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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끝에 홀로 오르니
흰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시절에 불던 풀피리소리 아니나고
매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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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 ” / 시인 정지용(1902~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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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가난은 개인적인 원인에 기인하는 가요.
아니면 사회적 역사적인 요인이 더 큰 작용을 했을까요.
일제의 무단 수탈과 분단의 고된 역사를 되돌아보면
사회적 역사적 원인이 더 크게만 생각되어 집니다.
가난으로 떨어져 산 세월로 어머님을 모실 기회가 적었던
저에게는 지금도 산바람의 거칠게 부는 늦은 오후 어머니가
자기(손도끼)로 찍어낸 소나무를 등에 지고 산에서 내려오던
모습이 너무도 생생합니다. 쪼개서 장작으로 팔았습니다.
초등학교 때 함께 산행했었습니다. 아마 무서워서 동행한 것
같습니다. 아들과 함께면 어머니는 두려운 것이 없었겠지요.
어떤 날은 여동생과 쉬 돌아오지 않은 어머니만 하염없이
집에서 기다린 적도 적지 않았습니다.
추석을 하루 앞두고 예전에 썻던 수필을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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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한해도 다 저물어 가는 섣달그믐
설 전 세모의 시간을 지내고 있읍니다.
올해 무자 년의 대한(1월20일)과 기축 년 설(1월26일)이
거의 겹쳐서 혹한 덕을 톡톡히 치루는 것 같습니다
어제 오늘 내린 폭설로 고향 가는 길은 멀기만 합니다.
우리의 추석과 설은 고향을 향한 발걸음으로 도로를 만원입니다.
고향은 어머니입니다
고향을 향해가는 어려운 여행으로 몸을 고달프지만
마음은 어머니의 품속을 그리며 행복한 꿈을 꿉니다.
비록 현재의 삶은 타향에 있지만
당신은 우리가 삶에 밀려 떠나온 고향으로
삶을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신 모태
세상의 험한 일을 맞이하여 삶의 무게로 고통을 받을 때
어머니, 불러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위안과 용기를 얻습니다.
우리와 비슷한 조상을 가졌던 몽골인의 원정 군인들도
우리네와 같은 성정을 지녔던 것 같습니다.
한때 전 세계를 제패했던 몽골제국의 크기는 1,300백만
평방 마일로 그 크기는 구소련(6백만)의 2배 이상 , 로마제국
3백만 마일)의 4배 이상 이었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들이 머물렀던 곳에는 항시 똑같은
그림이 많이 그려져 있었는데 모두가 순록 그림으로
몽고에 많았던 순록의 무리에서 고향의 꿈을 꾸었던 것입니다.
이제 고향에는 통고무줄로 바지의 허리춤을 고쳐 주시던
나이 드신 어머니는 더 이상 계시지 안 습니다.
급속한 산업화로 옛 모습을 잃어버린 고향산천 ,
어머님 모습이 뵈지 않는 마을은 이미 고향이 아닙니다.
오늘도 인천공항 출국장은 많은 여행객으로 붐비었습니다.
내일이 설인데 고향에 안가고 어디로 떠나는 것일까요.
삶이란 여행 또는 길을 가는 것이라고도 합니다.
여행이란 결국 떠남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므로
떠남의 길 위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것일까요?
이제 고향이 보고 싶으면 산을 찾아 올라갑니다.
산길에서 만나는 친근하고 굳건한 아름드리 소나무,
세월이 지나치며 준 상처를 안은 신갈나무 , 바위들을 보며
옛 고향을 느끼고 힘을 얻습니다.
이제 우리는 바닷가에서 고향을 봅니다.
삶이란 상처라고 했습니다.
바다에는 바닷물이 가르는 상처인 외로움 그리고 그리움의
상징인 섬이 있습니다.
섬은 기다림입니다.
성장의 과정이고 성숙을 위한 시간의 절차인 기다림은
포기나 체념이 아닌 확신이 있는 신뢰입니다
고향은 이제 마음속에 있는 냉장고입니다
시간이 지나간 자리에 남아있는 것이 없지만
냉장고 속에 깊이 간직한 아련한 추억의 꾸러미는
언제 꺼내더라도 풋풋하게 맛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 속에서 태어나 시간의 포로가 되어 살다
마침내는 시간의 밖으로 쓸쓸히 퇴장 당하는
시간의 존재인, 우리는
뿌리 깊은 삶의 외로움 , 쓸쓸함을 겪으며
여행의 길을 떠나야만 하며,
만남과 이별의 생태적 고독을 극복해야 하는
우리들에게 그래도 고향은
삶의 고통과 상처를 딛고 자기완성의 길을 가는 데
아늑한
어머니의 향기이고 , 품이다.
* 2009.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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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9.28. 한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