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 좋은 창가/차 한잔

차 한잔의 여유

haanbada 2023. 3. 9.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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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한잔의 여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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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울 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 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 귀천 ”     시인: 천병상

*

 

태인 , 경매정보의 사건번호 2006-51692

아파트 임의경매에 나온 정보의 한 토막

대지 18.45 / 9196.5 (5.58평)

건물 58.665(17.75평, 24평형)

전체 18층 중 5층 인천 남구 학익동 711-3

 

사실 척관법 사용금지의 일환으로 거래나 증명용으로는

이 도량형 사용이 안된다고 공표를 정부에서 한 것이 1964년

일이니 작년 말부터 紙上에서 건평이란 용어자체를 쓰지 못하게

함도 어떻게 보면 많이 봐 주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현재 초강국인 미국에서 조차도 세계 공통도량형인

미터법을 쓰고 있지 않아 실무에서도 파운드나 야드 단위를

사용하고 있으며 요즘 超油價 등을 언급하며 배널 당 얼마다

개런 당 얼마다 TV 뉴스에서 자연스럽게 쓰는 것을 보면 굳이

필요만큼 척관법을 써도 문제가 없는 데 유독 한국에서만 미터법을

고집해서 58.665 평방미터라고 쓰니 넓이가 영 감이 오지 않는다

 

왜 그럴까 생각해 봤다

예를 들면 미터법이 1790년대 초 프랑스 아카데미에 의해

추진되어 99년 프랑스가 미터법을 국가표준으로 공표하기까지

짧지 않은 세월이 소요됐지만 내용을 보면 1m 단위가 “북국에서

적도까지 지구 자오선 길이의 1000분의 1”라고 정의하여 기준을

잡은 것을 보면 이 도량도 생활 속에서는 감이 잡히지 않는다.

 

한편 척관법(한자 문화권)에서 길이, 무게, 넓이 단위를 가지고

보면 그 다양성 실용성에 아주 현실적인 면이 적지 않다.

우선 넓이 단위인 평을 보면, 1평이란 6자 x 6자 (3.3058평방m)

의 넓이로 , 건평의 공간으로 보면 한사람이 편안히 눕어서 잘 수

있는 공간이요. 농경지 단위로 보면, 볍씨 1말을 뿌릴 수 있는 땅의

넓이를 일컷는 1마지기는 토지 150평이나 200평을 말한다.

 

거리의 기준인 10리(4km)는 어른이 걸어서 2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를 말하고. 길이 재는 단위인 1척(=1자)은 손바닥을 펴서

엄지손가락 끝에서 가운데 손가락 끝까지의 길이로 최초 중국에

서는 18cm 정도로 사용되다 길이가 변하여 1902년에는 일제의

곡칙으로 현재의 30.3cm로 고정되었던 것이었다.

 

무게의 단위의 경우 관이란 곡식의 일정한 무게를 기본질량 단위로

정했는데 이상하게도 보리나 밀알 등은 그 낱알이 크기에 관계없이

무게가 일정하다는 것에서 얻은 개념으로 1관이란 1천중( 1돈쭝 =

3.75g)의 1000배의 무게단위를 말한다.

귀금속의 경우는 국내국외 할 것없이 kg단위 사용이 안되는 것같다.

 

여행과 관광을 혹시 동일시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지만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예를 들어 일주일에 3~4개국을 돌며 박물관 현관 앞에서

단체사진 찍는 것으로 시작하여 정해진 시간과 코스에 따라 빡빡한

여정으로 외국여행을 한다면 이것은 여행이 아니라 관광이다.

반면 배냥을 매고 민박을 하며 비싼 호텔에 투숙은 못하지만 방문하는

곳의 인정과 풍물을 느끼며 관광한다면 이것은 배냥 여행이 된다.

 

배추 나물잎 만을 먹고 자라는 애벌래가 배추나비 되듯,

솔나무잎 만을 먹고 자라는 송충이가 송충나방만 되듯

삶의 다양성을 이러저러한 이유로 저버리고 획일적인 사회규범을

만들고 편리만을 고집하는 인생은 곤충의 삶과 무엇이 다를까

 

삶에 있어서 여행이란 천혜의 풍광 앞에서 외치는

자연 예찬도  아니요

길 떠난 나그네의 휑한 客窓感 따위의

넋두리가 아니다

비록 낯선 도시 낯선 거리에서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자신이 사람임을 잊지 않고 해주는 것이리라.

 

여행의 본질은 어쩌면 익히 알고 있던 사실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이제껏 볼 수 없던 낯설음을 발견하고

이해하는 또 다른 만남의 과정이라고

 말 할 수 있겠다.

 

우리는 위 詩 귀천에서 그리 낯설지 않은 단어를 만난다.

 

새벽빛이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노울빛 /

기슭에서 /

구름 손짓 /

소풍

 

새벽 이슬이랑 , 저녁 노을 , 흘러가는 구름이랑 손잡고 가는

잠깐 동안의 소풍이라고 말하고

이 시에서 시인은 삶이니 죽음이니 무욕, 초월, 달관이니

관조 같은 언어를 쓰고 있지는 않치만 불행과 외로움의 짧은 삶 속에서

본인 직접 겪어서 생의 바닥을 쳐본 사람만이 갖는 순도 높은 미덕이

고여 있음을 우리는 본다

 

**

 

08.5.29.  한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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