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 좋은 창가/차 한잔

시·공 時空과 나我

haanbada 2023. 4. 1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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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인 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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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낙화 " / 시인 : 이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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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가 小寒이었으니 이제 계미년 보내고 갑신년을 맞는

送舊迎新 기다림의 시간이 2주 정도 남았다

歲米를 맞이하면 문득 찾아오는 물음이

시간. 공간 .그리고 “나”란 무었인가에 집중된다.

 

시간과 공간의 특성 중 최대 관심사는 時空의 파악적 특성으로

이는 사물이 공간과 시간에 공존한다는 특성이다.

 

공간적으로는 점들이 집적인 통합된 전체로의 파악이요

시간적으로는 분리된 순간이 아니라 지속으로 파악된다는

것이다.

지속은 공간적 시간적 관계의 기초로 , 지속이란

시간적 폭에서는 유한 하지만 공간적인 연장에서는

무한한 자연( 온갖 대상과 작용들이 서로 얽혀 하나의 전체상으로

복합적 조직적으로 끊임없이 변화해 가는 유기적 유동적 현상)

의 구체적인 장이기 때문이다.

 

연장적 측면의 시간이란 관련되어 있는 과거 , 미래, 그리고

이들의 파생적인 구성물들을 수반하는 추상적인 집합들의

존재에 관계에 관계되어 모든 현실적 존재는 이 연장적

연속체의 규정에 따라 관계를 맺는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시간의 존재원리가 현상화되는 場은 다름아닌 공간으로

공간적 구조가 시간이 드러날 원천적 토대가 됨도 고려해 보자

 

우선 우주와 세계에 의미를 새겨보자

우주 , 유니버스(universe)는 파자해보면 UNI- (모음, 이어짐) 과

-VERSE ( 여러갈래 )로 “여러 갈래로 흩어진 다양한 것들의

모음, 또는 이어짐 “이란 의미로 이어 놓았다는 것은 시간적인

개념에 가깝고, 모아 놓았다는 것은 공간적인 개념에 가까워

그러므로 우주, 유니버스란 시간, 공간적인 총체의 개념이다.

 

世界는 三世十界의 준말이라고 한다

삼세란 전세(과거, 已), 현세(현재, 今),그리고 내세(미래, 當)로

시간적 개념과

십계란 , 즉 四聖(불, 보살, 연각, 성문계)과 천상계 그리고

六凡( 인간, 수라, 축생, 아귀, 지옥계)인 육도를 말하는 것으로

공간적 개념으로 이 또한 시. 공간적인 총체의 개념으로 하고 있다.

 

그러면 “나” 에 대해 조금 생각해 보자

“나”라고 하는 것은 대체 무었일까 ?

돌이켜 스스로 생각해보자

욕망을 쫒아가는 마음 , 살려고 몸부림치는 마음,

내가 생각하는 나, 남이 생각해주는 나,

몸과 마음이 따로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이 마음이

수시로 변하니 어느 마음이 진정한 나 인지

참나 (眞我)를 생각하기 전에 마음과 몸이란 언어에 대해

조상들은 어떠한 의미를 부여했는지 먼저 살펴보자.

 

마음이 원어는 마움 이었는데 표준어 표기과정에서

이유없이 변했다고 한다

마움의 “마”의 뜻은 “ 마땅하다, 옳다, 처음의, 참된 ”이고

“움”의 뜻은 “씨 ”이니

마음의 뜻은 첫씨, 사람의 참된 첫 씨(본유종자)라는 뜻이다

 

몸은 뮈욤의 준말이라고 한다

“뮈”의 뜻은 뮈다( 안으로 움직이다), 뮈우다(움직이게 하다)

에서 유추되듯이 “열매를 맺기 위한 운행체계”란 의미로

뮈욤은 “마음이 키워낸 열매 또는 그 열매의 운동체계”의

의미로 쓰인 것 같다.

 

연관된 말로 “ 알” 과 “얼”이 있다

알은 陽的인 의미로 “이미 존재하는 맨 처음 씨앗”으로

얼은 陰的인 의미로 “어떤 존재가 없어져도 남게되는 무었”이란

의미로 쓰인다 예로 “속알도 없는 넘”, “얼이 빠진 넘 ”이 있다

 

“ 희망은 위안이고 빛이다 ” 라는 말이 있습니다

“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 할 수 없고 ,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 것은 땅위의 길과 같다“고 한 중국 사상가 '루쉰'의 말을

빌려보자 ,

삶이란 길을 가는 것( 과정)일 것입니다

길을 따라 걷다가 길이 끝나면 길을 새로 개척해야 하고,

길이 있는데 엉뚱한 곳으로 빠지는 우를 범하지는 말아야

하겠지요 , 삶이 다해 죽음을 맞이하여 눈빛이 다하기 전

참된 나를 찾아내야지 시간은 지나간 후 안다고 합니다

 

참된 나란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무한한 “ 나 ”야

만이 참된 나일 것입니다

오늘은 불교의 5위 100법 중 심왕법에 나오는 유식설

속의 참된 나를 소개합니다.

 

몸이 사람으로 구성되는 총체적 운행체계( 신장(神), 쓸개(魂),

허파(魄) 등,등 )라면 마음이란 운영체계에도 여섯 가지 기관,

식(識), 업, 기, 영, 신, 명(命)이 있는데 그 중 제일 하위기관이

식이라고 했고 , 불교에서 이 말을 선택해서 쓴 것이라고 한다

 

불교의 윤회란 죽음을 전제로 한다

12연기설 중 11번째 생(生)이란 六根( 속성=무상, 고, 무아 )이

나타나고 五蘊( 色(육체), 受(감수작용), 想(취상작용), 行(의지

작용), 識( 인식판단작용)=현상적 존재로 끊임없이 생멸하는 것)

을 얻는 단계이다.

 

생명이란 원래 비 생명체였던 특정한 물질들의 정보가 아주

특수한 형태로 서로 결합되어 통합적 정보의 구조를 가지게 되는

어떤 신비한 현상으로 生命體 냐 無命體는 命이 삶에 있는가

없는가의 과정이다.

 

예정된 죽음(아포프토시스)Apoptosis란 삶과 죽음을 모두

목적으로 하는 이율배반적인 흐름이다.

 

始見死生之樞極 (먼저 죽음과 삶의 기둥과 들보를 보라)

有相無想發於中 (모양새(相)가 있고 없는 것이 중에서 비롯된다)

천부경 습유의 첫 14자로 기둥은 시간을 들보는 공간을 의미한다

유기체 철학에서는 영속하는 실체는 없다 오직 유기적 관계성

속의 변화하는 형상만이 있을 뿐이요

이러한 변화 속에서 현실적 존재는 끊임없이 소멸되지만

객체적으로는 불멸한다고 본다.

 

세존께서는 “4식이 있어 생긴 중생을 중생의 상태에 머물게하고,

중생이 되도록 돕는다 . 무엇이 넷인가 , 摶食, 觸食, 意思食 ,

識食이니라, 이 4식에 貪이 있고 喜가 있어 渴愛가 있으면

식이 그것에 머물면서 增長한다 . ,중략,. 行의 증장이 있을

때 미래에 새로운 有를 받게 된다“ 고 하시였다.

 

유식설은 前五識( 안식 , 이식, 비식, 설식, 신식)과 後三識(

의식, 말나식, 야뢰야식)으로 구분된다

전오식은 現前의 대상을 연하여 하등의 사유분별을 요하지

않고 오직 대상을 있는 그대로 현량지( 사물을 첨삭없이 인식

하는 것)또는 자성분별(現量知 와 같음)하는 단계로 생략한다

 

제6식인 의식( 생명체의 현재적인 정신활동)은 육신을 근으로

삼는 전오식과 세세전생을 통하여 유지되면서 윤회하는 아뢰야식

과 생명이 태어나는 순간 아뢰야식으로부터 발아되는 말라식을

포함한 7식의 先在를 전제조건으로 하여 생명체에만 유지되는

것으로 3량지( 現量, 比量, 非量)와 통하고 3分別( 자성분별,

수념분별( 과거를 추념하는 작용), 계탁분별( 3世에 걸쳐 현재

대경하지 못하고 대상을 독단적으로 상기하여 계산, 추리하는

정신작용))을 갖고 있다.

 

제7식 말라식은 항시 我와 法에 집착하여 존재의 상을 일으키는

착각의식으로 제8식을 그 의지처로 하면서 제8식의 견분(見分

-인식주관의 작용)을 자신이 의지하는 대상으로 한다

말라는 범어로 “마나스”의 한자음역으로 “ 생각하다, 궁리하다”

란 의미로 감정, 본능, 정서등 잠재의식을 의미한다

육근의 편안함을 추구하는 작용 및 활동으로 無常에 괴로워하고

삶의 苦를 경험하는 실체( 생명체의 자아)로 불교에서는

진정한 “ 나 ”로 보지 않고 허상으로 본다.

 

제8식 아뢰야식( 생명체의 前身的 본유종자)은

불교의 心意識의 體인 8식 중 제8식으로 현상계 일체법을 전개시키는

근원으로서 근본식으로 불린다

이 아뢰야식은 그 순간까지의 모든 시공간적 경험을 담고 있으며

그 순간의 현실세계는 아뢰야식의 현성으로 본다

아뢰야는 범어 “ 아리야”로 “ 바닥에 깔리다, 땅에 묻히다 ”

란 의미로 진화와 억겁의 윤회반복한 모든 삶의 경험이 기억으로

저장된 방대한 정보의 창고로 業의 개념을 갖는다.

 

人命在天 이나 人乃天의 인명이나 인(사람의 참 씨앗)을

이 아뢰야식으로 보고 있다

즉 우주가 생기기 전에 이미 있었으니 그 시작이 없고

우주가 끝나도 끝나지 않으니 그 끝이 없다는 참마음으로

人中天地一

一終無終一 (천부경 마즈막 8자)

 

일전에 어느 난잡지에서 한국란계의 원로이신 정을병님이

이 야뢰야식에 대해 적은 것을 잠시 본적이 있다

 

정리해 보면 심의식의 구조 양태로 의식의 드러난 부분은

전오식, 제6 의식, 제7 말라식으로 그리고 잠재된 무의식의

부분으로 제8 아뢰야식로 나뉘어 지는데

에고이즘(주체, 나)인 말나식은 본유종자인 아뢰야식(현생 직전

까지의 모든 경험과 지식 보유)을 대망하면서 自我의 相을

짓고 제6식인 의식에 자아 개입한다

제6식인 의식은 의식개입을 통해 전오식으로 하여금 대상과

접촉하게 하여 인식을 종합한다

이때 의식은 인식과 분별을 위해 야뢰야식(잠재된 )에 소장된

경험과 지식에 의지한다

사는 동안 의식이 전오식을 통해 얻은 정보의 종합결과는

내생의 아뢰야식에 소장된다 문제는 본유종자는 개변되는

데 이때 개선 이냐 개악이냐는 현생의 삶의 질에 따른다는 것

 

새로운 現行에서 생성된 본유종자는 지난 생에 의해

달라진다

中生에 머물든 천상계나 四聖에 입적하든 하계로 떨어지든

오늘 현생의 이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다.

 

獨化之神 (스스로 완전하게 되는 것 )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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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9.  한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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