 김응원
* 석파 묵란도
* 석파 석란 대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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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2.23. 한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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