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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생명으로 시작하여
그리움으로 이어지는 것을
그리움은 뜨거운 사랑이며
가도 가도 닿을 수 없는 하늘인 것을
하늘은 영원한 것이며
영원은 항상 고독한 것을
아, 그와도 같이
인생은 사랑으로 이어지는 황홀한 희열이며
아름다운 적막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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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생은 ” / 시인 :조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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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이 간다
모처럼 며칠 전 여의도 윤중로에 벚꽃을 찍으러 갔는 데
흐린 날씨에 황사까지 겹쳐서 만족으런 결과는 얻지 못했다
청명도 지나서 그런지 법원 정원에 심겨져 매연에 찌는 나무
등걸이에도 물오름이 보인다
절기인 곡우(4/20)도 십일 앞으로 다가왔다
고로쇠나무, 자작나무, 박달나무들의 홍역기가 아닌가
청명기의 수액은 남자에게 좋고 곡우기의 수액은 여자에게
좋다고 하던데 관이 꽂혀있는 나무들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시인들은 벚꽃을 겨우내 아팠던 나무에 신열이 올라 온 몸에
돋은 열꽃이나 피할 수없이 아픔을 낳는 젊은 날 풋사랑의 불꽃
등으로 보는 것 같다
無問關(무문관) 제41칙에 達磨安心이란 公案이있다
二祖 入雪 斷臂云 2조(혜가)가된 신광이 자른 팔을 눈속에 서서 들고
弟子心未安 乞師安心 제마음이 평안치 못하니 스님께서 편안케 해주소서
達磨 將心來 爲汝安 달마 왈 그마음을 갖고오라 그러면 편안케 해주마
祖云 覓心 了不可得 혜가 왈 마음을 아무리 찾아도 얻을 수 없습니다
磨云 爲汝安心意 달마 왈 내가 이미 네마음을 편안케 하였다.
祖師西來意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 ) - (중국 측에서 보면)>
저도 관음경을 보면서도 이 뜻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이미 아시는 분이 많겠지만 달마대사는 불조법맥으로는
28대 법손이고 세속으로는 남인도 향지국왕의 셋째 아들이다
달마가 천축(인도)에서 중국으로 온 해는 양무제 보통원년 9월로
이미 양무제의 도움으로 수많은 절과 탑 스님들이 길러지고
수많은 경전이 읽혀지던 시기였다
북위 승산의 소림사에서 9년간의 면벽을 끝내고 선법을 전하던
중 528년 10월 중국 선불교(무문관)의 2대조인 제자 신광혜가에게
불심인(佛心印)을 전하기전에 일어난 이야기다
불조법맥 제1조인 마하가섭에게 행하신 세존의
蓮花微笑 以心傳心에서와 같은 가르침 이외의 과정(心法)과 같이
(나에게 더할 수 없는 바른 진리의 가르침(正法眼臧), 끝없는 진리의
자유로운 경계(涅槃妙心), 모든 것이 있으면 모든 것이 또한 없는
(實相無相), 깊고 묘한 길(微妙法門), 글자로 전할 수 없는(不立文字)
, 교설로는 말할 수 없이 따로 전하여야 할(敎外別傳) 진리의 법이
따로 있다, 이는 법인을 마하가섭에게 전하면서 하신 말씀)
중국 선불교도 보리달마에서 신광혜가에게 심법으로 전해진다.
지혜를 강조한 것이 화엄경이라면 사랑의 신비, 사랑을 보여 주는
것이 법화경이라고 한다
묘법연화경 妙法蓮華經
묘란 인간의 언어와 생각을 뛰어넘는 신비,
법이란 존재, 진리, 교법 등 우주만물을 만물이게 하는 절대존재를
지적하는 말이라고 한다
신비한 어머니의 품속에서 자라는 모든 만물을 연꽃으로 표현된다
이 법화경 제25. 관세음보살 보문품에 관세음보살에 대해 언급된다
보리달마는 네와 내 속에 있는 나이며 너(관음보살)인 묘법(사랑)을
깨우쳐주기 위해서 동쪽으로 왔고 돌아갔다고 생각한다.
일전에 관음에 대해 본 사이트에 짧게 적어 올린 적이 있다
우선 관음경 보문품 게(普門品 偈)송 제20을 보자
진관 청정관 眞觀 淸淨觀
광대 지혜관 廣大 智慧觀
비관 급자관 悲觀 及慈觀
상원 상첨관 常願 常瞻觀
여기에 五觀이 나오는데 간단히 설명하면 관음보살의
티 없고 집착에 더렵혀지지 않는 반야의 공관(空觀)인 진관,
淨不淨에 얽매이지 않는 가관(假觀)인 청정관,
허무함에 빠져들지 않는 중도관(中道觀인)인 지혜관,
사람들의 고뇌를 나의 고뇌로 관하고 모든 만물을 친구로
관계를 맺는 평등관(平等觀)인 비관,자관을 칭송한다
五觀 중 悲관과 慈관은 五音(관세음보살 보문품게송 제24)으로
대비해보면 비관은 海潮音( 바닷물이 매일 들고 나듯이 우리들
마음에 공감을 주는 어여삐 보는 눈)으로
자관은 世觀音(남이 울 때 자기도 남의 슬픔을 같이 슬퍼하며
울 수 있는 인자로운 눈)으로 연결되어 관음이 정리된다
관기음성 觀其音聲이란 말이 있다
예를 들면
엄마는 깊은 잠 속에 있어도 아들의 칭얼거림을 듣고
깨어나며 모습만 보고도 아들의 마음을 읽는 것이다
觀과 覺(각)은 같은 의미의 어원을 갖는 다고 하는 데
각을 알려면 學학자를 파자해보면 알 수 있다
즉 배울 학자는 보자기를 뒤집어 쓴 子아이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해달라고 배우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다 보이지 않는 데 보는 사람이 覺者다
선각자란 당대의 모든 이가 보지 못하는 것을 미리 보는 자다
보문普門의 의미는 어디서든지 드나들 수 있다(보편과 능통)
무문無問의 의미 또한 들고 나가는 데 제한이 없다는 것이다
즉 보는 자와 보여 지는 소리, 듣는 자와 들려지는 소리가
대립되지 않고 동화되는 것이 관음이란 말이다
관이란 본다는 뜻인데 저쪽에서 보여 오는 것을 보는
작용까지 포함하며
자신이 볼 뿐만 아니라 보여지는 것을 똑똑히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다는 것은 곧 생각(思惟)하는 일이며 파악하는
것이므로 소리를 본다고 해도 맞는 말이다
부연하면 관음이란 보는 소리 , 보이는 소리라는 의미다
물질생활을 강요당하며 무한경쟁이란 사각 링에서
인간의 존엄성마저 상실되고 , 큰 절망에 빠져 사물이
그 모든 무게를 상실하고 모든 의미가 희미해질 때,
인간의 원점인 존재에 대해 어리석은 질문을 던질 때
거울을 들고 거울 속의 자신을 보자.
달마가 동쪽으로 온 까닭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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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5월 한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