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나/음악 관련

한국의 락ROCK에 대해

haanbada 2023. 7. 11.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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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록(Rock)에 대해

 

(Rock music)은 미국에서 기원하여 1960년대 ~ 2000년대 후반까지

전세계적으로 크게 유행한 대중음악 장르의 하나이다.

록은 세상에 존재하는 록 밴드의 수만큼 다양한 종류의 록이 있다"고 할

정도로 록은 그 정의 범위가 넓다.

 

- 록의 속성

록의 사전적의미로 따지면 '흔들다', '로큰롤을 추다' 또는 '기분 좋게 하다' 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것은 '흥청거리다', '즐겁다'라는 뜻을 내포하기에 뭔가 쾌락적인

것을 암시한다고 보여진다.

이러한 즐거움은 인간에게 하나의 유희를 제공한다.

즉 록은 유희의 문화요 여가의 문화다. 록의 그 속성은 무한가지로 열려있다.

팝 평론가 임진모씨는 록의 주요한 개념들을 청춘성, 폭발성, 저항성, 예술성이라는

요소로 설명한다.

여기서 특히 저항성과 예술성은 특별히 가치 있는 각별한 개념이며, 청춘성과 폭발성은

거기에서 비롯된 하위 개념이라고 볼 수 있겠다.

록은 모든 문화의 가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다.

물론 그것은 기성세대의 문화가 아닌 청년 문화가 그 중심에 있다.

 

- 록의 뿌리는 블루스다.

록은 미국음악이지만 명확하게 말하자면, Afro-american music이다.

이것은 록이 원래 아메리카로 끌려온 흑인노예의 문화와 관련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로큰롤 Rock 'n' roll은 록의 원류이지만 그 뿌리는 블루스  Blues다.

그것은 흑인음악과 근원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말한다. 블루스가 무엇인가?

미국 남부 미시시피 델타의 흑인 노예들에 의해 처음 생겨난 블루스는 머나먼

낯선 땅으로 끌려와 장시간의 노동과 굶주림, 백인들의 멸시 등을

 감내해야만 했던, 흑인들의 고통과 아픔이 만들어낸 음악이 아닌가!

그렇기에 블루스는 관능적이고 공격적이며 집단적 신체적 언어를 동반한다.

흑인음악이 미국 대중음악에 기여한 바에 있어서의 아이러니는 노예들의 음악이

인간의 자유와 인간의 욕망을 가장 강렬하게 표현했다는 점이다.

로큰롤은 이러한 흑인의  리듬 앤 블루스 Rhythm & Blues와 미국 남부 시골의

백인음악인 컨트리 앤 웨스턴Country & Western이 결합된 음악형태라는 것이다.

 

- 록의 성격

록은 스탠다드 팝과는 달리 진지성, 진품성 그리고 예술의 함축

즉 비상업적인 것에 관심이 기울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록이 시장에 나서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레코딩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지만,

여전히 록은 비타협적 가능성 내지 약속들을 내포한다.

록은 비제도권이다. 록은 제도권에서 작위적으로 발생된 것이 아니라,

언더그라운드에서 자생하여 이는 명백히 비상업성에서 출발한다.

그렇기에 록이라는 장르에서는 <라이브>Live라는 개념이 아주 중요한 위치에 놓여 있다.

록 밴드들은 라이브를 통해서 청중들과 융합된, 그럼으로써 대중들을 하나의

동질감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여 그들만의 욕구와 언어의 해방구를 만들어 낸 것이다.

 

- 록음악은 세계 젊은이들의 자유발언대

록은 음악적 표현의 해방구요, 여기서는 누구나가 자유로이 자기의 사상과

생각들을 말할 수 있다.

설령 록에 나타나는 주장들이 오류가 있거나 체제를 위태롭게 할지언정

록은 다른 음악적 장르에 비해서 그러한 사상의 개방적인 배설구의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록이라는 장르 안에서는 뭐든지 자유로이, 개방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세계 젊은이들의 열린 공간, 그 음악적 장르가 바로 록인 것이다.

 

* 한국 락의 태동기 (1960 ∼ 70년대 )

한국의 락 음악은 1960년대 신중현, 한대수, 산울림, 사랑과 평화라는 이름들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60년대 몇몇 선구자들에 의해 단숨에 이식되었기에 수 십 년 세월에 걸쳐

척박한 국내 토양에 뿌리내리기까지 많은 세월을 거쳐야 했다.

'신중현'은 '한국 락의 대부'라고 말할 수있다.

그는 한국 최초의 락 밴드 ' Add 4 '에서 블루스 스케일의 '빗속의 여인'이라는

곡을 통해 락 음악의 한국적 수용을 가능하게 하였다.

 

1. 산울림  '내게 사랑은 너무써'

 

 

1-2.   '아니 벌써'

 

 

2. 송골매   '모두다 사랑하리'

 

 

2-1.   어쩌다 마주친 그대

 

 

3. 신중현과 엽전들    

 

3-1.  비속에 여인    

 

 

한대수는 모던 포크 락에 미국적인 락을 유입시켰다.

그는 충격적인 공연 문화를 이 땅에 선보인 최초의 언더그라운드였다.

그의 노랫말은 1960~ 70년대 암울했던 군부독재 시대의 문화정책 하에서

'저항'을 노래한 한국 락 음악의 자존심이었다.

그 결과 제도와 체제에 의해 탄압받는 수난의 음악으로 자리매김합니다.

 

       Bob Dylan의 포크락 'Like a rolling stone' 1965   

 

한대수의 노래의 상징성은 그 시대 청년문화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다.

 

    *   한대수     ' 물좀 주소 '   

 

그리고

'산울림' 형제들은 모두 제도권 최고의 교육과정을 이수한 수재들이었으며

그 당시 대부분의 음악인들이 신중현과 관련이 있었음에 반해 새롭게 등장한

인물들이었다는 점에서 매우 충격적인 하나의 '사건'이었다.

70년대 당시 최고의 멤버였던 최이철, 송흥섭, 김명곤 등의 라인업으로 완성된

'사랑과 평화'는 신중현으로부터 이어져온 계보를 충실히 이행하는 밴드이다.

이들은 산울림과 함께 거론되며, 특히, 그들의 1집에서 '한동안 뜸했었지'란 곡은

지금의 우리들의 귀에도 그리 낯설지 않은 만큼 크게 히트했던 곡이다. 

 

4. 사랑과 평화  ‘한동안 뜸했었지’

 

 

 

*한국 락 음악의 중흥기(1980년대 초반 )

80년대 초반에는 수많은 스쿨 밴드가 존재했으며 매니아 층이 두터워진 시기이다.

1978년에 개최된 대학가요제는 대중음악계에 신선한 뮤지션들을 공급하는 동시에

대학가의 락 밴드들을 주류 음악계로 이끌어주는 역할을 하였다.

수많았던 캠퍼스 밴드 중 하나였던 '마그마'는 '해야'라는 곡으로 대학가요제에서

금상을 받으면서 음악계에 데뷔하였다.

당대 최고의 기타리스트였던 김수철이 재적했던 '작은 거인'은 그들의 두 번째

앨범에서 한국적 헤비 사운드의 기틀을 다졌다. 

 

5. 마그마  '해야 '

 

 

 

* 한국 록의 전성시대 (1980년대 중,후반 / 헤비메탈 밴드 등장>

1980년대 중반 ‘들국화’, ‘시나위’, ‘백두산’, ‘부활’, ‘작은 하늘’, 'Rock In Korea'

1985년 ‘들국화’의 데뷔는 80년대 대중음악에서 한국 록의 이정표와 같았다.

그들은 ‘신중현과 엽전들’ 이후 근 10년 만에 나타난 슈퍼밴드였다.

전인권의 파워보컬은 청중을 압도했고, 조덕환과 최구희의 기타도 힘이 있었다.

최성원과 허성욱의 여성스러움은 들국화의 가치를 배가 시키는데 도움을 주었다.

들국화의 성공은 단지 음악적인 면에 국한 시켜서는 안된다.

방송메체를 거의 무시하면서도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는 위력과

소위 80년대 언더그라운드 문화에서 락과 포크가 공존하는 기폭제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김민기와 신중현으로 대표되는 포크와 록의 계보를 한데 모아 80년대 언더그라운드에

포크와 록이 공존하는 기틀을 마련해주었다고 할수도 있다.

'그것만이 내세상'을 외치는 전인권의 목소리는 '물좀주소'의 한대수에 필적할만 하고

최성원, 전인권의 언발란스한 목소리가 조화를 이루는 '사랑일 뿐이야'는 베스트 트랙이다.

조덕환 작품인 '아침이 밝아 올때 까지' 그리고 히트한 '행진'과 '세계로 가는 기차'까지

수록곡 모두가 80년대를 대표할 만한 명곡들이다.

 

 

6. 시나위 ‘그대 앞에 난 촛불이어라’

 

 

 

6-1. 아름다운 금수강산

 

 

 

7. 백두산 김도균 '반말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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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백두산    노래모음 (주연배우, Rush to the world  등)   

 

 

8. 부활   명곡 모음( 추억이면, 로운리 나잇  등)

   

 

 

‘시나위'는 본격적인 헤비 메탈 밴드이다. 당시 모두 20대 초반의 멤버들로,

신대철의 힘있는 기타 연주에 임재범의 샤우팅 창법은 혁명이었다.

음악적인 완성도 면에 있어서 그들은 헤비 메탈 사운드의 기초를 마련한 무당의 사운드를 압도한다.

시나위는 이후 한국 락 음악을 이끌어가며 수많은 훌륭한 뮤지션들을 배출하고 지금까지 굳건히

존재해 오고 있다.

시나위가 헤비메틀의 시조라고 불리우는 이유는 앨범의 완성도에 있다.

시나위 1집을 들어보면 분명 무당이나 작은거인과 사운드에서 확연한 차이를 느낄수 있다.

신대철의 힘있는 기타연주에 어우러지는 임재범의 샤우팅 창법은 이미 LA메틀사운드를

섭렵하는 우수성이 있다.

그것이 헤비메틀이었고 그것을 누구보다도 먼저 그리고 완벽히 이뤄낸 것이 바로 시나위였다.

 

9. 시나위 -  김대철, 김바다 ' 크게 라디오를 켜고'    

 

 

'크게 라디오를 켜고'에서 영국의 뉴웨이브 헤비메틀 사운드를 재현했으며,

'남사당패'의 독창적인 기타 리프는 신중현의 대를 잇는 멋진 작품이었다.

물론 '그대 앞에 난 촛불이어라'에서의 임재범의 보컬은 일품이었다.

부활은 1집의 대성공으로 '회상'을 컨셉으로 한 두번째 앨범을 발표하는데,

1집보다도 헤비함이 더 많이 사라졌지만 연주중심의 멋진 작품이었다.

‘천국에서'에서 신디사이져와 함께 한 김태원 솔로 연주는 압권이었다.

비록 상업적인 록이라는 비난도 함께 한 부활이지만 김태원의 기타 연주만큼은

그 어떤 밴드들보다도 훌륭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86년에서 87년까지는 헤비메틀의 전성시기였다.

그러나 메이져 밴드인 시나위, 부활, 백두산이 멤버들의 이합집산에 의해 해체나

활동정지 상태에 빠지면서 록밴드의 활동은 크게 위축된다.

그러나, 언더그라운드는 활성화되어 있는 상태였다.

물론 임재범과 김도균의 콤비는 이후 아시아나 탄생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고

80년대 헤비메틀 최고 명곡 'The same old story'를완성하였다.

 

9-1.  The same old story   

 

 

 

80년대의 끝자락에서 끝없이 불타던 헤비메틀 사운드를 마지막으로 정리한 ‘록인코리아’는

시나위, 부활, 백두산의 헤비메틀 1세대의 마지막과 80년대식의 록음악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10.  N.E.X.T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    

 

 

* 대중음악 속 새로운 록 (1990년대 초,중 반의 변주)

여러모로 볼 때 90년대는 80년대보다 이전 세대에 대한 정통성이 뒤떨어지는 시대임에

틀림없었지만 역으로 80년대 록을 기반으로 쌓아 온 많은 자양분이 90년대 대중음악

제도권내 충분한 자양분을 공급하는 계기가 되었다.

80년대 그 뜨거웠던 헤비메틀의 주역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제도권으로 흡수되고

김종서, 임재범, 손무현, 오태호, K2, 이현석, 넥스트 등) 이 땅의 록음악은 90년대식으로

록이 재편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밴드경력을 통한 탄탄한 내공으로 솔로활동을 전개한 아티스트의 생성이다.

 

1990년대 초중반 - 새로운 시도

:  정통 록 기반 : 이현석, H2O, NexT,

   록 밴드 기반 솔로 : 김종서, 이승환, K2

 

90년대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성공한 케이스인 '넥스트' 를 보더라도 그렇다.

물론 리더인 신해철은 80년대 후반 대학가요제를 통해 등장을 한 뮤지션이기는 하지만

신해철이 몸담았던 '무한궤도' 역시 록 정통성에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신해철은 근본적으로 테크노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뮤지션이 였다.

90년대 초반 여러 밴드가 실패한 스래쉬 메틀을 넥스트가 완성하면서 이 땅에는

'크래쉬'라는 대형 밴드가 탄생할 터를 만들 수 있었다.

넥스트는 2집의 성공에 힘입어 록밴드로서는 최초로 수많은 지지자를 확보하였고

3집과 4집에는 다운타운 출신 기타리스트 김세황과 감각적인 김영석을 영입하여

안정된 사운드를 선보였다

 

* 한국 록의 새로운 대안(1990년대 후반 )

90년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인디 락 음악이다.

저예산 독립 음반을 의미하는 인디 락은 '드럭'에서 그 역사가 시작된다.

'크라잉 넛', '노 브레인', '허클 베리핀', '레이니 선', '미선이', '토스트', '새드 레전드' 등

많은 좋은 밴드들이 주목할 만하다.

 

 

11.  크라잉넛    '밤이 깊었네'

 

 

11-1.     말달리자    

 

 

 

12.    노브레인      '넌 내게 반했어'

 

 

12-1.      밤이 깊었네

 

 

1990년대 중반을 거치며 록 음악의 중심은 홍대 앞을 중심으로 조성된 ‘인디음악’으로

옮아가게 되었다. ‘인디음악’이란 제작과 배급 시스템 과정에서

거대자본이나 대형 유통구조로부터 자율적인 음악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음악의 생산, 유통, 소비 방식의 전환 뿐 아니라, 이를 둘러싼 광범위한 문화적

실천까지 포함하고 있다.

초기 인디음악은 1990년대 전 세계를 휩쓴 포스트 펑크와 얼터너티브의 영향 하에 형성되어,

펑크 록(punk rock)과 얼터너티브 록이 주를 이루었으나 점차 음악적 외연이 확대되고 있다.

인디 락 음악은 펑크에서 테크노, 하드코어, 힙합 등으로 장르 확산하면서 점차 정착되어 가고 있다.

아마추어리즘에 입각한 신선함과 젊음이 향후 이 땅의 음악에 질적 향상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록 음악은 ‘진정한 감정’을 드러내거나 ‘공동체의 이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진지한 음악’의 지위를 누려왔다.

록 음악을 특권화하는 이러한 비평적 흐름은 한국 록을 평가하는 데에도 무 매개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한국 록의 역사에서 록이 실질적으로 시장을 지배하거나, 주류의 판도를 바꾼

경험이 거의 없으면서도 늘 담론의 영역을 주도했던 것은 대중음악 안에서 록이 가지는

특별한 지위와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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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원      '희야'

 

 

 

* 자우림 -  더 보이즈    '헤이  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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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국화의  락발라드 '제발'  , 싱어게인에 출연한  헤비메탈 락 가수 정홍일

이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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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3.7.10. 한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