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나/미술 관련

장욱진의 작품 감상

haanbada 2024. 7. 17.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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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뜰리에서 장욱진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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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나의 일이고 술은 휴식이니까

 사람의 몸이란 이 세상에서 다 쓰고 가야 한다.

 산다는 것은 소모하는 것이니까 나는 내 몸과 마음을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려서 다 써버릴 작정이다.

 저 멀리 노을이 지고 머지않아 달이 뜰 것이다.

 나는 이런 시간의 쓸쓸함을 적막한 자연과 누릴  

 수 있게 마련해준 미지의 배려에 감사한다.

 내일은 마음을 모아 그림을 그려야겠다.

 무엇인가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  장욱진 에세이 <강가의 아뜰리에>, 1965. 

 

▶ 장욱진의 작품세계

 

    화가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핵심 소재이자 주제는 자연 , 집 , 가족 이다.

 그는 일상적 이미지를 정감 있는 형태와 독특한 색감으로 화폭에 그려냈다.

 작가가 추구한 단순함의 미학과 소박한 삶의 이상향은 그의 그림에 그대로

 담겨있다.

  유아적이고 토속적인 감성을 추상화시킨 독보적인 화가로 인정받고 있드시,

 아동화兒童畵를 연상케 하는 특이한 기법으로 동심童心의 세계를 파헤치고

 있는데 검소한 색채와 화면의 평면적인 처리가 두드러지다.

 직관적이고 어린아이 같은 심성으로 평생을 자연 속에 살면서 소박한 자연의

 산물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닌 대상 그 안에 내제된 본질을 동심의 눈으로

 그려 본 이상적인 내면세계를 해학적으로 그렸다.

  후기에 들면서 화면에 실재적 풍경은 줄어들고 도가적 표현이 많이 보인다.

 일과 습관, 공간은 물론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것들을 단순화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꾸밈과 허세를 벗고 욕망을 버리고 순수함을 드러내는 일은 난이 

 하다.  심풀simple은 매우 광범위한 의미를 지닌 단어인데 화가가 일상어로 

 상용한다는 것은 비움이라는 실천적 삶을 바탕으로 한 화가 자신의 정신자세 

 까지도  포함한 삶과 예술의 지침이었다 본다.

  화가가 한국미술사에 남긴 것은 특정한 화풍, 사조, 유행이 아닌 그 누구도

 닮지 않은 자신의 사유세계를 그림으로 그린 것으로 '단순함의 미학'을 통해

 온갖 욕구를 걸러낸 존재와 사유의 본질이었고 몸소 실천한 삶의 태도였다.

 

▶ 작품의 특징

 

 1. 화가 작품의 주된 소재인 '인간'을 주제로 한 작품을 통해, 본질을

     추구하고자 한 화가 장욱진의 '심플' 정신을 구현했다.

    후기에 기하학적 단순성이 가미되고 기호화된 문양들이 상용됨으로

    인해 작가만의 조형적인 독자성(구상적 추상화)을 보였다.

2. 생활 주변에서 흔히 접하는  살아있는 자연을 소재로한  순수하고

    자연 친화적인 자연관인  알 수 있는 숨 쉬는 지연을 그려냈다.

     :  나무 , 까치, 개, 사람, 산, 해와 달 등이 함께 하는 소박하고 친근한 정경

3 . 소재들은 화가 자신의 생활과 경험에서  느낀 정서가 그대로 함축되어

      있고 특히 아이는 인간 심성의 가장 본질적인 순수함을 추구했던 소재다.

4. 화가에게 나무는  자연 그 자체였으며, 단순하고 순수한 삶을 추구했던 

     본인이기도 하여,  화가가 꿈꾸고 추구했던 이상 세계이기도 하다.

5. 소재로 새를 즐겨 그렸고, 그 가운데 까치를 많이 그렸다.  스님이 물었을 때

    화가는 ‘까치 그리는 화가’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6. 작품에서 화가는 자신이 꿈꾸는  평등한 이상향의 세계를 그렸기에 이승에서

    일어나는 명암 대비가 없다. 그래서 그림자도 없다.

    후기 작품 속의 마을 사람과 자연은 조선의 민화적이고 평등하고 자유롭다.

7. 향토적인 소재를 통해 색상, 형태, 비현실적인 구성 등의 표현방법과 서양화적

    구도와 도형의 대담한 배치로 독특한 향토적 여백의 미와 관념을 표현했다.

 

화가가 꿈꾸는 이상향의 표본은  살아있는 ' 자연' 이다.

화가의 작품에는 목가적이고 낭만적인 정취로 가득찬 자연이 등장한다.

화가에게 자연은 늘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는 자신을 ‘자연의 아들’이라 고백한다.

“ 태양과 강과 태고의 열기를 뿜는 자갈밭, 대기를 스치는 여름 강바람, 이런 것들이

나 역시 손색없는 자연의 아들로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이럴 때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공허하지 않다. 자연의 침묵이 풍요한 내적 대화를 가능케 한다.“

화가의 그림 속에 자연은 인간과 동물을 품고 서로 다른 세계가 평화롭게 공존하고

조화를 이루는 장소이다.

 

◊ 화가, 장욱진張旭鎭(1917 ~1990)의 생활상과 작품활동

 

* 초기 시대 (1937 ~ 1962)

 1938년, 『조선일보』에서 주최한 제2회 '전국학생미술전람회'에

 <공기놀이>를 출품해 최고상인 사장상과 중등부 특선상을 받는다.

1939년 일본의 제국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한다.

1941년 4월에 이병도박사의 맏딸 이순경여사와 결혼한다.

제국미술학교에서  그는 진보적인 회화 성향을 가지고 있는  교수로부터

지도를 받았다. 학교는 모더니즘을 수용하는 교육방식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그림은 자연스럽게 모더니즘 형식을 띄게 된다.

 

1943년 졸업 후,  귀국한  그는 국내에서 강제 징용으로 평택 비행장 활주로

공사장에, 그 후 내무반에서 서류 꾸미는 일을 반년 정도 하다 해방을 맞았고

 6·25전쟁이 터지자, 여름  종군화가단에 들어갔고 종군작가상도 받는다.

해방후 어지로운 상황 속에서도 그의 작품 활동은 계속 되었다.

김환기, 유영국, 이규상이 결성한 신사실파에 가입하여  1948년부터는

신사실파전에 작품을 출품한다.

이 때 그의 작품 중 <독>이 많은 주목을 받았고, 전쟁 중에 제작된 그의 작품 중

대표작으로 꼽히는 것은 <자화상>이다.

1949년에 ‘제2회 신사실파 동인전’에 출품한 <독>은 장욱진의 작품세계 전체를

이해하는 데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과감하게 화면 중앙을 가득 차지하도록 독을 배치하고 뒤로 앙상한 나무를 걸치게 한

비현실적이며 과감한 구도와 소재들은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 전기 작품 중 < 대표 작품>

 

* < 공기놀이 >

         1938  갠버스 유채  65 x 80.5cm 국립현대미술관이건희 컬렉션

 

   세부적인 묘사는 생략하고 얼굴의 윤곽과 음영만으로 처리한 그림은 당시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과 정감있는 따뜻한 색채로 일상의 모습을 담았다.

 전통적인 한옥을 배경으로 한복을 입은 인물들이 공기놀이를 하는 광경을 수수한

 색감과 꽉 채워진 구도로 표현되었다.

  인물의 얼굴과 손발을 적색으로 표현하며 향토성을 더했는데 빛이 닺는 부분의

 명도와 채도를 달리 해 화면의 깊이감을 더한 점이 인상적이다.

 흰 저고리와 앞치마는 생계를 근근이 이어나가던 노동자의 전형이며 풍족하지

 못한 당시 상황을 대변하는 듯하다.

 초기의 그의 작품은 고향을 상징하는 자전적 향토세계로 삼차원적 공간 보다는

 평면적인 화면 처리가 두드러지며 이전과는 다르게 평면성과 비현실적인 공간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 <  독  > 

                         1949    캔버스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 <자화상>   

                            자화상    1951   종이에 유채    14.8 x 108cm

 

  누렇게 익은 드넓은 논, 오른손에 모자, 왼손에는 우산을 짚고 선 검은 정장을

 한껏 차려입은 사내가 홀로 서있다.

 무르익은 농작물 사이에 길게 이어지는 빨간 길, 그 위에 정장 차림의 남성은

 어딘가 조화롭지 못하다. 하늘 위 일렬로 줄지어 과감히 날개짓하는 새들과

 달리 발걸음을 멈춘 남성은 가야할 방향을 정하지 못해 고민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을의 전체 풍경을 담은 높은 시점도 사내를 더 작아 보이게 하는 데

 일조한다. 끝과 끝을 잇는 길처럼 그림 중앙에 홀로 선 그가 가야할 길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그림 속 푸른 하늘 아래 펼쳐진 세상은 1951년 제작시기를 고려할 때 전쟁 중

 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평화롭다.

 전쟁의 페허로 가득한 거리 대신 , 풍성한 수확물들이 가득하고 , 남루한 의복을

 입은 피난민들의 행렬들이 보이는  대신 깔끔한 정장 차림의 등장은

 현실에서 볼 수 없는 탈속적인 공간을 통해 이상세계를 그리고져 했던 화가의

 염원이 담겨있다.

 

 

 

 

“저 날아가는 4마리는 무슨 새인가요?”

    (후배 조각가 최종태)
 “참새다.”(장욱진)
 “참새는 저렇게 줄 지어 날지 않지요.

   기러기라면 모를까.”(최)
  “내가 그렇게 날라 했다.”(장)
  화가는 넷이야말로 가장 적은 숫자로 

  조형적인 변화를 거둘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작품 <초상화>를 보기 전에는 

   반복적으로 출현하는 네마리 새가

   제비가 아닐까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죠.

 

 

  <동산> 1978 캔버스 유채  33.4 x 24.2cm

 

* < 나룻배  >   

                  <나룻배>    1951    패널에 유채    13.7 x 29cm

 

    강나루에 정박한 긴 배에 다섯명의 사람과 소 한 마리가 타고 있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차분한 푸른 톤의 배경과 고요한 강가의 물결은 하늘과 땅의 경계를 지우고

   안온한한 그낌을 자아낸다.

   머리에 짐을 올린 여인, 닭을 품고 안은 또 다른 여인, 자전거를 들고 탄 아이의

   모습이 급히 어디 피난 중인 가족이라 짐작도 되지만 유족의 증언을 따르면

   충남 연기군을 배경으로 시장에서 물건을 사오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풍경을 그린 것이라 한다.

   화가는 1950년대 이전까지 제작한 작품에서 화면을 꽉 채운 향토적 기물을

   중심 소재로 공간감이 느껴지지 않는 캔버스에 인물이나 사물을 집중적으로

   색감 또한 황갈색을 띄며 목가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향토성 짙은 화풍을 계속

   유지하다 ,  1949년 신사실파에 가담하면서부터 비교적 맑는 분위기에 세밀한

   묘사를 생략하고 간소한 이미지와 평면적으로 보이는 화면으로 변화했다고 

   한다.    이는 당시 같이 활동했던 동료 화가들과 서구 모더니즘을 일부 수용한

   발전적  형태를 암시한다.

 

* < 마을 >   

 

                              <마을>   1951  종이에 유채    25x35cm  국립현대미술관

 

     그림을 그릴 당시 화가 부부는  부인은  부산에,  화백과 아이들은 충남  연기군에

   떨어져 살았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커서 가족을 기다리는 마음을 고향의 푸근한 풍경으로 달램.

   전면에 위치한 집을 중심으로 양옆으로 대칭 구조로 표현했다.

   나무, 새, 집 그리고   초가집으로 보이는 작은 집 3채와 나지막한 뒷동산,  소, 소를

   돌보는 아이, 그리고  균형을 맞추기 위해 집 주변을 배회하는 개도 그려 넣었다.

   화가는 집과 가족 이미지를 즐겨 그렸는데 집안에 옹기종기 모여있거나 한가로이

   함께  자연 속을 산책하는 모습으로, 왼쪽 작은 집에는 혼자 있는 사람 밑에 개를 그려

   넣어  혼자가 아니라 함께 있음을 표현했다.

 

* < 까치 > 

                  < 까치 >    1958    캔버스 유채  48 x 46cm  국립현대미술관

 

   화면을 가득 채운 둥근 형상의 나무 속에 정적한 자세로 서 있는 까치 한 마리와 

  나무 끝에 걸려 있는 그믐달을 단순화하여 그린 작품이다.

  모든 대상은 원근법 비례를 무시하고 평면적으로 그려졌다.

  화면 전체를 지배하는 푸른 색조로 인해 설화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캔버스에 물감을 바르고 다시 긁어내는 과장을 반복면서 만들어낸 화면의

  질감에서 자연스러운 밀도감을 느낄 수 있다.

  간결한 형태와 세련된 색채에서 치밀한 구성력을 볼 수 있다.

 

* < 새와 나무 > 

                              <새와 나무>  1961 캔버스 유채  41 x 32cm    개인소장

 

    단순화 시킨 나무의 형태와 나무 끝에 걸린 그믐달은 같은 구상을 취하고 있지만

   조형적으로 마치 새의 상형문자를 그려넣은 듯한 모습에서 같은 대상을 그렸어도

   발상과 방법에 따라 수도 없이 다른 그림을 창작해낼 수 있음을 볼 수 있다.

   화면의 주조는 표현할 수 없이 밝고 깊은 독특한 푸른색이고, 그것이 새의 흑색과

   잘 조화해서 사람을 고요한 환상의 세계로 끌어당기고 있다.

 

     <까치>(1958), <새와 나무>(1961)에서 처럼 상징성을 갖고 반복적으로 나오는

   소재는  그의 분신 같은 존재인 '까치',  그의 온 세상을 품는  우주인 '나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영원성의 매개체를 상징하는 '해와 달'은 화가의 대표적인 모티브다.

 

 교수직을 그만두고 전업작가의 삶을 시작한 1963년부터 1990년까지 27년

    동안의  창작활동은  그의 작품세계의 모티브인 집. 가족. 자연이란 3요소를 가지고

    해학과 자유, 순진무구한 동화적 세계를 추구하는 과정과, 작지만 소중한 자연 속

    그의 예술적 영혼이 깃든 아뜰리에인 집은 불가분의 관계에 놓인다.

    번잡한 도시를 떠나 자연의 침묵과의 풍요한 내적 대화를 가능하게 한 거주했던

    집 주변  매일 아침의 산책과 맞이한 풍광은 항시 자연과 벗하며 살기를 원했던

    화가, 당시 시대적 시련를 겪어야만 했던, 의 꿈 실현, 그림 속에서 자연과 인간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 보여주기, 에 한걸음 더 내딛는데 일조했다고 본다.

 

▸덕소시대(1963~1975)

    가족을 향한 사랑과 그리움, 고마움의 감정이 강조되어진다.

   1963년 장화백은 덕소의 화실에 혼자 기거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그의 화실 주변은 인적이 드물었는데 오직 한 채의 집이 근처에 있을 뿐이었다.

   덕소는 강과 산이 인접해있는 곳으로 보는 이에게 유배지 같은 인상을 주었다.

   그리고 전기와 물이 들어오지 않아 생활하기가 불편했다.

   그는 심리적 안정을 찾기 위해 덕소로 왔지만 많은 작품을 남기지는 못했다..

 

  “덕소 때는 그 과정이 하나에만 집중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 기법으로 바르고

    부치고 깎고 그런 실험적 표현을 했는데 덕소에서는 주로 부치는 편이였다.

    즉 제 마음내키는 대로 했었다, 또 덕소 때는 캔버스를 엎어놨다 제쳐놨다 하며

    밤낮 '내가 무엇이냐', '내가 무엇이냐 '그러며 시간을 보냈다.“

                                                                    - 에세이 ‘강가의 아틀리에’

    1960년대는 한국에 모더니즘이 밀려온 시기였다.

   그 또한 이 물결에 영향을 받아 화가는 그림에 이런저런 시도를 했다.

   그의 말처럼 초기에는 주로 바르고 부치는 작업을 통해 두꺼운 질감과

   강한 붓 터치의 마티에르 기법을 이용한 작품들이 제작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 동안은 그림을 그리지 않고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시기에 그린 작품에는 <진진묘眞眞妙> 가 있다.

   이 작품은 그가 예불에 열중하는 아내를 보고 감명을 받아 그린 것으로 아주 단순한

   선으로 간결하게 아내의 형체만이 표현되었다.

   절제된 표현 안에는 육체를 걸러내 그 안의 정신세계를 조명하고자 한 화가의

   의도가  드러나는 것 같다.

 

 * < 진진묘 >   

                            1970 캔버스 유채 41x32cm 개인 소장

 

   1941년 이병도박사의 맏딸 이여사과 결혼해 가정을 이룬 그는 6명의 자녀를 둔

대가족의 가장이었다. 부인의 심적 물질적 도움으로 전업 화가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작품명 진진묘는 화가의 부인 이순경의 법명이라 한다.

그림은 작은 부인상이라지만 그 모습은 일반적인 여인상이 아닌 종교적으로 영험함을

내포한 불교의 보살이나 부처의 모습으로 보인다.

팔다리는 단순하게 선 하나로 처리되고 표정과 몸체 역시 아주 단순하고 소박하게

그려져 있지만 오히려 그러한 소박함이 엄격함 보다 친근함을 느끼게한다.

여기에 옷이 흘러내린 주름의 묘사는 마치 불상에서 부처가 입은 얇은 옷이 흘러내리는

모습과 흡사하다.

머리에 쓰고 있는 물건은 보살이 머리에 쓴 관을 연상시키고, 인물의 뒤 후광을 연상시키

듯 타원형으로 둘러싼 배경은 부처의 광배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60년대 말부터 화가의 작품에는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는데 이전까지 물감을 전체적으로

불투명하고 두텁게 바르고 마티에르를 강조하기도 했으나 물감을 테레핀으로 묽게 희석한

뒤 캔버스에 스며들 정도로만 사용하여 마치 서양화 보다는 동양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 시작했다. 더해서 투명도를 해치지 않기 위해 흰색을 사용하지 않고 테레핀으로

물감을 딱아내기도 했다.

 

* < 새와 아이 > 

                                 1973 캔버스 유채 27.3 x 22cm

 

 나무와 아이와 새는 화가의 예술세계를 구성하는 주요 소재이다

 나무와 아이와 집은 지상의 존재로 천상을 향해 자라지만 땅을 벗어날 수는

 없는 데 새는 지상과 천상을 자유롭게 왕래하는 존재다.

 사람들은 비상(탈출)을 꿈꾸어 보지만 꿈으로 그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새는 그런 인간의 마음을 담는다.

 즉 인간의 한계와 비상의 욕구를 대신한다.

 아이의 대표적인 도상 형태로 동그란 머리, 네모난 몸, 팔과 다리는 선으로만 표현하였고,

 손가락은 마치 새처럼 3개인 도상으로 나타내었다

 

< 눈 >   

                         <눈>    1964.    캔버스에 유화물감    개인소장

 

 1963년 양주 한강 변에 지은 작은 덕소화실에서 눈 내리는 덕소 풍경에 영감을

받아 덕소의 산, 강바닥에 쌓인 눈을 보고 그린 작품으로 사실상 현상 재현을 완전히

벗어난 추상 작품이다.

화면 전체가 상하좌우 구별이 필요없는 평면성을 띠고 있다.

캔버스 밑바탕을 파내듯 긁어낸 불규칙한 균열과 거친 터치는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겨울의 덕소를 연상케한다.

 

 

1960년대 말 이후로 화가는 자기 정체성을 찾게 된다.

모더니즘의 물결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기 확신을 갖게 되는 것이다.

 

 

▸ 명륜동시대(1975-1979)

가장의 역할을 되찾고 가족과 지낸 시기로 작품에는 가족의

이미지가 주변 환경과 평화롭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1975년 화가는 명륜동으로 돌아온다. 명륜동은 지하철 공사로 집 근처가 개발이 되면서

더 도시화 되어갔고 그는 마음의 안식을 위해 시골로, 또 절로 돌아다니곤 했다.

특히 불교신자였던 아내와 어렸을 때 수덕사에서 요양을 했던 추억이 있는 그에겐

절은 안식처 같은 곳이었다. 막내아들이 죽는 불행은 그를 불교에 더욱 의지하게 만든다.

불교에 대한 의존과 수묵화의 시도, 그리고 다양한 조형적 시도로 인해 이 시기 화가의

그림에는 전통 회화적 면모가 강하게 드러난다.

그는 이 시기에 화가는 매직 마커그림, 판화, 먹그림, 그리고 도화陶畵라는

다양한 조형작업을 시도한다.

 

 

* < 가족 > 

                   1972  가족  캔버스 유채  19.3 x 22.7 cm   사진  개인 소장                  
     그림은 큰딸과 외손자 와 외손녀를 그린 것으로  명륜동에  가족과 함께  생활할 때

     그렸다 한다.  어머니가 아이 둘을 데리고 가장의 귀가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 < 가족도 >   

                                     1977   캔버스에 유채

 

    원근법과 비례를 무시한 채 단순하게 표현된 산과 집은 자연 속에서 소박한 삶을

추구했던 화백의 이상을 담아낸 것 같다.

자세히 보면 사람, 식물, 동물이 같은 공간에 살고 있다. 가족 옆에는 강아지가 서 있고,

새는 우리 집 지붕 위에 올라가 앉아있다.

그 위엔 산이 있고, 그 산을 오르는 사람이 있다. 모든 생태계가 전부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있다.

 

* < 가로수 >   

                       1978 판화(캔버스 유채)  30 x 40cm    장욱진 미술재단

 

 하늘에는 해가 둥실 떠있는 맑은 날 어느 일가족이 산책을 나섰다

 나무 위에는 정자와 원두막이 있고 마을집들이 지어져 있다.

 네 그루 가로수가 줄지어 서있는 길을 따라 걷도 있는 가족들의 모습이

 보이고 그들 뒤를 들개하고 소도 따라간다.

 나무 아래 어슬렁거리는 개가 나오는 풍경은 단순한 일상의 풍경이 아니라

 초현실적인 공간을 설정되어 동화적인 분위기를 더욱 부각시킨다.

 도로변 가로수들은 원근간이나 명임의 표현이 전혀 없이 완전히 평면적으로

 늘어서있어 마치 어린 아이의 그림같은 느낌을 준다.

 가로수들은 조금씩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어 바람에 흔들이는 느낌을 낸다.

 인간과 가축과 새가 하나로 어우러져 있는 천진무구한 풍경의 설정은 풍류적

 심성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 수안보시대(1980-1985)

 

  1980년에 장화백은 수안보 탑동 마을에 자리를 잡고,

  부인과 단둘이 지내며 심리적 안정을 찾은 그는 자연 친화적이며 도가적인

  경향의 작품을 제작했다. 담배농사를 짓던 3칸짜리 농가를 간단히 수리해

  아내와 간소한 살림살이를 꾸린다. 언덕 위의 위치한 이 허름한 시골집에서

  장욱진의 아내와 함께 한 삶 중에서 가장 안락한 시기를 보낸다.

  집을 둘러싸는 자연환경이 풍부했기 때문에 화가는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조용한 분위기 덕분에 많은 먹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이 시기의 유화작품에는 수묵화의 영향이 많이 드러난다.

  예순을 넘긴 화가는 안정된 생활 속에서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고

  자신의 조형 세계를 추구하는데 화가의 말에 의하면, 깍아내고, 묽게 바르고

  물감을 비벼서 맥이기도 하며 보통 덜어내는 작업이었다고 한다.

 

* < 무제>    

                                1983     캔버스 유체        27.3 x 22cm

 

 

* < 자유상 > 

                            1985     캔버스 유채      40.9 x 31.8cm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선 이후 화가는 한결같이 농가나 고가를 사서   

 직접 설계  수리하여 주거와 화실로 집을 사용했다.

 이와같이 집에대한 화가의 집착은 남달랐다. 왜냐하면

 집이란 화가 자신의 몸이 머물고, 자신이 꿈꾼 이상이 구현되고 ,

 자신의 꿈인 세계관을  펼칠 수있는 공간이 었다.

 즉 단순히 예술을 다루는 일상의 일터 이상의 공간이었다.

 

▸ 신갈시대(1986-1990)

  강한 색채와 장식적인 특징을 보이는 작품 등장

  수안보가 휴양도시로 변모하며 화가는 이곳을 떠날 채비를 한다.

  그리고 이듬해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세 칸짜리 집을 구해 리모델링을 한다.

  화가는 이 ‘신갈한옥’에서 거주하며 <도인>,  <강변 풍경> 등을 그린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모두 관념적이고 환상적인 면모를 보인다.

 

* < 강변 풍경 > 

 

                       1987 캔버스에 유채, 23.1x45.7cm , 개인소장

 

* < 밤과 노인 > 

                  1990, 캔버스에 유화 물감, 41×31cm, 개인소장

 

  <밤과 노인>은 화가가 죽음을 예견하고 그렸다고 전해지는 작품이다.

 반달이 하늘에 떠있는 밤, 동산이 배경으로 펼쳐져 있다. 동산 사이로 나있는

 오솔길을 한 아이가 걷고 있다.

 그리고 오솔길의 반대 방향으로 도인이 하늘에 떠있다. 

 까치는 노인과 같은 방향에 앉아있는 데 노인이 가는 길을 배웅해주는 것 같다.

 뿐만 아니라 하얀 달을 역광으로 드리워진 검은 색의 산과 달무리,  노인을

 둘러싼 무채색의 배경은 허망한 삶을 회환하는 노인의 심경을 강조하고 있다.

 1951년 작 <자화상>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다.

 그리고 그는 1990년 12월 27일 이 작품 속 노인처럼 이승을 떠나 훨훨 날아갔다.

 1990년 타계 직전 그린 <밤과 노인>은 첫머리의 자화상과 절묘한 조응을 이루는

 마지막 작품이다

밤하늘에 반달과 같이 떠 있는 노인네와 그 아래 지상의 산길을 머뭇거리듯 걸어가는

아이의 대비되는 모습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선 작가의 원숙하고 깊은 시선을

엿볼 수 있다고 한다.

왼쪽 상단에 흰 도포를 입고 하늘을 나는 노인은 화가의 모습을 상징한 것같다.

화면 오른쪽에는 화가가 사랑했던 , 그리고 그의 일부로 표현되는 대상인

까치, 나무, 집, 그리고 아이가 있다.

노인의 표정을 보면 세속을 초탈한 듯 만사를 관조하는 모습이다.

과 사 가 하나라는 장자의 사유, 인간의 의지, 요구와 상관없이 존재하는

자연의 가치: 만물제동 사상 - 인간세계의 모든 대립과 차별을 거부하는 무위자연,

과도 일맥 상통한다. 

화가는 죽음에 대해 초연한 태도로 일관되게 두려움없이 명대로 살기를  원했었다. 

 

* < 하늘과 마을 > 

                                   <하늘과 마을>   1988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그가 즐겨 선택한 소재는 가족이고, 조그만 마을이고, 산과 나무 같은 소박한 자연이다.

이들 그림은 단순한 구도에 간략한 표현 기법으로 별다른 꾸밈조차 없다.

본질 추구, 화가의 진면목이다. 마치 순진무구한 어린이의 그림과 같다.

그래서 보는 이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 실경이라기보다 화가의 상상력에 의한

심상心象 표현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욱진의 그림은 배경 처리 혹은 원근법이나

대소의 비례 감각 같은 것을 무시했다.

 

장욱진 화가가 남겼다는 말을 적어봅니다.

*

내가 꾸는 꿈의 세계는 좀 다르다.

나의 꿈속엔 나만의 동산이 있다.

나무가 서 있고 그 나무 위에 집이 있고

송아지와 개가 있도 하늘엔 해와 달이 있다.

새해에도 나는 나의 동산에 살며 마냥 행복할 것이다.

*

 

< 덧붙이기 >

   지금도  시집 '조선의 마음'에 실린  . , <논개> 하면 떠오르는 시구가 있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 깊고

   불붙는 정열

   사랑보다 강하다

   아,  강낭콩 꽃보다 더 푸른

   그 물결 위

   양귀비 꽃보다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이조 초기 대제학 변계량의 18대 후손이 었던, 시인 수주 변영로가 생각난다.

  공초 시인 변영로는 '명정酩酊 40년' 혹은 '주정 반세기'로 잘 알려져있다.

  일제강점기, 한민족의 육이오 동란을 함께 겪은 유학파 예술인이다.

  공초의 경우 시대적 어둠의 상황의식과 민족적 좌절감으로  인생술로 마셨다면

  장욱진 화백의 경우는 '외로움'이  원인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화가는 현 세종시가 있는 충남 연기군의 대지주 가문의 손으로  더 나은 

  교육기회를 얻기위해 어린 나이, 5세에 한성 종로에 사는 고모의 집으로 유학을

  온다. 그리고 5년 후 부친이 타계한다.

   경성사범보통학교에 다니면서 학습보다는 고생길이 뻔히 보이는 그림만 그린다고

   고모와 고모 아들, 형으로 부터 구박(질책) 받는 생활을 하게된다.

   학교에서는  학생의 그림 재주를 높이 평가, 일본 본토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가

   주최한 전일본소학생미전에 작품을 보내 출품하게 되고 1등상을 받는다.

   그 때 그려 보낸 그림이 '까치'를  소재로 한 그림이라고 화가의 큰딸이 전한다.

   언듯 정서는 생택쥐베리의  어린왕자, 화면은 여백의 미로 이름난  단원을 닮았다(?)

   추상미술의 범주인 미니멀니즘(단순한 선과 기하학적 패턴 사조: 1960년대 )의

   정의를 넓혀  단순 가장 순수한 형태인, 오직 궁극의 진실을 구상미술에서 구현시키려면

   남다른 단단한 의지와 절제력, 결연한 삶의 실천이 필요하다. -    화가의 삶처럼

   존재의 단순함  앞에서는 요령부득으로 최소한의 조형과 표현만 남는다고 한다.

   장욱진은 과묵하여 교우관계가 허전했다고 한다. 말수가 적으면 상대편이 불편하다.

 

     *

                                            -  이   상 -

 

 

*     *

참고 서적 :

장욱진의 색깔있는 종이그림  2000  구성 김형국  (주) 로얄프로세스

이건희 컬렉션 Top30: 명화편  2022  이윤정  센시오

커튼콜 한국 현대미술  2019  정허윤  (주)은행나무

*

2024.7. 18.  한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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