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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 목에 혹이 달려 혹부리 영감이라고 불리는 노인이 두 사람 있었다.
두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은 마음씨가 착했고 다른 이는 돈 많지만 심보가 고약했다.
어느날 착한 혹부리 영감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날이 저물어서 묵을 곳을 찾다가
빈집을 발견해서 하룻밤을 쉬기 위해 들어갔다. 혼자 무섭고 그래서 잠이 통 오지않았다.
그런데 밤이 깊어지자고 근처에 살던 도깨비들이 몰려와 예니 밤처럼 이들이 춤을 추며
즐기자 숨어서 개암 몇개 먹고 있던 영감도 흥에 겨워서 저도 모르게 노래를 불렀다.
노래에 감동한 도깨비 두목이 "영감, 그 고운 노랫소리는 어디에서 나오는 거요?" 하고
하고 물었더니 노인은 농담삼아 "목에 달린 혹에서 나오는 것이오."라고 말했다
도깨비는 재물을 줄 테니 그 혹을 자기들에게 팔라고 졸라서 혹을 떼가는 대신 방망이를
주고 갔다. < 이후 전개과정은 우리 모두가 아는 '혹부리 영감 이야기' 전반부다. >
* 버전이 몇가지 있는데 / 노래가 입에서 나온다 - 도깨비는 믿지 않는다./ 개암나무의
열매가 등장한다.-조선시대까지도 제사상에 밤 대신 개암을 올렸고 세금과세한 물품
- 도깨비 두목은 혹뿌리 영감이 숨어있음 앎 , 배가 곺아 한 두알 개암 깨무는 소리듣고
< 개암 - 제례 지킴은 수신재가의 기본 , 도깨비(초월적 능력자)의 양면성 해학적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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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며(한국미학 사상과 의식의 보편적 주요개념)
< 미술분야- 미의식이 소박미· 단순미, 자연주의 이념에 많이 경도됨
공연분야- 풍류, 멋, 고졸, 해학 ; 시간예술도 삶의 문제와 연결됨 >
- 기초학문자료센타
한국의 전통적 보편적인 미의식은 ‘ 맛과 멋을 느끼고 창출할 수 있는
의식 ’으로 신명, 해악, 소박, 평온이 미의식으로 발현되어 왔다.
신명= 영혼을 깨우는 생명의 힘으로 삶의 역경을 이겨내는 흥겨운 정서
소박= 단순하고 인위적 기교에 의한 꾸밈없음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움
평온= 저울대가 균형을 이루는 모습으로 균등하여 다툼이 없는 자연주의
해학= 사회의 부조리와 부패한 권력을 희롱하고 낙천적으로 삶을 긍정하는
달관과 지혜- 자귀 자강 자주
해학예술= 현실 풍자적인 리얼리즘이나 이상적인 낭만주의와 통한다고 봄
풍자는 주로 새로운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구태연한 행동을
고집하거나 부당하게 권력을 유지하려는 사람을 대상으로 삼아 그들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과 공격을 가하는 것으로 , 이때 풍자를 당하는 사람은
자신의 모슨과 잘못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심한 모욕감을 느끼게
된다.
반면 해학(기롱지게할 諧해+ 희롱거릴 謔학)은 단어의 의미로
부조리한 권력을 희롱하면서도 공동체적 화합을 깨뜨리지 않을 만큼의
감당(포용 능력을 마련)하여 상대의 부당함을 비유적으로 지적하기에
대상은 굳이 적대적 관계로 주체와 대립 각을 세울 여지가 없다는 것
해학이 담긴 예술작품은 사회의 경직된 관습이나 부조리를 반영한다는
점에서는 리얼리즘의 성격이 있다.
19세기에 서양에 등장한 리얼리즘은 중세기를 관통하는 신화적 주제를
다룬 고전주의와 이상주의적 낭만주의에 반발하여 등장하였다.
그런데 실제 경험할 수 있는 현실을 유일한 가치로 주목하며 역사적
현실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려는 태도는 좋았으나 정도를 넘어 자본주의
사회와 부르주아 계급의 모순까지도 풍자하고 비판함으로 기득권층의
저항을 심하게 받게된 것이었다.
반면 18세기 후반기에 등장한 우리의 해학예술은 사회적 현실을 희롱
하면서도 보편적인 인간의 꿈과 공동체적인 이상을 담았기에 지배층과의
갈등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었다.
이는 우리의 해학적 미의식이 한국 특유의 자연친화적인 풍류사상과
만물 평등주의에서 비롯돤 것이기 때문이다.
해학은 사회적 통념과는 달리 자신의 불행한 조건을 관조하고 그것을
객관화시켜 그것으로 인해 생긴 긍정적인 면을 부각하는 유머감각으로
인간이 주관적으로 설정한 우열과 주종의 관계를 재설정하고 반전시킨다
여기에는 모든 존재를 존귀하게 여기는 만물평등사상이 담겨있다.
우리의 해학예술이 조선 후기에 와서 쏟아져 나온 이유도 삼국시대부터
중국에서 유입된 불교와 유교의 지배력이 약해진 시기, 즉 중인과
서민의 신분이 상승하고 부가 축적되어 일반 민중들이 자신의 억압됐던
내면을 어느 정도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던 때, 였다.
그래서인지 한국의 해학예술은 지배층의 상류문화에서보다 서민들의
민중예술인 , 탈춤, 판소리, 풍속화, 사설시조 등에서 잘 들어난다.
우리의 해학예술의 뿌리는 삼국시대 부터 벽사를 위해 만들어져왔던
전통 민속신앙의 조형물인 귀면 기와, 장승, 사찰 사천왕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러한 귀면이나 가고일은 악귀를 물리치기 위해 대부분 섬득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얼굴형상을 하고 있지만 귀면 기와는 유독 무서움과
친근함이 공존하는 이들의 표정에서 징벌과 포응의 양면성을 지녀서
악의 징벌에 선과 악을 이분법적으로 분별하지 않는 포용이란 한국인
특유의 해학이 담겨있음을 볼 수 있디.
* 풍속화 - 조선시대 중기 이후
윤두서, 신윤복, 김득신 등이 개척하다.
이들의 작품은 당시 봉건적 신분사회의 경직된 위계서열에서 벗어나
서민들의 소소한 일상과 노동의 가치를 새롭게 주목한다는 점 =해학적
* 현대 작가등에 계승되는지 여부
이중섭, 장욱진 , 등= 전통의 현대화가 고답적인 양식이아니라 미의식을
통해 계승됨으로 국제적인 경쟁력 확보가 가능하게 되었다
두 화가 모두 향토적 세계를 뛰어 넘는 보다 이상화된 동경의 세계로
건너가는 계기가 전쟁이란 공통점이 보인다.
그리고 소묘와 형상성을 다 갖춘 그림으로 우리 현대 미술에서 최고의
경지에 이른다.
∵ 해학이란 무었인가?
동물 중에 웃을 수 있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다고 한다.
그것은 웃음이 고차원적인 감정의 표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적 유머라고 할 수 있는 해학은 웃음과 관련된 미의식이다.
웃음에는 다양한 감정상태가 존재하며, 해학적 웃음은 일반 웃움인
냉소, 고소, 실소, 조소 와는 다른 특별한 감정상태에거 나오는 것이다.
해학적 웃음 = 특별한 감정상태에서 발현되는 웃음(나중 기술)
그런데 서양에서 예술의 한 장르로 오랜 역사를 가진 희곡은 ,
함께하는 비극이 인생의 해묵은 깊은 고뇌와 뜻밖의 슬픔을 다루는
반면 , 인생에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들에서 웃음을 자아내기 위해
비교적 가볍고 명랑하게 처리한다.
희극에서의 웃음에는 웃음의 주체와 웃음의 대상이 있고, 등장인물의
웃음과 관객의 웃음 등 직접 인간적 것에 연관되어 존재하는것이다.
대상의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웃음이나 주체가 갖는 상대적 우월감에서
나오는 웃음 등을 말한다.
희극적 웃음 에는 웃음의 유발 요소가 대면시 위축되거나 경쟁되는 대상이
뜻밖의 외소함으로 긴장이 풀리거나 상대적 우월감이 발견시 발현되는
웃음 등으로 이런 웃음은 갈등과 대립을 해소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지만
오히려 갈등과 대립을 야기하는 원인이나 수단이 되기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희극은 보통 이하의 악인을 모방하고, 비극은 보통 이상의 선인을
모방한다." 라고 했다.
그가 정의한 희극의 주인공으로서 악인은 경박함 때문에 자신의
지위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사람을 지칭하기도 한다.
이처럼 타인의 어리석은 행동에서 나오는 웃음은 자족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며, 씁씁한 감정에서 나오는 비웃음이다.
대신, 두려움과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켜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비극을 중요한 예술로 간주했다.
희극적 웃음거리가 되는 인간은 자신의 본성과 빛깔을 잃고
남의 행동, 권력형 부조리 등 ,을 기계적으로 모방하며 사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을 보면서 나오는 웃음은 내적 기쁨의 표현이 아니라
상대를 조롱하는 일종의 비웃움(조소)이다.
그중에는 세익스피어의 낭만희극에서 처럼 단순히 조롱이나 교훈을 주는
역활이 아니라 현실의 갈등이나 고통을 잊게 만드는 역활도 한다.
그러나 비현실적인 우연한 상황이나 초자연적 환상에서 생겨나는 웃음은
관객에게 즐거움은 주지만 사회를 변화시키기에는 본질적 한계를 보인다.
이처럼 희극적 웃음은 대부분 그 동기가 타자에 있고 타자와의 거리 두기를
통해서 나오기 때문에 주체와 타자가 조화되지 못하고 분리된다.
이제 좀 더 들어가 보자
웃음을 동반시키는 '부조리한 현실 그러내기'라는 점에서는 풍자와 해학이
공통점이 있지만, 풍자는 sarcastic(대상에게 창피함을 주기위한 신랄한
말이나 조롱)하는 반면 해학은 sardonic(역경에 맞서 주체가 냉소적이며
익살스러운)하다는 점에서 대상에 대한 어조나 태도, 주체의 감정이 다르다.
풍자는 현실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비판하고 그 것을 개혁하고져 하는
적극적 의지를 담고 있어 냉소적이며 공격성을 띤 웃음이라면,
해학은 대상의 행위에 대해 호감과 연민을 느끼게 하는 냉소적이지만
익살스러운 웃음이다.
인생을 낙관적으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관조적이라 볼 수있다.
대표적인 예로 흥부가 먹을 것을 좀 얻기 위해 형 놀부집을 방문했을
때 부억에서 짠순이 놀부 마누라에게 밥주걱으로 뺨을 얻어맞았었다.
그러나 흥부는 당황하거나 화를 내는 대신, 뺨에 붙은 밥풀을 떼어먹으면서,
맞지 않은 반대편 뺨을 내밀면서 "여기도 때려 주십시요, 형수님 "하고
웃움을 지어내게 하는 정서다.
* 해학의 사전적 정의는 익살스럽고도 품위가 있는 말이나 행동으로
희극적 웃음이 상대적이라면 해학적 웃음은 자족적이다.
자족적이라는 것은 처한 상황 인식과 문제해결 방식도 자신의 몫임을
스스로 인식하는 가운데 웃음의 동기가 자신의 본성에서 자발적으로
우러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웃음은 상대적 우월감에서 나오는 비웃음과는 질이 다르다.
해학의 바탕에는 인간을 신분과 계급으로 서열화하고 차별하는
부조리한 권력을 희롱하고, 각자의 본성과 차이를 존중하는 평등정신이
자리한다. 평등이란 각자의 자유로운 본성을 발현될 수 있고 ,
자유(자강)는 자신의 본성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인격으로서의 품위이란 3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공식적으로 주어지는 직품이나 직위를 아울러 이르는 말
둘째 한 인간이 갖추어야 할 위엄이나 기품 (= 타자을 존중하는 성품 )
셋째 사물 자체가 지닌 고상하고 격이 높은 인상 (= 존귀함 )
그러므로 품위가 있다는 것은 타자의 불행에서 나오는 상대적인 차원이
아니라 모든 존재는 그 자체가 본성인 존귀함이 있다는 것을 존중하는
것이며 자신의 존귀함을 신뢰함으로 상대적 비교심에서 벗어나
자신의 존재감만으로도 본성에서 나오는 행복을 느끼기에, 부편부당한
사회적 위계질서나 기성화된 문제를 응대함에, 주체가 그 마음에 여유를
잃지 않는 덕성을 갖춘 능력(지혜)을 말한다.
▸ 한국인의 문화적 해학의 근본적인 뿌리(기원)
최치원 (崔致遠, 857-908)은 그의 난랑이라는 화랑의 비碑에 쓴
비문의 서문인 '난랑비서(鸞郞碑序)'에서
儒佛仙가 반도에 전래되기 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생활지침서로 삼아왔던
풍류도를 언급하면서 원래부터 우리나라의 존재했던 풍류도에 이미
三敎에서 강조하던 덕목들이 강조되며 선인들이 생활했다고 주장한다.
풍류= 뭇 생명을 어우러지는 接(접)化(화)群生(군생)으로 정의한다.
풍류는 나와 남을 분리하여 고립시키지 않고 바람처럼 물처럼 타자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친근하게 어우로지는 고대로부터 이어지는
한국인의 자연친화적인 풍류정신에서 해학 그것의 뿌리를 찾는다.
결국 난랑비서에 유불선 3교의 조화정신이 이미 생활화되었음을 엿볼 수
있으며 해학이 불교나 유교, 도교 같은 외래문화의 영향하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본다.
▸ 귀면 기와 , 장승
* 귀면기와
전통 민속신앙의 상징물로 만들어진 한국의 귀면 기와는
액운과 화마를 물리치기 위해 목조건물의 마루와 사래 끝에 괴수의
얼굴형상을 한 기와를 만들어 붙이는 것
귀면이나 가고일(빗물 받이)을 악귀를 물리치는 벽사의 역할을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대부분 섬뜩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귀면 기와는 유독 무서움과 친근함이 동시에 느껴질
정도로 독특한 표정을 하고 있다.
다소 장난끼가 느껴지는 이러한 표정에는 선악을 이분법적으로
분별지 하지않고 악을 징벌하면서도 포옹하려는 한국인 특유의
해학이 담겨져있다.
* 장승
장승은 재앙을 막고 평화를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 마을 입구에
나무나 돌로 세워 놓은 것이었다.
더해서 조선시대 활발하게 만들어진 장승은 20리 마다, 30리마다
작고, 큰 장승을 세워 그 곳의 위치와 이웃 마을과의 거리를 표시하는
이정표의 역활을 했다.
한국의 장승은 초월적인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려고 하기 보다는
인간의 본성과 휴머니즘을 떠오르게 한다.
그것은 인간의 표피적인 희노애락의 감전이 아니라 감정이 분화되기
이전의 양면성이 존재하는 본성이 구조다.
감정의 표면에서는 슬픔과 기쁨, 사랑과 증오가 대립하지만, 우리의
본성에서는 대립적인 감정이 하나로 융합되어 있다.
그래서 슬픔이 심해지면 웃음이 나오고 , 너무 웃으면 눈물이 나는 것이다.
이러한 장승이 현대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사실적 묘사에 지우치지않고
추상적인 인간의 감정을 극대화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내적 감정과 느낌을 표현하는 것은 현대 표현주의의 전형적 특징이다.
▸ 풍속화
서양에서 평범한 일상을 그림의 주제로 다른 리얼리즘이 등장한 것은
객관적인 과학정신과 경험적 사실을 중시하는 실증주의가 팽배한
19세기 중반이다.
대표작으로는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 파리스의 심판 1515~17
에두이르 마네-풀밭 위의 점심 1863
귀스타브 쿠르베-돌 깨는 사람 1849
장프랑수아 밀레- 이삭 줍는 사람들 1857
한국에서는 이와 유사한 경향이 18세기 무렵의 풍속화에서 나타난다.
이 시기의 풍속화는 기존의 산수화나 문인화의 전통에서 벗어나 평범한
일상 생활의 생활모습을 주제로 다루었다.
서양에서 리얼리즘이 처음 등장했을 떼 기득권의 저항을 받았듯이, 조선에
서도 풍속화는 고상한 문인화에 비해 저속한 그림으로 인식되어 속화라고 불렀다.
대표적인 작가로 윤두서, 김홍도, 신윤복, 김득신 등을 뽑을 수 있다.
이들의 풍속화는 현실을 단순히 기록하는 데 그치지않고 한국인 특유의
해학적 정서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고 계승된 풍속화는
점차 하나의 독립된 장르로 자리 잡음으로서 한국적 리얼리즘이라 칭할만큼
흐름이 형성되었다.
* 공재 윤두서(1668~1715)
공재 윤두서는 전통 산수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서민의 모습으로 대함으로
써 풍속화의 길을 열었다.
그는 효종의 스승이자 남인의 거두인 고산 윤선도의 증손이었다.
서인과 투쟁에서 패한 윤선도는 유배생활과 은거생활을 한 불행한 정치인이자
문인이었다.
집안이 정치적 탄압으로 윤두서는 진사에 합격하고도 관료에 등용되지 못했다.
당시 모든 부문에서 박학다식하고 통달한 지식인이었던 그가 전통 산수화에서
벗어나 풍속화의 영역을 개척할 수 있었던 것은 실사구시를 중시하는 그의
학문적 성향과 무관치 않다.
<자화상>
선비의 굳은 기개와 소외된 지식인의 고독을 느껴지는 형형한 눈매.
세필로 터럭 한 올 한 올을 정밀하게 그린 치밀한 관찰력이 돋보인다.
실증적인 학문태도와 마찬가지로 그림을 그릴 때도 대상을 철저하게 관찰하고
대상과 리듬이 하나 된 연후에야 비로소 붓을 들었다 한다.
<휴식>
산수화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고결한 선비가 있어야 할 자리에 한 농민의
모습을 그려 놓았다. 짚신을 신은 농부는 넝쿨이 내리뻗은 나무 그늘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그는 지체 높은 선비처럼 거추장스러운 도포가 아니라
시원스런 일복을 입고 도롱이 위에 앉아 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휴식을 취하는 이 순간 만큼은 신분의 귀천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일 만큼 열심히 일한 자만이 참다운 휴식의 가치를 누릴 수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 고답적인 산수화 전통에서 천한 신분으로
여겨졌던 농민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것은 파격적인 일이었다.
이는 조선 후기 농업기술이 발달하고 상공업이 발전 시기로 봉건적인 신분
사회가 흔들리고 경제적 부를 획득한 중인의 사회적 지위가 급상승함으로
큰 변혁이 일어난 사회변동의 분위기가 반영되고 있다.
-<풀밭 위의 점심>
전통적인 그림에 당대의 인물이 삽입되는 형식은 19세기 후반 인상주의
작가들이 시도한 전략으로 유럽은 프랑스 혁명 이후 시민 민주주의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신분상승을 이룬 신흥세력으로 등장한 부르주아 계층의
막강한 재력과 그로인한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문화를 사회에
요구함과 그러한 사회적 변동이 그림에 반영된 결과이다.
*김홍도 (金弘道, 1745년 ~ 1806년 ?)
윤두서에 의해 시도된 풍속화가 독립적인 장르로서확실하게 자리를 잡은
것은 18세기말 단원 김홍도에 의하여서다.
조선 후기 예술의 르네상스는 사실 정조의 후원에 힘입은 결과이다.
정조는 규장각에 도화서와 별도로 자비령화원을 두어 직접 화가들을
관리할 정도로 미술에 관심이 많았다.
왕의 신뢰와 총애를 한 몸에 받을 만큼 단원은 산수화, 화조화, 문인화에
능통했고 특히 서민들의 일상을 그린 풍속화에 두각을 드러냈다.
궁 밖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정조는 여행 풍속을 그린 김홍도의 <행여
풍속도>를 보고 감동하여 그에게 백성들의 생활상을 그려오게 한다.
-<벼 타작> 18세기 후반
농민들이 자유로운 복장과 다양한 자세로 중복됨이 없이 서로 협력 하에
일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농민들의 표정이 한결같이 밝고 신명나게
일에 몰입하는 관경이다.
반면 뒤에서 멍석 위에 팔베개를 하고 누어있는 사람은 이들을 관리하는
마름으로 그는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감배고 피워보고, 틈틈이 술도 마셔
보지만 무료하고 권태로워 보인다. 그리고 체면 때문에 더워도 옷을 벗지도
못하고 커다란 갓까지 쓰고 있다.
봉건사회에서 노동은 피지배계급을 지배하는 도구로 전락했지만 , 단원은
노동을 흥겨운 놀이처럼 묘사함으로써 이러한 관계를 반전시키고 있다.
-<여름, 밀 타작하는 사람들> 1868~74 장프랑수아 밀레
유사한 주제지만 밀레는 원근법에 의해 전체적인 묘사에 치중함으로서
등장 인물들의 개성이나 미묘한 심리표현 섬세하게 드러나게 보이지못한다.
-<점심> 18세기 후반
여기에서도 단원은 원근법을 무시하고 앞 뒤의 사람을 거의 같은 크기로
묘사한다. 여름날 오전 일을 마친 농부들이 새참을 먹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열 명의 사람이 모두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어서
각자의 개성과 심리까지 짐작하게 한다.
조선시대에는 아침 저녁은 든든히 먹지만 점심은 點心(점심)은 말그대로
‘마음에 점을 찍듯이’간단히 먹었다.
그러나 농촌에서 고된 노동을 버티기 위해 먹는 음식은 새참이라 하여
푸짐하게 먹어야한다. 땀 흘려 일한 뒤 잠시 쉬면서 먹는 소찬과 막걸리
한잔은 노동없이 먹는 양반들은 누릴 수 없는 즐거움이 된다.
* 신윤복 (申潤福, 1758년 ~ 1814년경)
서민들의 일상에서 해학을 끌어낸 김홍도와 달리 혜원 신윤복(1758~ ?))은
주로 상류층 양반들의 풍류와 기방문화를 대상으로 삼았다.
그는 체면 문화기 지배하는 조선사회에서 양반들의 애정행각과 에로티시즘을
그의 그림에서 양반들은 사회적 체면보다 자신의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사회적으로 금기시되거나 저속하다고 간주되는 행동을 서슴없이 감행한다.
사회적 금기를 다루기 때문에 그의 그림에서는 언제나 사회적 도덕과 개인의
본능 사이의 갈등에서 오는 긴장이 있다.
하여 사회적으로 금기된 사랑을 주제로 다룬 혜원의 작품들에는 인간의
본능을 억압하는 봉건적 사회의 경직성이 반영되어있다.
-<월하밀회> 18세기 후반
야밤에 후미진 골목에서 전복 차림의 포교와 여인이 은밀히 밀회를
나누는 장면 묘사이다.
포교는 왼손에 휴대용 무기인 철편을 들고 오른손으로 여인의 허리를
감싸고 있는데 여인은 이미 결혼한 남의 아내로 보이며 모퉁이 너머
담에 바싹 붙어 망보는 여인은 만남을 주선한 기생으로 보인다.
야밤 길거리에서 긴박한 밀회를 하는 것을 보면 이들의 관계가 위험한
사랑임을 암시한다.
이날따라 훤히 뜬 보름달의 보는 이들의 가슴을 더욱 졸이게 만든다.
- <주유청강> 신윤복
녹음이 우거진 여름날 병풍같은 암벽 아래 세명의 양반들이 배 안에서
기녀들과 풍류를 즐기는 장면이다.
왼쪽 양반은 턱을 괴고 앉아 강물에 손을 담근 여인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고 , 반면에 성격이 급해 보이는 오른쪽 양반은 기생에게 담배대를 물려
주며 어깨에 손을 얹고 적극적인 애정표현을 하고 있다.
가운데 양반은 허리츰에 하얀 띠를 두룬 것으로 보아 아직 상을 치르는
중이라 멀리 자신의 파트너가 생황을 부는 모습을 뒷짐지고 바라보고만
있다.
-<단오풍정> vs < 그네 > 장오노레 프라고나르 1767
단옷날 여인들의 풍습을 그린 ‘단오풍정’에서는 여인네가 인적이 드믄
계곡에 나가 창포물에 머리를 감기도 하고 그네를 타며 모처럼의 자유를
만킥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도 없을 것 같은 깊은 계곡에서 이들을 은미히 지켜보는 시선이
있다, 왼쪽 위의 바위틈에서 나이 어린 두 동지승이 호기심이 어린 표정으로
이 장면을 훔쳐보고 있는 시선이다.
이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녀들은 가슴과 허벅지 등 속살을 드러낸 채
목욕 을 하든지 머리를 감는 자태가 백일하에 그려져 보여주고 있다.
해원의 작품은 사회적 규범과 개인의 억압된 본능을 분출하고픈 심리적
갈등을 보여주며 시공을 초월하는 공감대를 끌어내고 있다.
로코코 미술의 에로티시즘을 더 노골적이다.
<그네>에서는 핑크빛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어둠 속에서 그네를 타고
있다. 오른쪽 숲에서 나이 많은 귀족이 그네를 밀어 주고 있다.
화려한 의상을 입은 여인은 왼쪽 다리를 들어 올려 치마 속이 보일만큼
관능적인 자태로 다리 밑에 비스듬이 누워 있는 젊은 남자를 희롱하고
있다. 사랑의 신인 큐피드 조각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들의 사랑은
노골적이고 향락적이다.
* 긍재 김득신 (金得臣, 1754~1822 )
단원, 혜원과 함께 조선의 3대 풍속화가로도 불리는 긍재 김득신은
큰아버지인 김응환부터 4대에 걸쳐 많은 화원을 배출한
그림 명문가 출신이다.
그의 초기작인 화조, 인물, 풍속화에 이르기까지 단원 김홍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단원이 배경 없이 인물에만 집중한 것과는 달리
그는 주변환경을 함께 그려 넣었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특히 그는 서민들의 평범한 일상에서 우연적인 순간을 생생하게 포착하여
그린 점이 그만의 특유한 해악이 느껴진다.
긍재의 해학은 인간의 이성보다 우선하는 본능적인 행위에 주목한다.
- <파적도> 18세기 후반
어느 한적한 시골마을 농가 가정집에 고양이가 들어와 병아리를 물고 튀는
바람에 이를 본 집주인 내외와 닭 일가의 기겁한 반응을 해학적으로 묘사한
그림으로 배경의 살구나무가 연분홍 꽃망울을 터트리려고 하는 따스한 봄날
갑자기 어디선가 고양이가 일으킨 소동의 순간을 포작한 것으로
남편은 돗자리를 짜다가 넘어지다 시피 다급하게 담뱃대를 뻗어 고양이를
잡으려고 하고, 뒤에서 황급히 달려오는 아내의 모습도 웃음을 더한다.
제목의 파적도는 '고요함(寂)이 깨진(破) 모습을 그린 그림이란 뜻으로,
말 그대로 고요하고 평화롭던 와중에 돌연 나타난 고양이로 인해 분위기가
급변한 상황을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연속적인 동작은 돌발적인 사건으로 발생하는 본능적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성은 본능보다 우월함으로, 동물은 인간보다 열등하다는
편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생명의 뇌에서 이루어지는 본능작용은 감정의 뇌나, 이성의 뇌보다 결코
열등한 작용이 아니라는 것이다.
긍재의 작품은 이성보다 우선하는 본능적인 행동을 순간적으로 포착함으로
경직된 긴장을 풀어 준다.
-<밀회투전>
탕건을 쓴 양반들이 방에서 투전하는 장면이다.
그림에서 네 남자들이 투전에 몰두해있다. 방안에는 술상과 요강, 그리고
가래를 뱉는 타구가 준비된 것으로 보아 밤을 새울 요량이다.
불빛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종이로 가린 창문에서 도박성 놀음이
창궐하여 규제가 엄했던 당시의 사회상황을 잘 짐작하게 하여 준다.
이 날의 주인공은 앞의 두 사람보다 크게 그린 뒤에 있는 두 사람이다.
술상 앞에 앉은 호탕해 보이는 남자는 벌써 한잔했는지 붉어진 얼굴로
투전판을 노려보고 있다.
그는 이번 판은 죽으려는 것인지 패를 잡은 손을 뒤로 빼고 있다.
맞은편의 신중하고 소심하게 생긴 안경잡이는 패가 안 좋은 듯 인상을
찌푸리며 패를 내밀면서 투전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 가슴팍으로 바싹
붙이고 눈치를 살피고 있다.
조용한 방 안에서는 신중한 소심남과 호탕한 허세임의 불꽃 튀는 심리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판에서 누가 진짜 고수인지 알 수는 없으나 마치 배우들의 연기처럼
포커페이스를 시도하는 모습들이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합리주의의 관점에서 이성은 감각적 대상이나 초월적 존재를 인식하게
하고 모든 상황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위대한 능력으로 간주한다.
그래서인지 인간은 이성을 권력의 도구로 이용하여 타자를 지배하는
명분과 논리로 삼기도 한다. 인간의 사회적 갈등은 이러한 이성의 부작용
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이성과 본능은 우열관계가 아니라 서로 비교가 불가한 다른 기능임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이것을 주종의 관계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합리주의적인 서양인들의 겨우 이러한 경향이 심하다고 한다.
긍재의 해학은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행동을 드러냄으
로써 이성과 본능의 우열관계를 와해시키고, 마음의 긴장을 풀어주는
효과가 있다.
*조선시대에 봉건적인 신분제도가 계층간의 이동을 차단하고 사회를
경직되게 만들었다면, 근대기에는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고 민족을 분열시켰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극단적인 대립 속에 터진 한국 전쟁은 한국인 삶을
황패하게 했지만 그러한 역경과 혼동 속에사도 역설적으로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낭만적인 이상을 해학적인 예술로 승화시킨 화가들이 있었다.
* 이중섭 (李仲燮 1916 ~ 1956. )
1916년 평안남도 평원에서 전답과 과수원을 운영하는 부농의 아들로 태어나
일본에서 미술대학을 수학했으며 전도양양했던 이중섭은 한국전쟁 때 가족과
함께 남하하여 제주도와 부산 등지를 오가며 비참한 피난생활로 가족을 처가
가 있는 일본으로 보낼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됐을 때 그는 혈육의 정이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짓밟히는 현실사회 속에서 한낮 무능한 가장일 수 밖에
없었다. 가족을 떠나 보내고 끼니도 제대로 해결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현실
을 잊게 해주는 것은 예술가로서 그림을 그리는 것 밖에 없었다.
그의 작품 가족 시리즈는 불행한 현실에서 포기할 수 없는 꿈과 낭만을
해학으로 표현한 것이다.
가족을 주제로 한 그의 작품들에는 한결같이 아이들과 동식물이 함께 어울려
신나게 노는데 놀이는 이중섭의 해학을 이해하는 중요한 코드다.
<물고기와 노는 두 어린이> 1950년대
이 작품에서는 팬티도 입지 않고 상의만 걸친 두 어린이가 물고기와
짓궂은 장남을 치고 있다. 위 어린이는 허리를 숙여 물고기의 꼬리를 잡고,
낚싯줄에 아가미가 걸린 물고기는 밑에 엎드려 있는 어린이의 상의를 물고
있다. 하늘로 솟은 엉덩이가 적나라하게 노출된 어린이는 손에 쥔 낚싯줄을
자신의 발가락에 걸쳐 위에 있는 어린이의 엉덩이를 지렛대 삼아 물고기를
들어올리고 있다.
이처럼 서로 잡고 잡히는 긴밀한 관계를 통해 그는 놀이의 세계를 형상화
하고 있다. 이것은 중심과 주변, 인간과 동물의 주종관계를 와해시키는
그의 전략이다.
그의 작품의 사상는 모든 만물을 평등하게 대하는 생태학적 세계관이 반영 되어 있다.
그의 작품을 지배하는 사상은 인간중심주의가 아니라 만물평등
주의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인간보다 열등한 존재가 아니라
인간과 함께 어우러져 하나가 되는 놀이의 파트너다.
- < 춤추는 가족> vs <춤> 앙리 마티스 1909~10
작품 춤추는 가족은 온가족이 함께 알몸으로 강강술래를 하며 놀고 있다.
손을 잡고 원을 만들며 도는 강강술래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전통적인 민속놀이다.
과거 조선의 가부장제적 사회에서는 여성이 노래를 부르거나 외출을 하는
것이 자유롭지못했다. 그래서 여성들은 추석날 밤에 모여 강강술래를 하며
억압된 감정을 해소했다.
손에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면서 원형으로 도는 강강술래 놀이에는 차별
없는 평등사회를 향한 한국인의 염원이 담겨있다.
비슷한 작품으로 앙리 마티스의 춤이 있다.
이 두 작품은 황색과 청색의 평면으로 대상을 단순화하면서 역동적인
춤의 동작을 극대화했다.
두 작품은 구도가 비슷하지만 마티스의 춤은 절제된 감정표현으로 다소
엄숙한 숭고함이 느껴진다면 이중섭의 작품은 각 캐렉터의 익살스러운
표정이 잘 그려져 있다.
가난으로 가난을 피할 수 없었지만 그것을 열등한 조건으로 생각하지 않고
차이로 받아드렸다. 떠돌이 생활로 그림 그리기 어려워 궁여지책으로 담뱃갑
속의 은박지지를 날카로운 못으로 눌러 은지화까지 그렸던 이중섭은 삶의
역경에 좌절하지 않고 그것을 반번의 기회로 삼았던 그의 예술세계는 해학의
정신이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그에게 놀이의 세계는 단순히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일시적인 수단이
아니라 우리가 인생에서 도달하고져 하는 낭만적인 이상세계였다.
* 장욱진 (張旭鎭, 1917-1990)
1918년 충청남도 연기군에서 4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8세 무렵부터
그림에 대한 소질을 보였으며, 1937년에는 전조선학생미술전람회에서
최고상을 받고 1939년에 도쿄 제국미술학교에 진학한다.
그의 작품은 일상적 이미지를 정감 있는 형태와 독특한 색감으로 화폭에
그려냈으며 토속적인 감성을 추상화시킨 독보적인 화가로 인정받고 있다.
아동화를 연상케 하는 특이한 기법으로 동심(童心)의 세계를 파헤치고
있는데 검소한 색채와 화면의 평면적인 처리가 두드러지다.
지속성과 일관성은 장욱진 그림의 주요한 특징으로 재료를 가리지 않는
자유로움과 하나의 고정틀에 얽매이지 않는 창작 태도를 보여주며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했다.
장욱진의 해학은 세속에 물들지 않는 인간의 본성과 천진한 동심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의 예술적 스승은 다름 아닌 어린아이다.
우리는 정치적인 사람을 대하면 경계심 작동으로 긴장되고 경직되지만
해맑은 아이들을 보면 유쾌해지고 미소를 짓게된다.
왜냐면 어린이들이 행돈을 때론 엉뚱하고 이성적 분별력이 없어 보이지만
불가능을 가능하게하는 유쾌한 상상력과 해학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격동의 시대를 상랐으면서도 항상 동심의
세게를 동경하고 자신의 본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젊은 시절 도교제국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그곳의 가르침과
유행에 끌려가지 않은 것도 이러한 의지 때문이었다.
비록 서양화의 재료인 유화를 사용했지만 그의 그림에는 소박하면서도
해학적인 한국인의 미의식이 배어있다.
- <자동차가 있는 풍경> 1953
그의 초기 작품 ‘자동차가 있는 풍경’은 한국전쟁 중에 부산 광복동으로
피난하여 생활하면서 그곳 풍경을 그린 것이다.
비뚜름한 선으로 빨간 벽돌집 위에 파란 자동차를 중아에 큼지막하게
묘사하고 위에는 전통 서양화의 원근법이나 명암법을 무시하고 마을풍경을
작고 밀도있게 그렸다. 단순화된 형태와 크기로 멋데로 변형하여 마치
7~8세 정도의 어린이의 그림응 보는 듯하다.
대개 이 시기의 아동은 대상을 바로 눈앞에서 보고 그려도 사실대로 묘사
하지 않고 , 자신이 인지한 대로 변형하여 그린다.
이처럼 시각에의한 객관성에 의존하지 않고, 마음으로 인식한 방식으로
그리기 때문에 어린이들은 진솔하고 개성있는 표현이 가능하다고 본다.
- <나무와 새> 1957
작품 ‘나무와 새’에서 화가는 커다란 새 한 마리와 나무 한 그루를 그렸다.
나무 위에는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나무 안에는 고개를 뒤로 젖힌
아이가 있다. 이처럼 그의 그림의 주제는 어떤 가창한 사건이 아니라 그냥
눈만 뜨면 마주치는 자연의 일상이다.
그의 작품에는 해와 달이 공존하고 무거운 집이 나무 위로 올라가는 것은
시간과 중력을 초월하는 유아적 상상력이 결과다.
이처럼 시간과 중력을 초월한 자유분방한 상상력은 자연에 취해 나오는
것이 었다. 평상시에는 자연에 취해 그림을 그렸고 , 쉴 때와 그림이 않되
갈등이 생기면 술에 취해 살았다고 한다.
취한 상태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분별력이 약해져서 세계를 통일감 있게
인식하려는 감성적 상상력이 증대되고 그런만큼 나와 타자의 괴리감이
사라지고, 타자를 마음으로 존중하게 된다는 것으로 그의 예술적 상상력은
이러한 취함의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되기도 한다.
부연하면 자신의 온 감각을 열어 몽환적으로 취한 상태에서 주체의 내부와
외부, 그리고 자신과 우주를 연결한다. 그러면 경직된 논리와 물리적인
법칙에서 벗어나 어린이 처럼 순수하고 자유로운 정신의 유희가 일어난다
는 것이다.
그래서 장욱진의 그림은 중력의 지배를 받는 현실의 원칙을 가뿐하게
넘는 천진한 상상의 세계인 것이다.
하지만 천진난만한 작품의 세계에도 보이지는 않치만 존재하는 작가의
치밀한 조형적 기교가 완성되어진다.
이점이 그의 작품에서 발생하는 은근한 매력이다.
새는 걷고 아이는 날고 있는 '나무와 새'를 다시 들여다 보자.
작은 그림이지만 이 그림은 맨 아래 있는 큼직한 새 한 마리, 하늘을 쳐다
보는 아이가 들어 있는 중앙의 나무, 그리고 위쪽 나무의 가장자리에
붙어 있는 집들과 달과 해로 3등분으로 그려져 있다.
그런데 나무와 집은 한 덩어리인데 새는 떼어 놓아 다시 2등분으로
구분했다. 왜일까?
나무와 사람은 지상의 존재지만 새는 천상의 존재이다.
사람은 자신이 딛고 있는 떵을 벗어날 수 없지만 새는 날갯짓으로
지상과 천상을 자유롭게 황래항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힘들수록 비상을 꿈꾸지만 그섯은 꿈에 그치기 일쑤다.
새는 그런 인간의 마음을 담는다.
새는 날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와 비상의 요구를 대신한다.
즉 새의 크기는 인간이 가진 꿈과 열망의 크기에 비례시켜 그린것.
또하나 새의 위치가 이상하다.
나무에 앉아 있어야 할 새는 지상에 정박되어 있고 대신 나무속의
아이는 둥근 연못 속의 떠있는 나뭇잎처럼 떠있다.
그리고 새의 꽁지 위쪽에 반달 같은 형상은 왜 그려 놓았을까?
좀더 자세히 보면 꽁지에 비해 새의 머리는 기형적으로 그게 그려져
머리쪽이 무거워 좌우 균형이 어그러졌다 무게의 중심을 잡아주어야
한다. 그래서 촘촘하게 배치한 그림의 제작년도와 함께 꽁지쪽에
배치했다. 결과적으로 그림의 조형적 균형의 미가 완성된다.
이 그림의 겨냥하는 것은 제목처럼 '나무와 새'가 아니라 새의
이미지를 빌린 현실원칙에서 벗어난 동심이 있는 동화적인 세계이다.
- 이 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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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서적: 미술로 보는 한국의 미의식2 - 해학
2019 최광진 미술문화
2024. 4. 28. 한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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