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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산대로 엄청난 풍요와 충만 가운데에서도
뿌리 깊은 고독과 허무의 병을 앓고 있는 것을
벌목정정(伐木丁丁) 라 하듯 산중 모두가 잠든
밤이면 근원적인 허적과 함께 생리적인 고독에
산은 홀로 신음하기도 한다.
산은 모든 것을 허락하고 사랑하되 스스로를 다
비우고 사는 성자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산에 들어 충만 속에 가득 고인
고요를 바라보면서 끝없이 용서하면서 겸허하게
살아야하는 삶의 교훈을 배운다.
우리가 땀 흘리며 애써 산을 오르는 것은 저 높은
봉우리를 유유하게 흘러가는 흰 구름의 생리
바람의 모습을 닮고자 하는 것이리라.
오늘은 두 시인의 삶의 노래를 들어 본다.
▷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 시인 : 정호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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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시인 : 서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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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것이 어찌 구름과 바람뿐이랴 ?
강물도 끊임없는 흐름과 굽이침으로 인해 사랑의 그리움,
외로움을 일깨워 준다.
물은 생명의 원형성을 반영하기에 물은 생명의 근원이자
생명과 사랑을 지속적으로 일깨워 주는 촉매이다.
물결과 파도의 간단없는 일어남과 스러짐,
밀려감과 밀려옴의 끝없는 반복이
바로 그리움과 외로움, 사랑함과 미워함,
체념과 미련으로 이어지는 사랑의 본모습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이런 물음을 받아 본적이 있으신지요 ?
가을의 향기를 아시나요.
가을의 얼굴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가을의 마음을 읽고 계시나요.
너무도 아쉬운 사랑을 해본 사람은
매번 가을을 맞이할 때면
마음의 빈터
모래밭 시간의 바람이 쓸려간 자리에 큼직하게 찍혀 있는
바람의 발자국을 봅니다.
삶의 숲을 헤쳐가면서
나는
얼마나 흔들려야만 했던가
이제
습관처럼
맘이 흔들릴 때 마다 바람이 분다.
깊은 삶의 외로움
자연의 쓸쓸함
홀로 청명한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
자연의 본원적인 적막 가운데 서서
노을이 타는, 장미가 시드는 향기 , 골든 능금이 익는
이른 바람에 물들어 가면서 하나 둘씩 떨어져 가는 네 모습
다만 향기의 이름으로 남은 상하고 아름다운
그냥 그렇게 무심한 마음으로 겨우내 자신을 텅 비워버리는
자연의 마음 , 자연의 본원적 적막의 마음을
가을 들녘의 자세와 마음을 읽는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은 연꽃같이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듯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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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9.16. 한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