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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란의 역사적 흐름 ]]
공곡유란空谷幽蘭 의란조倚蘭操
習習風俗光陰以雨, 골짜기바람 살랑대며 부니 날 흐리다가 비까지 내리네.
之子于歸遠送于野, 가던 길 뒤돌아 가려하니 저 먼 들까지 배웅 하누나
何彼蒼天不得其所, 푸른 하늘은 어이하여 날 버리는가,
逍遙九州無有定處, 정처 없이 천하를 떠도니 오갈데 없는 신세로다.
世人闇蔽不知賢者, 세상 사람들 어둡고 마음이 막혀 어진 이를 몰라 본다네
年紀逝邁一身將老, 세월은 빠르게 흘러가고 이 몸만 늙어 가는구나.
- 공자(孔子 551-479) 의란조猗蘭操
蘭之猗猗 揚揚其香, 난 향기 그윽한데 아름답기 또한 그지없어라
不採而佩 於蘭何傷, 꺾어 품에 차는 이 없어도 서러워하지 말아라
今天之旋 其曷為然, 소용돌이치는 오늘의 세상, 어찌하다 이리 되었는가
我行四方 以日以年, 내가 세상을 떠도니 하루 한해 세월도 함께 떠돌았구나
雪霜貿貿 薺麥之茂, 눈서리 사방에 날리는데 냉이와 보리는 왕성하게 올라오네
子如不傷 我不爾覯, 공자께서 상처받지 않았다면 내 어찌 그대를 만났으리오
薺麥之茂 薺麥之有, 냉해에 냉이와 보리가 왕성해짐은 그들이 가진 속성일지니
君子之傷 君子之守, 군자가 마음의 상처를 입음은 그가 지키고자 하는 것 때문이리
- 한유(韓愈 768~824) 의란조猗蘭操
* 공극유란이란 현실의 높은 진입장벽으로 나라의 보살핌을 받지못하고 소외된 지역으로
내몰린 고달픈 인생들에게 불합리한 세상을 바꾸도록 가르침을 주시고져 발걸음 했던 이유
난에 군자의 이미지를 부여한 사람은 공자다, 공자의 언행과 행적을 적은 '공자가어' 나
그의 제자들이 행적을 엮은 '예기'에서 난은 반드시 고귀한 물건 ,군자의 덕행으로 상징됨
* 채옹(蔡邕, 133년 ~ 192년)은 후한 말기의 사학자 문장가 엮은 금조琴操에서
공자께서는 위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갈 때에 은곡을 지나다가
난초가 홀로 무성한 것을 보고 탄식하기를
"난초는 마땅히 왕자의 향기라 할 것인데 지금은 홀로 무성하여
뭇 잡초들과 섞여 있구나,
이는 현자가 때를 만나지 못해 비루한 사람들과 짝이 된 것과 같다"
하셨다.
- 금조琴操( 유가 문인들이 심신수양을 위해 홀로 연주하는 형태로
궁중 의례에 사용되던 악부시와 같은 형식 금악 )
옛부터 깊은 골짜기에 홀로 고고하게 향기를 품고 있는 幽蘭 모습이 세속의
이욕과 공명에 초연했던 고결한 선비의 마음과 같다고 해서 유곡가인, 군자향
등로 불리고 정절과 충성심의 상징으로 찬미되었다.
< 幽蘭 >
幽植衆寜知 깊은 곳에서 자라니 사람들이 어찌 알겠나
芬芳只暗持 조용히 향기를 품고 있을 뿐이네
自無君子佩 따로 군자가 몸에 지니지 않았을 뿐
未是國香衰 빼어난 향기는 시든 적이 없다오
- 최도 (崔途. 唐) 율시律詩 부분 (율시 : 漢詩형식의 하나로 4운 8구로 된 근체시)
* 공자(BC552~479년)가 엮었다고 전하는 군자가어(공안국이 편찬 왕숙이 主와 撰解함)
주역 ⌜繫辭傳⌟ 8장 '천화동인天火同人'
二人同心 基利斷金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하면 그 날카로움은 쇠를 자를수 있고
同心之言 基臭如蘭 마음을 함께하는 사람의 말은 그향기가 난초와 같다.
하였다.
- 유연한 자세로 지우침 없이 하늘의 변화에 따라 응대하니 이를 동인이라 한다.
* 이인동심의 둘 이二를 숫자 2가 아닌 하늘의 역易이 변함에 따라 땅의 역易이 상응하여
변해가는 현상으로 주역식으로 읽으면 하늘의 변화에 땅이 반응하여 변해가는 단계 중
인간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첫 단계로 , 하늘의 변화하는 조짐을 감지하여 이에 상응
하늘의 변화에 같이 하려는(同) 마음(心)이다.
芝蘭生於深林 지란생어심림 지란은 깊은 숲속에 나지만
不爲無人而不芳 불위무인이불방 사람이 없다혀도 향기를내뿜고
君子修道立德 군자수도입덕 군자가 도를 닦고 덕을 세우는데
不位困窮而敗節 불위곤궁이패절 아무리 곤궁하여도 패절하진 않는다.
- 孔子家語 - 災厄 20장 中
≪詩經≫의 <위풍 衛風>에는 주(周)나라 무공(武公)의 높은 덕과 학문
대나무의 아름다운 모습에 비유하여 칭송한 시가 있다.
이것이 대나무가 군자의 인품으로 지칭된 최초의 기록이다.
난초의 향기와 고귀함의 찬미 그리고 충성심과 절개의 상징은 전국시대戰國時代
楚나라의 시인 굴원(屈原 BC343~278 名은 平)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굴원의 『楚辭』17권 중 『이소경離騷經 』은 문인이 창작한 장편 정치서사시
이소(離騷)란 조우遭憂, 즉 근심을 만난다는 뜻이며 초나라의 회왕懷王과 충돌하여
물러나야 했던 초나라 정치에 대한 실망과 우국(憂國)의 정을 노래한 것
* 중국 고전시가의 양대 고봉은 <시경>과 <초사> 이다. ( 나라를 경영하는 주요한 수단 )
초사는 남방문학의대표 – 낭만주의 문학의 시원 (장강에서 잉태한)
시경은 북방문학의 대표 – 현실주의 시가의 효시 (황하에서 잉태한)
<離騷이소>
余既滋蘭之九畹兮 여기자란지구원혜 : 나는 이미 구원의 난초를 기르고
又樹蕙之百畝 우수혜지백무 : 또 백무의 혜초도 심었다
畦留夷與揭車兮 휴류이여게차혜 : 유이와 게차를 밭두둑으로 나누고
雜杜衡與芳芷 잡두형여방지 : 두형과 방지도 섞어 심었노라
冀枝葉之峻茂兮 기지엽지준무혜 : 가지와 잎이 무성해지기를 바라고
願俟時乎吾將刈 원사시호오장예) : 때 기다려 나는 베려했더니
雖萎絕其亦何傷兮 수위절기역하상혜 : 시들어버린들 그 무엇이 슬프랴
哀眾芳之蕪穢 애중방지무예 : 수많은 꽃향기가 잡초에 묻혀 슬프도다
* 기록상 최초의 묵란화가 – 北宋 미불( 米芾 1051-1107)
蘭畵도 시초에는 화조도의 일부분으로 그려지다가 米芾 에 의해 수묵법에 의한
독립돤 畵材로 다루어지기 시작했다.
미불은 서예에도 뛰어났던 당대 최고의 문인화가로 비평가들은 그가 그린 난잎을
희대의 기품이라 찬탄해마지않았다.
묵란墨蘭은 문인화의 소재素材인 사군자四君子 중의 하나로 묵죽墨竹과 묵매墨梅에
이어 11세기 중엽부터 중국에서 발달하였다.
묵란도 처음에는 형태의 윤곽을 선으로 먼저 그리고 그 안에 색으로 칠하여 나타내는
화법인 구륵전채법鉤勒塡彩法으로 그려졌고, 그 후에 붓에 먹이나 채색을 직접 묻혀
한 번에 그리는 몰골법沒骨法을 채택했다고 한다.
본격적인 묵란의 면모는 남송 대에 상징성이 강화되었다.
북송 남궁 미불(米芾1051-1107) 자- 원장. 호- 양양만사, 해악 『 화사畵史 』 비망록
후베이성湖北省 샹양襄陽 출신. 관직은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郞에 이르렀고
궁정의 서화박사書畵博士에 임명되기도 하였다. 규범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
하고 기행이 심했다. 수묵화뿐만 아니라 문장·書·詩·고미술 일반에 대하여도
조예가 깊었고, 소동파蘇東坡·황정견黃庭堅 등과 친교가 있었다.
그림은 동원董源·거연巨然 등의 화풍을 배웠으며, 강남의 아름다운 자연을
묘사하기 위하여 미점법米點法이라는 독자적인 점묘법點描法을 창시
등촌鄧椿 (1127~1189) 의 『 畵繼,1167 』의하면 미불이 매란송국 을 한 종이위에
잘 그렸다고 기록되었다.
남송 소남 정사초(鄭思肖1239-1316) 호-소남所南 송말 원초 시인·화가.
노근란 <墨蘭圖> - 흙도 뿌리도 없으나 오히려 중후하고 견고하여 그의 절조가 잘 반영
이재 조맹견(趙孟堅1199-1295) 『 묵난보墨蘭譜 』 배경으로 잡초 등 보경법 사용했다.
원대 조맹부(趙孟頫 1254-1322) 호-송설도인 후저우(湖州)사람 당.북송화풍 선호
송설체 , 삼전법 고려 충선왕 때 국내 유입 – 조선 강희안, 서거정 등 받아드림
설창 (雪窓 ) 선승 묵란화가 대표작 『 광풍정혜도 』 < 난죽석도>
난화의 명수로 ,회기원희의 제자이며 소은대흔과 동문이라함. 자는 설창, 법휘는 보명普明
원나라초 서화의 천재 조맹부에게 배운 묵란은 당시의 문인들 사이에서 칭찬을 받았고 세평도 좋았다.
- 사군자四君子는 세한삼우(歲寒三友:松竹梅) 중의 매화와 대나무에 국화와 난초를
더한 것으로 명의 진계유陳繼儒가 《매란국죽사보(梅蘭菊竹四譜)》에서 매란국죽을
사군자라 부른 데서 비롯되었다.
명대 - 사군자 완성
문인화가 널리 보편화되었던 명대에 와서 묵란은 더욱 크게 성행했고 이러한
전통은 청대로 이어져 보다 다양하고 개성 넘치는 화풍으로 발전한다.
형산 문징명(文徵明1470-1669) 장쑤성(江蘇省) 창저우[長州, 지금의 우현(吳縣)
축윤명, 왕총, 진순과 함께 吳門四才子, 吳門四家 대표작 「 혜산다회도」
이름은 벽(璧), 자(字)는 징명(徵明)ㆍ징중(徵仲), 호(號)는 형산(衡山).
명대 중기 경제적 발달로 각 지역에서 다양한 화파가 등장했는데 이 중,
쑤저우를 중심으로 오파는 송·원 이래의 문인화 전통을 계승하여 그 발전에
중요한 역활을 했다. 전서·해서·예서·초서에 모두 능하고 오중파吳中派를
대표한다. 1526년에 벼슬을 사양하고 향리(鄕里)로 돌아가, 58세 때
‘옥경산방(玉磬山房)’을 세우고 詩ㆍ書ㆍ畫로 유유자적한 생활을 보냈다.
주천구(周天球1514-1595)
정운붕(丁雲鵬1547-1621) 비단 채색 시서화에 능함
진원소(陳元素1620-1650)
청대 - 양주팔괴 화가들이 개성적인 난 그림이 특히 유명함
석도(石濤1642-1707) 호는 대척자大滌子·청상진인淸湘陳人·고과화상苦瓜和尙
정섭(鄭燮1693-1765) 호-판교(板桥) 죽석난혜도竹石兰蕙图
조선 후기에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화법에 많은 영향을 미친 인물
이방응(李方膺1695-1754) 자는 규중(虬仲). 호는 청강(晴江).
각현의 지현(知縣) 등을 지내다가 그만두고 그림을 팔아 생활을 했다.
송죽(松竹), 난국(蘭菊), 묵매(墨梅) 등의 그림에 뛰어났다
나빙(羅聘1733-1799) 자는 돈부(遯夫). 호는 양봉 『묵란도책墨蘭圖冊 』
김농(金農)의 제자로, 양주 팔괴의 한 사람이다.
전통적인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추구하고, 개성이 강한 이단적 그림을 그렸다.
- 양주팔괴 화가 : 건륭(乾隆, 1736-1795) 연간에 양주화단 여덟 명의 대표 서화가의 총칭
* 중국 사대부 회화로의 사군자
남송의 조시경 지은 금장란보(1233)가 최초 , 14년 뒤 왕귀학의 왕씨란보(1247))가 있다.
송백인의 매화희신보 梅花喜神譜(1261), 원대의 화보로 이간의 죽보상록 竹譜詳錄(1320)
고려 말부터 중국의 사대부화 전통을 받아들여 문인과 선승(禪僧)들 사이에서 묵란화가
그려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고려 말의 여러 문집에는 당시 중국 화단과의 교류에 관한 기록,
그리고 묵란화를 잘 그렸던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고려말 목은 이색, 배운거사 이규보 , 포은 정몽주 등 유학 대가들이 난에 대한 시 남김
14세기 초 고려말 옥서침 윤삼산尹三山의 묵란화 그림 가장 오래된 그림
* 조선시대 회화사에서 묵란화는 18세기 후반에 와서 본격적으로 성행
중국 청대 왕개王槩 등에 의해 편찬된 종합적인 화보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 1679~1701년』의
일부인 「난죽매국보蘭竹梅菊譜」의 영향을 들 수 있다. 남송대~ 원대 선승화가의 영향
- 개자원화전: 청 초기 화가 왕개(王槪)·왕시(王蓍)·왕얼(王蘖) 3형제가 편찬한
화보(畵譜)로 분량은 전체 4집이다. 1679년 간행 ,묵란은 3집
조선 14대 선조宣祖 난죽화(어제란화) 남송의 정소남鄭所南 난치기법 따름
▷ 안휘준 『 한국회화사 연구,1980 』시대 별 구분에 따른 조선 묵란화 흐름
조선 초기(1393-1550)
申叔舟(1417~1475 의 「 화기畫記 」 에 안평대군 이용(李瑢1418~1453)수장품 언급
묵죽화는 수문(秀文)의 『 묵죽화책 墨竹畫冊 」 10장으로 된 화첩(畫帖) 1424년
조선 중기(1550-1700)
선조宣祖 조선 14대 왕 덕흥대원군의 3째 아들 균(1552~1608)
<난죽도> 조선 16세게 목판본 48.0 x 58.4cm 개인 소장
탄은灘隱 이정(李霆1554-1626) 선조에서 인조로 이어지는 기간에 활동
황집중(黃執中, 1533∼?), 어몽룡(魚夢龍, 1566∼1617) 과 함께 조선시대 묵매·묵죽화의
양식적 전통을 수립 , 소위 선조 연간(1567∼1608) 문인화 삼절(文人畵三絶)
<난초도> 비단에 금니 21x15.5cm 국립박물관
난은 지면이나 바위에서 대각선으로 솟아난 모습으로
잎 중간에서 붓을 두세 번 둥굴려 유연하게 뻗어나가게 했다.
이는 중국 원나라 설창의 그림에서 그 연원을 찾을수 있다
허주虛舟 이징(李澄1581-1645) 낙파 이경윤李慶胤의 서자, 화원 『 이징 화첩 』
남태응(南泰應 1687~1740) 의「 聽竹畫史 에 법품으로 묘사, 김명국-신품, 윤두서-묘품으로
묵란화 운필법의 하나로 난엽을 칠 때 붓을 세번 눌렀다 떼면서 변화를 주는 기법인 삼전법 능함
<묵란도> 종이에 수묵 29.8x20.0cm 국립박물관 소장
이우(李瑀, 1542~1606) 호-옥산 화가 서예가 신사임당 4째 남
시 서예 그림 거문고에 능해사 '사절' 로 불림
조선후기(1700-1850)
조선 후기에 오면 묵란화도 다른 화목처럼 좀더 많은 계층의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하게 된다. 이 당시의 묵란 화가로서는 임희지 사대부화가인 강세황 그리고
조선조 제일의 문인서화가로 이론을 겸비한 김정의, 조희룡 등을 있다.
이 시기에 이르면 묵란화 양식도 다양해지고, 난잎의 모습이 글씨 획과 유사성을
띄게 된다. 중기의 난잎이 비교적 평면적인데 비해 이무렵의 난잎은 공간에서
움직이고 뒤틀리며 뻗어가는 듯 공간감과 입체감을 강하게 느끼게한다.
표암 강세황(姜世晃1713-1791) 명대 문징명의 화풍 『 개자원화전 』 영향, 오필기본형식
조선 화단에 유포 공헌, 말년 북경 사절로 방문 후부터 사군자 그림
기교 없이 담담하고 소박하고 한자락 미풍이 살며시 지나간 듯 부드럽고
단아한 격조릏 살린 문인화 부위기 『난죽도蘭竹圖) 』 . 호-豹菴
수월헌 임희지(林熙之1765~?) 영~순조 역관 명청대의 묵란화법 토대 호-水月軒,水月堂
당두법 – 난잎 중간 뭉툭 하고 끝으로 강 수록 가늘고 휘어짐
난 그림의 잎의 유연함은 마치 이름다운 여인의 자태를 보는 것 같았다.
임희지의 묵죽화는 당대의 문인화가 강세황(姜世晃)과 비교 될 만큼 명성이 높았고,
난초 그림은 오히려 나았다고 하며 글씨는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흘려섰다고 한다.
그의 난초 그림은 <묵란도>처럼 흐늘어져 뻗은 아리다운 춘란(春蘭)을 즐겨
그린 것으로, 어떤 고격(古格)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마음과 개성을 유감없이
보여준 점에서 그 특징을 찾아 볼 수 잇다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 서화용필동법론에 입각 난치기 『 난맹첩(蘭盟帖) 』 서화첩
문자향文字香 또는 서권기書卷氣를 풍기는 높은 경지의 남종화를 중히 여김
묵란(墨蘭)과 산수를 잘 그렸고‚ 전형적인 남종문인화의 경지를 개척하여
그의 후학(後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김정희의 이러한 높은
문인화의 경지는 그의 《묵란도(墨蘭圖)》에서 잘 드러난다.
『 蘭盟帖 』청대 양주화파의 묵란화풍 직접 영향받은 것 같음 , 정섭 시문 6편 인용
총 22면 중 7면 제발, 15면 난화 1830~1840년간 창작, 상하 두 서화첩
우봉 조희룡(趙熙龍1797-1859) 본관은 평양(平壤). 자는 치운致雲 『호산외사壺山外史』
서화에 추사체(秋史體)와 추사 묵란화를 본받았다. 난초와 매화를 특히 많이 그렸다.
<묵란> 종이 수묵 22.7x 27.2cm
소치 허유(許維: 1809-1892 허련) 조선 후기의 서화가이자 문신으로, 자는 마힐,
호는 소치, 본관은 양천이다. 진도군 출생
<석란> 종이 수묵 26.0 x 55.6cm
조희룡과 달리 김정희 문하에서 스승의 양식을 충실히 따라 김정희로
부터 압록강 이동에 소치를 따를 자가 없다는 칭찬을 받은 화가
나이 70세에 만난 흥선대원군은 “소치가 이승에서 나를 알지 못하면 소치가
못 된다”라고 정치인이 아닌 묵객으로서 허련을 진지한 예인으로 존경했다.
이재 권돈인(權敦仁: 1783-1859)본관은 안동(安東). 자- 경희(景羲), 호는 이재(彛齋),
시호 문헌 이조판서, 좌·우의정 지냄
1851년철종의 증조인 진종(眞宗)의 조천례(祧遷禮)에 관한 주장으로
인해 파직당하고 순흥으로 유배되었다.
1859년연산으로 이배(移配)되었다가 그곳에서 76세로 일생을 마쳤다.
석파 이하응(李昰應, 1820-1898) 운란 임희지의 당두법 강조- 난잎을 쥐꼬리처럼
가늘게 그리다가 잎끝이 약간 굽는 모양 『 묵란첩墨蘭帖 』 『석파묵란첩石坡 墨蘭帖 』
묵란첩: 1851(32세) 총14면 중 10면 그림 4면 발문
석파묵란첩(30대 중반) 총11면 중 9면 그림 2면 발문
중국 보정부 귀국후 60대 중반부터 <석란도> 구성, 명대의 묵란도 풍인 너울거리는 듯한
유연한 선엽 묘사, 말년에는 속도감 있고 길고 예리한 곡선이 주류. 석란화 54편
조선 말기(1850-1910)
석파 운란의 계승화가
노천 방윤명(方允明 1827~1880)순조27-고종17년 유작⌜묵란도⌟ 호-운남
옥경산인 윤영기(尹永基1833~1927) 이완용 ‘서화미술원’
소호 김응원(金應元1855~1921) 小湖란 – 추사와 석파의 화법을 계승 발전시킴
잎끝이 비교적 짧고 뭉툭한 잎과 길고 가는 잎이 대비되며 당두법으로
그린 길쭉한 잎모양의 특징
그 묵란들은 대원군의 필법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독자적인 경지를 이루었다.
대표적인 작품은 국립고궁박물관 소장인 웅장하고 환상적인 구도의 대작
「석란도(石蘭圖)」 등이 있다.
소봉 나수연(羅壽淵1861~1926)서화가, 언론인 철종12년 호- 小蓬
황성신문 총무원, 1922년 6월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 , 반민족관료
1912년 8월 대한제국 병합기념장 받고 1921년 중추원 참의로 임명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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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미 민영익(閔泳翊1860-1914)
난초의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외유내강의 기품을 살려 높은 격조를 보인다.
더욱이 추사나 석파는 먹을 아껴 마른 난초를 그리는 것에 비해,
민영익은 먹을 듬뿍 써서 촉촉한 느낌으로 그려 넉넉한 품격을 보임
해강 김규진(金圭鎭, 1868~1933)
석재 서병오(徐丙五, 1862-1935)
무호 이한복(無號 李漢福:1897-1940)
▷ 묵란 감상하기
- 미불의 묵란도
- 정사초의 묵란도
- 조맹부의 난석도
- 조맹견의 묵란도
- 문징명의 난죽도
- 정섭 난죽도
- 양봉 나빙의 유란도
- 허주 이징 난죽곡병
- 강세황 의 사군자도
- 수월헌 임희지 묵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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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서적
조선 회화 2014 홍선표 한국미술연구소 CAS
흥선대원근 이하응의 예술세계 2004 김정숙 일지사
우리 옛그림의 아름다음 ( 전통회화의 감상과 흐름 ) 2006 이동주 (주)시공사.시공아트
새로 그린 매란국죽 1 2006 문봉선 도서출판 학고재
추사 난화 (난화에 심어 놓은 조선정치가의 메세지) 2018 이성현 도서출판 동녘
사군자 2011 이선옥 도서출판 돌배개
2023.11.22(小雪) 한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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