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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한 세대(1960~1980년대의 트로트) 3-2

**-  70년대 음악 (대중가요의 뿌리 깊은 이식성과 우리의 대중가요 트로트)    70년대 초반의 우리의 대중음악계는 어느정도 경제성장의 힘을 받아 동란의 고통에서 벋어나   중산층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했고 그것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원인이 되어 청년문화의 출현을   가져온다.   당시 청년문화는 통기타 문화라고도 할 수 있는데 종로와 명동의 음악감상실을 중심으로 시내   중심가부터 서서히 변화 시작되었고 방송을 통해 나중에 대중에게 폭 넓게 전파되게 된다.   70년대 초반의 포크송은 기성세대의 문화 , 성인문화에 대항하는 신세대 문화라는 구도 나타난다.    즉, 촌스럽고 질 낮은 노래라는 식의 감각적 반응이나  일본적인 것 보다는 더 새롭게 생각되는   미국적인 것이 세련되고 아름다워 보여 미적으..

트로트 한 세대(1960~1980년대의 트로트) 3-3

** * * - 80년대 팝발라드의 시대 , 트로트의 부활과 전통가요 완성 발라드는 음악에서는 자유로운 형식의 감상적인 곡조에 사랑을 주제로 한 서정적인 노래로 다양한 기법 중 일반적인 것은 중심되는 단어, 문구를 여러 번 반복하는 것이다. 80년대의 팝발라드는 미국 백인의 쉽고 평범한 음악으로 프랭크 시나트라, 앤디 윌리엄즈, 바브라 스트레이 등 탑가수들의 발라드와 팝싱이 혼성된 미국 대중음악으로 70년대의 팝송과는 대조적으로 화려한 선율과 화성이 특징적이다. 이용1981. 이선희1984 , 이광조, 이문세, 변진섭, 신해철, 이승철 윤상, 신승훈 등의 탑 팝발라드 가수들이 나온다. * 정치경제적인 면에서는 베트남 참전의 특수. 보상으로 경부고속도로 건설(1970)의 효과와 국제경제의 3저(유가, 금리..

단원 풍속도첩

** * [ 단원 풍속화첩 ] 들어가며 풍속화란 원래 동시대의 인간이 살아가는 생활상을 묘사하고 기록하는 예술로 주로 지배 계급층 보다는 피지배충의 생활을 주로 다루지만 이 계층과 밀접하게 연관된 지배계층의 생활도 자연스레 포함되기도 한다. 단원이 남긴 풍속화에는 대개 병풍과 '단원풍속도첩'처럼 첩이 형태로 되어 있있다. 총 25점으로 된 시리즈형 풍속도첩인 단원풍속도첩은 보물 제527호로 지정되어 이촌에 위치한 중앙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도첩의 크기는 가로 세로 27cm x 22.7cm 이다. 여기에는 총 16점을 올렸는 데 그림을 감상하는 분들의 감상을 돕기 위해 몇가지 관상 포인트를 적어 본다. -. 작품 "서당", "무동"에서와 같이 판소리 장단처럼 형태가 다른 선의 굵고, 가늘어지기 그리고..

혜원 풍속화 전신첩

** * 풍속화 , 혜원전신첩 . 근역서화징이란 오세창이 1917년 편찬하고, 1928년 계명부락부에서 간행한 한국 역대 서화가 사전이 있다 324면의 국판으로 ‘국역’이란 우리나라를 일컫는 말이다 여기에 수록된 서화가를 종합하면 신라시대부터 조선 철종까지 화가가 392명, 서가는 576명, 서화가는 149명으로 모두 1,117명라고 한다. 서예가인 오세창(1864-1953)의 부친인 오경석은 추사 김정희의 제자로 당시 천죽재란 큰 서화의 수장고를 보유했던 예술품 수집가였다. 조선말기에 역관이었으며 기자 그리고 대한민보의 사장을 지냈던 위창은 예술적 분위기의 가문의 영향으로 조선시대 서화에 대한 정보와 감식안을 두루 갖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편찬한 ‘근역서화징’ 에서 혜원에 대한 소개로는 ‘화사약..

오원 장승업 작품 감상

** 조선의 르네상스는 영조·정조 때부터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인조 때의 병자호란과 선조 집권 시 임진왜란이란 2대 전란의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었고 , 특히 정조임금은 규장각 기구를 통해 초계문신제도를 실시해서 왕권을 강화하는 한편 신해통공, 서얼차별 완화, 서양 과학기술 등을 수용해서 왕국의 경제도 많이 부강해져 서민들도 문화생활에 접할 기회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젊고 유능한 정조임금이 갑자기 타계 후, 순조임금의 수렴청정을 비롯하여 세 차례의 수렴청정 등으로 외척의 득세한 세도정치로 인해 삼정이 문란해져 고종 때에 와서는 조선은 외세에 뿌리채 흔들리게 된다. 고종임금은 1873~1875년 3년간 개혁·개방정책을 단행했으니 아쉽게도 왕정정치를 고수한 가운데 아까운 인제들을 너무 많이 처단함과 ..

서귀포 칠십리

** 금년(을해년) 소한이 일주일 남았다. 오늘은 제가 자란 서귀포의 풍광에 대해 지면이 허락하는 만큼 반추해 본다. 서귀포 칠십리는 올레길 6코스와 7코스를 합한 거리와 해안굴곡을 고려해 보면 맞아들어간다. 구서귀포 도심 주변이 10km라고 하지만 신서귀포까지 포함하면 남제주군을 대표하는 범위다. 해변은 보목리해안부터 공물해안까지 시 생태공원은 해안에 연결되는 시냇가의 주변이다. (올레6코스-14km/ 7코스-10.7km) 1.보목리 포구 주변 섶섬을 마주보고있는 보목리(볼목리)는 태우배 타기로 유명한 바다로 흐르는 쇠또각을 안고 있으며 귤맛이 좋은 옛부터 사람 살기 좋은 포구 마을 이다. 땅값을 올려 놓은 유명 코메디언 이주일 있었고, 요즘은 해저잠수 와 요트장소로도 유명하다. 2. 쇠고깍(쇠또각) ..

김환기의 작품세계 감상

** * * * 김환기(1913~1974)화백의 작품세계는 그가 1934년 아방가르드 양화연구소를 설립하여 추상미술운동참여하고, 도쿄 니뽄대학의 미술학부및 동 대학원 미술학 석사과정을 마친 1936년, 긴자 기노구니아 회랑의 4회 전시회를 비롯, 1937년 도쿄 아마기 화랑의 제1회 개인전을 개최한 일 그리고 귀국 후 해방 전후 서울대 미대교수로 제직하며 신사실파적 뉴모더니즘운동을 전개하뎐 시기를 포함, 즉 1930년대 본격적으로 규비니즘적 순수조형을 탐구하며 추상미술의 길에 들어서 귀국하여 해방 전후 1948년 신사실파 그룹을 조직하여 활동했던 기간을 화백의 초기미술 수업시대로 보고 있으며 대표작으로 향(1937). 혼도(1938) 등이 있다. 파리체류(1956~58) 3년을 포함하여 전통적인 한국의 ..

겸재 정선의 경교명승첩

** * 겸재는 영조16년(1740년) 경신년 겨울 65세 나이에 양화나루 건너에 있는 양천현의 현령(종5품)으로 승진 발령된다. 양천은 지금 강서구 가양동으로 서해의 세곡선이 오르내리는 경강의 인후에 해당하며 한성부와 강화를 연결하는 요충지였다. 뿐만 아니라 삼각산으로부터 북악산 인왕산으로 이어지는 화강암봉들과 남산 그리고 한강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펼쳐져 天下絶勝을 만들어내고 있어 그 내력을 일목요연하게 조망할 수 있는 곳은 양천만한 곳이 없다. 지금도 한강하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아득하게 넓어지는 강폭을 앞에 두고 바라보면 그 곳이 서울 북산을 관조하기에 더 없이 좋은 장소임을 알 수 있다. 사생을 위해 승선하여 경강을 오르내리는 것 외 양천현아 뒷편 나지막한 궁산에 오르면 눈에 담기는 풍광이 그대..

탐라를 찾아서

**           *나는 남제주군 서귀포 하논 위 강정 출신이다(하논: 샘이 있어 가장 물이 많고 맑은 넓은 들) 첨으로 자료를 조사하게 된 이유는구름 너머 밝은 보름달을 보거나 수밀도를 흰 천으로 얇게 감싼 엉덩이가 풍만한 여성의 모습에서 유년의 꿈을 보기 때문이다.제주의 한, 잠녀의 한 , 그리고 만월을 쓰려다가너무고 빈약한 제주의 역사조사 기록과문화 유적지의 빈약한 보전상태를 보고제주인의 더 많은 관심과 실질적인 조사연구 및과거 보전에 보다 많은 관심을 촉구하며      평범한 탐라 재경인의 입장에서 쓴다. 근래에 와서 차연(differance)이란 말에 관심을 갖게되었다.이 신조어는 알제리 태생인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가 최초 사용했고철학자 들뢰즈(G. D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