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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초등학교로 노마를 타고 출근하던 도중에 맞이한
금년 첫 눈, 차창가로 바람에 몰려와 창문에 부딪치는 눈보라 흩날림이 인상적이 었다.
표제 사진은 1988년 12월 말 완공된 합천땜 하류 6.5km에 위한 보조땜 주변 풍경으로
물안개가 피어 오르는 이런 풍경을 원한다면 추운날 바람이 없는 날을 택해야 한다.
방류하는 물이 찬 공기와 만날 때 물안개가 피는 것이다.
합천 하면 1978~79년 초까지 합천고교에서 교편생활을 하던 때가 생각난다.
합천에는 폭 넓고 긴 황강이 구비 구비 흐르고 강 따라 햐얀 백사장이 펼처져 함께 했었다.
영어를 가르치느라 방학 때에도 특강을 해야했지만 시간이 나면 낚싯대를 들고
강가에서 은어 낚시를 좀 했고 물흐름이 약한 지천의 소에 서는 붕어 낚시도 했었다.
물고기는 태양을 따라 움직인다고 한다.
봄여름에는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고, 가을 겨울에는 물살에 실려 내려가니, 낚싯꾼은
이런 고기들의 숨고 나오는 이치를 알고 물의 위 아래에서 그 것을 낚는 것이다.
자고로 강가 낚시는 물고기를 낚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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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파 이경윤(駱坡 이慶胤)의 작품
「 유하조어도 柳下釣魚圖 」
옛 조상들은 능수버들 휘날리는 따뜻한 봄날 쏘가리 낚시를 즐겼다고 한다.
“복사꽃 흐르는 물에 쏘가리 살찐다”桃花流水鱖魚는 당나라 장지화 시가 일러 주듯
봄은 낚시의 계절이다.
쏘가리 낚시는 여울과 소가 만나는 지점에 돌무더기가 솟은 곳(곶부리)이 최고의 낚시 명당이다.
능수버들 아래 삿갓을 쓴 고운 인상의 선비가 온 정신을 모아 낚시에 집중하는 모습이
보는 이의 미소를 절로 자아낸다.
갓두루마기를 걸친 낚시꾼 옷의 팔꿈치 부분이 구겨졌는지 팔이 다 들어났는데도 다시 내리지
않을 정도로 날씨가 따뜻한 봄날의 정경이다.
삿갓을 쓴 앉아 있는 낚시꾼 모습이 점잖다. 사대부는 낚시를 할 때도 대충 입지않고
아무리 더워도 옷을 다 벗어젖히지 않고, 기껏 물에 발을 담그고 손을 씻던 이들이
바로 조선의 선비들이었다.
고사목처럼 올곧은 자세로 온 정신을 모와 심혈을 기울려도 낚시는 마음데로 되지 않는 모양이다.
뒤쪽에 놓인 다래끼도 동안 뭘 잡은 적이 없는지 뚜껑이 열려있지않고 그대로 닫혀 있다.
다시 낚시꾼의 얼굴을 살피니 여유 만만했던 선비의 얼굴에 조바심이 슬쩍 비친다.
낚시하는 선비의 동작을 보면 느긋하게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입질이라도 오면 맵싸게 낚아채려는 듯 팔을 쭉 뻗어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보통은 오른손에 낚싯대를 쥐는데 오랫동안 입질이 오지않아 팔이 아파 왼손으로 대를 바꿔 잡고
잠시 놀리는 사이에 작은 입질이라도 들어온 모양이다.
낙파 이경윤은 조선 중기(1545 인종 1년 ~ 1611 광해군 3년)의 문인화가로
김제(金視)와 함께 조선 중기의 화단에서 절파화풍(浙派畵風)의 정착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성종(成宗)의 제11자인 이성군(利城君) 이관(李慣)의 종증손(從曾孫)으로 16세기 후반의
화단(畵壇)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사인士人 화가이다.
성종의 증손자 이걸(1525~1593)의 맏아들로 태어난 이경윤은 종실 화가다.
이경윤의 현존 작품들은 조선 전기의 안견파 화풍에서 벗어나 절파화풍으로 그려져 있다.
富貴有爭難下手 부귀유쟁난하수
林泉無禁可安身 임천무금가안신
採山釣水堪充腹 채산조수감충복
詠月吟風足暢神 영월음풍족창신
부귀에는 시샘이 많아 손대기 어려웠고
자연에는 금함이 없으니 몸을 편안히 할만했네
산나물 캐고 고기 낚아 배 채울 수 있었고
달과 바람 읊조리며 걸림 없는 자유 누렸네
< 서화담徐花潭, 술회述懷 > 중에서
낙파 행적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으나 중국에 사절로 두 번 다녀온 기록이
있을 정도로 인재였으나, 을사사화 때 태어난 후 종친간의 갈등을 많이 보고 자란 탓인지
자신도 왕의 친족이라 확림수(총친부의 정4품)에 제수를 받았고 나중에는 학림정에
봉해졌다고 하나 정사에 깊게 개입하기를 꺼렸고 갈등 속에서 출사 입궐해서
경륜을 펼치기 보다는 유유자적하며 세상에 나가지 않기로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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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1745년 ~ 1806년 ?)
「 조어산수도 釣魚 山水圖 」
병진년화첩 중 한 작품으로 빼어난 구도감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단원 김홍도가 51살 때인 1796년(정조 20년)에 그린 이 화첩은 문화재청에 의해
보물 782호로 지정되면서 ‘김홍도필 병진년화첩’으로 명명됐다.
크기 32 X 27cm 산수, 화조 그림이 20폭으로 이루어진 종이에 수묵담채 그림이다.
옛날이나 작금에도 지친 삶 속에서 낚시로 활력소를 찾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두 사람이 낚시를 하고 있고, 그 앞으로 시원하게 바위가 뻗어있다.
여백을 많이 주어 시원하기 그지없다.
바위에 뿌리를 박고 자란 나무는 그 가지가 담백하여 조선회화의 맛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먼 들판에서 흘러오는 시내와 바위산을 휘돌아 온 물줄기와 만난다. 갈라져 흐르는 물이
어지럽게 돌에 의지하고 얕은 여울에 들려온 물은 그 돌에 부딪혀 빠르게 흐른다.
좁은 여울에 물이 많은 것을 보니 비라도 내린 모양이다.
젖은 뜻 솟은 바위 옆으로 계곡물이 넘쳐들고 들에는 풀이 무성하며 새 물이 들어온다.
삿갓을 쓴 사람은 몸을 수그리고 낚시에 집중하는 모습인데 친구로 보이는 사람은
연신 말을 걸고 있다. 언 듯 보면 노인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머리는 많이 빠졌어도
수염이 적고 주름살이 없다. 나이가 많지는 않다는 이야기다.
낚시를 자주 다니지 않는지 오른쪽 사람은 행색이 초보자 수준이다.
온종일 햇볕에 노출될 터인데도 삿갓도 쓰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낚시는 뒷전이고 아랑곳 않고 왼쪽으로 돌아 앉아 계속 말을 걸고 있다
반면 삿갓을 쓴 낚시꾼은 받침대에 낚싯대를 걸고 초릿대 끝을 낮춘 모습에서
전문가의 풍모가 느껴진다.
삿갓을 쓴 낚시꾼은 입질이 오는 순간 바로 낚아챌 준비가 된 자세로 한 순간도
낚싯대에서 눈을 떼지 않고 주의를 기울리는 모습이다.
그런 사정도 모르고 자꾸 말을 거는 옆 사람의 얼굴 표정이 매우 익살스럽다.
사실 김홍도가 남긴 기록은 그가 그린 그림 외는 이외로 편지 몇 통 밖에는 없다.
글보다 그림을 가까이하는 도화서 화원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에게는 기록에 충실했던
강세황이라는 사대부 스승이 있었다. 탁월한 그림 실력 덕분에 양반 사대부들과도 교유했고,
그들 중 일부가 김홍도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중인 신분의 단원은 양반 주류사회의 학식에 미치지 못해 수모도 당했다.
영조 어진(御眞)을 그린 공로로 1773년 궁중의 고기·소금 등을 관장하는 자리에
처음 올랐지만 넉 달 만에 파직되는 치욕을 겪었다.
사서삼경 중 두 책을 읽고 백성을 다스리는 방책을 논하는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791년 정조의 어진 원유관본(遠遊冠本)을 그릴 때도 참여하여 그 공으로 충청도연풍 현감에
임명되어 1795년까지 봉직하였으나, 현감 퇴임 후 만년에는 병고와 가난이 겹친 생활고에 시달렸다.
단원의 삶의 마지막은 가슴 아프기까지 하다. 1805년 음력 12월 30일, 전라도 관찰사 심상규는
한양에 있는 벗 예조판서 서용보에게 편지를 보냈다.
화사 김홍도가 굶주리고 병들어 먹을 것을 위해서 여기(전주)에 와 있다는 내용이었다.
단원 생애에 대한 마지막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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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아재觀我齋 조영석趙榮祏(1636~ 1761)
「 강상조어도 江上釣魚圖 」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종보宗甫, 호는 관아재觀我齋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1706-1769)과 함께
3재(三齋)로 불리워진다.
그는 성격이 매우 강직하고 기가 밝으며 뜻은 높고 행동은 잘 가다듬어져 있으며
크고 작은 일에 척도가 근엄하였고 모습은 고죽孤竹과 같았고 절조節操는 돌처럼 단단했다.
그는 일찍이 말하기를 사람이 네 가지 큰 욕심이 있으니
그것은 <생(生), 색(色), 관(官), 재(財)로 누구나 이것을 경계해야 하지만
벼슬하는 사람은 더욱 명심해야 한다>고 말해
그의 묘지명墓地銘을 쓴 유척기(兪拓基)가 관직생활 30년 동안 늘 이것을 되새겼다고 한다.
조영석도 사대부 화가로서 진경산수화로 유명한 겸재 정선과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강상조어' 감상
수면에 드리워진 조릿대가 제법 굵다.
작은 물고기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듯 낚시꾼의 자세도 한결 느긋하다.
물가에 바위가 있으니 수심도 깊을 것같고 갈대가 우거져 있으니 먹잇감도 풍부한 듯
아직 갈대에는 꽃망울이 안 보이니 6월경이고, 물가에 키가 껑충한 것으로 보이는
갈대는 물대인 듯하다. 물대는 갈대 보다 키가 2~3m 가량 더 자란다.
주로 남부지방에서 볼 수 있는 다년생 벼과 식물이다.
호수나 강에서 낚시를 할 때 바람이 불면 물 표면에 흐름이 드러난다.
바람이 한꺼번에 강이나 호수를 쓸고 가는 게 아니라 잔물결이 이는 자리와
일지않는 자리가 구분이된다. 이렇게 바람이 지나가면 수온이 내려가 입질이
끊길 때도 많다. 그림 속 낚시꾼도 한동안 물고기가 잡히지 않아 팔이 저렸는지 뱃전에
낚싯대를 잠시 내려둔 상태다. 하지만 시선은 낚싯줄에 고정되어있다.
배 위에는 짚이나 부들 따위로 엮어 만든 뜸이 보인다. 얼핏 거적때기 같지만 이것은
볕과 비를 막아 주는 차양과 같은 것이다.
그 앞에 장막까지 달아 준 것을 보니 배에서 때로 주식을 해결하는 모양새다.
앞가슴을 다 풀어헤치고 팔다리를 걷은 모습이 기품있는 일반 선비와는 다른 모습이다.
모자는 밀집으로 만든 것으로 보이는데 가운데가 뚫려있고, 머리카락 숫이 적어 보인다.
그림을 그릴 당시 불었던 바람까지 화폭에 담아낸 듯 생생하고 갈댓잎을 거침없는
선으로 그려낸 것, 두 줄로 뻗은 굵은 선과 엇나간 작은 선들이 어우러져 바람에
부대끼는 모습 등 세세한 붓 터치가 예사롭지가 않다.
당시 조선의 시서화 발전에 주도적인 역활을 한 겸재 정선과 사천 이병연 李秉淵 등에
관한 기록을 담은 조영석의 '겸재정동추애사'에는 정선의 도덕관년과 조영석과의 돈득한
우정 등이 적혀 있어 당시의 문화를 이해하고 재조명하는데 큰 도움과 회화사 연구에
귀한 자료가 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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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제兢齋 김득신金得臣(1754 ~ 1822)
「 강천모설江天暮雪 」
영조 30년∼ 순조 22년 조선 후기의 화가. 본관은 개성. 자는 현보賢輔, 호는 긍제兢齋
대대로 화원을 배출한 개성김씨 집안 출신. 화원 김응리(金應履)의 아들이며 김응환의
조카이다. 그 또한 화원으로 초도첨사(椒島僉使)를 지냈다.
1791년 정조어진 제작에 김홍도, 이명기, 신한평(혜원의 父)과 함께 참여했다.
각 분야에 걸쳐 김홍도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풍속화의 경우 더욱 두드러진다.
특히, 김홍도의 후기 화풍을 계승하면서 산수를 배경으로 더 삽입시켰고,
또 해학적 분위기와 정서를 좀더 가미하여 그에 못지않은 역량을 발휘하였다.
긍재 김득신은 단원, 혜원과 더불어 조선 3대 풍속화가로 불린다.
발문
歷林失翠斷徑橋 (역림실취단경교) 疏소 (글자가 분명치 않다)
境靜荒邨暮寂寥 (경정황촌모적요)
何事笠翁還獨釣 (하사립옹환독조) 還환: 사방을 둘러보다
江空漠漠興偏饒 (강공막막흥편요)
江天暮雪(강천모설) 兢齋寫(긍재사)
숲을 지나니 푸름을 잃고 길과 다리도 끊겨
(성긴 숲이 푸른 빛 잃고 지나갈 다리도 끊겼으니)
장소는 조용하고 거친 마을인데 조용히 저물고 있네.
(주변이 조용한 황량한 마을에는 저녁이 쓸쓸하네)
무슨 일로 삿갓 쓴 늙은이는 홀로 낚시하다 돌아오는지
강은 비어 막막하나 시골의 넉넉함을 느끼네.
강 하늘의 저녁 눈, 긍재가 그리다.
눈이 그친 하늘은 어둡지만 눈 내린 봉우리는 훤하다.
길가에는 인적이 없고 새 한 마리 날지 않는 허공는 허허롭다.
흰 벼럭처럼 나란히 솟은 산골짜기는 평풍처럼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눈이 그치고 나서 낚시하러 나왔는지 사방이 눈이 쌓여 하얀데
오직 하나 노인늬 삿갓 도롱이와 배에는 눈이 쌓이지 않았다.
부드럽게 눈이 내려앉은 강 마을은 한 없이 고요하고 안온하다.
산골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집들이 정겹다,
는 덮인 산은 본래 적적한 법이지만 화폭에는 쓸쓸함이 전혀 묻어나지
않고 오히려 포근함이 가득하다.
자연의 모든 것들이 제 빛깔을 잠시 내려놓고
하늘이 보낸 순백의 눈으로 덮혀 하나가 된다.
천지가 하얗기만 하니 어떻게 보면 싱거울 수도 있지만 , 반면
사람에 따라서는 깊은 흥취를 느끼게도 한다.
이 그림은 겨울을 그렸지만 추위와 쓸쓸함 보다는 평안하고
조용한 낚시꾼의 정취가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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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서적 :
옛 그림으로 떠나는 낚시여행 안국진 2013 (주)실천문학
2023. 11. 17. 한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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