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 좋은 창가/제주도 관련

서귀포 칠십리

haanbada 2023. 1. 23.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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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을해년) 소한이 일주일 남았다.

오늘은 제가 자란 서귀포의 풍광에 대해 지면이 허락하는 만큼 반추해 본다.

서귀포 칠십리는 올레길 6코스와 7코스를 합한 거리와 해안굴곡을 고려해 보면 맞아들어간다.

구서귀포 도심 주변이 10km라고 하지만 신서귀포까지 포함하면 남제주군을 대표하는 범위다.

해변은 보목리해안부터 공물해안까지 시 생태공원은 해안에 연결되는 시냇가의 주변이다.

(올레6코스-14km/ 7코스-10.7km)

 

올레코스-6~7코스 지도

1.보목리 포구 주변

 

 

섶섬을 마주보고있는 보목리(볼목리)는 태우배 타기로 유명한 바다로 흐르는 쇠또각을 안고

있으며 귤맛이 좋은 옛부터 사람 살기 좋은 포구 마을 이다.

땅값을 올려 놓은 유명 코메디언 이주일 있었고, 요즘은 해저잠수 와 요트장소로도 유명하다.

 

2. 쇠고깍(쇠또각) 주변

 

 

해안도로 쪽으로 강폭이 넓어 토우선을 타 볼만하다.

3. 구두미포구 해안

 

 

검은여란 밀물 물때면 수면하로 잠기는 검은 바위를 말하며 수산물이 많이 서식하는 곳이다.

섶섬이 왼편으로 보이는 이주변 해안에는 해초와 전복 해삼류가 많이 잡혔다.

옛사진을 1장 올려 본다. 검은 잠수복을 입은 걸 보니 그리 오래전 사진은 아니다.

 

옛사진

4. 검은여 해안

 

물질로 유명했던 해안

 

5. 정방폭포 해안

 

 

초등학교 시절 여름이 되면 가족, 친척과 함께 소정방폭포에 가서 물맞고 시원한 수박을 먹던

추억이 새롭다.  폭포수의 수원이 되는 정모시 내(하천)를 따라 정모시공원 ,서복불로초공원이

근래에 만들어졌다.

정방폭포는 영주10경 중의 하나로 높이 23m, 폭이 10m 가 넘는 폭포수가 해안으로 떨어지는

동양 최대로 큰 폭포이다.

 

6. 정모시 공원

 

 

* 정방폭포 풍경

 

 

 

정방폭포를 올라와서 올레길6코스의 종점인 서귀포 올레시장으로 향하면

칠십리 이중섭 툭화거리에 도달하게 된다.

화가의 기념관에서 보면 폭포를 좌측에 그리고 우측으로 소나머리해안으로 연결된다.

 

* 이중섭 화백이 머물렀던 곳

 

 

전시관

* 작품(서귀포)

 

 

 

 담뱃갑 은종이 껍질로 그린 조그만 그림 속에 꽃게가 나오는데 사실 자구리해안에

꽃게가 참으로 많아서  초등학교시절 동료들과 함께 깡통을 들고가 여러가지 해산물

(게, 전복, 해삼, 장어, 등)을 잡아 삶아 먹었다.

 나중에, 지금보다 작았던 이중섭기념관을 찾고 놀란 것은 우리 가족이 옛날 살았던 집

이웃집 같았다.

 

6. 소나머리, 자구리 해안

 

 

16년전에 찍은 사진

거의 비슷한 시기인 것 같은데 윗사진은 완전한 썰물상태가 아니고 밑 사진은 해수가

다 든 상태인 것 같다.

소나머리의 특징은 갯천이 해변으로 연결되어 있지않고 절벽인

암벽에서 용천수가 쏱아지고 바위 밑 바다밑에서 민물(수)인 용천수가 솟아 난다는 것이다.

겨울에도 얼지 않고 멱도 감을 수 있다.

 

뒷쪽  암벽에서 용천수가 쏱아져 나와 여름에 민물로 목욕하는 자연탕이 있다.

윗쪽 계단에서 본 광경

 

 

소나머리 바위언덕 밑에 콘크리트 구조물로 전경이 좋다.

바로 앞 사진은 이 구조물 밑 자연상태 바다이다

 

소나머리에는 다이빙하기 좋은 천연 주상절리 다이빙 바위가 정방폭포 절벽쪽으로 있다.

 

소나머리에서 자구리해안이 연결되어 있고 멀리 서귀포항구로 이어진다.

 

자구리 앞바다, 해녀들이 단체로  미역따러 물에 뛰어드는 모습을 찍은 사진

 

 

자구리 검은여 바윗돌이 많이 깔려 있는데 거의 다 지반에 붙어 있는 용맘 바위들이다.

썰물이 되어 물이 빠져나가면  낚시도 하고 소라 전복 등을 잡았는데 큰 민믈장어도 꽤 있었다.

장어경우는 지금 생각해보면 때죽나무, 열매나 가지를 찍어 풀면 장어가 나왔다,인 것 같다.

 

기차처럼 이어져 나간 용암바위로 자구리해변 좌우가 구분되며

우측으로 포구까지는 수영은 잘 않한다.

파도가 치는 경우는 밀물 때로 자구리 여들은 거이 물에 잠긴다.

 

*

소나머리.자구리해안 절벽 위쪽에 위치한 언덕에는 시문화예술 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본인이 어릴적 다니던 서귀국민학교는 여기에서 서북쪽에 있었고, 바다가 조망되던 이쪽으로는

고아원 건물이 절벽쪽에 있었고 , 넓은 논이 있었고 주위에 흐른는 소천에는 수생생물이 많았다.

 

7. 서귀포 포구 해안

 

 

50년도 중후반 국민학교 갓 입교시절  천지연폭포로 가는 입구 윗 쪽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본 서귀항 관경

 

60년도 새섬 입구 지금은 서귀항 방파제 위를 미역 따기 위해 물질하려 나가는 해녀들

 

서귀포항

1925년 일제시대에 포구 바로앞 새섬 쪽으로 216m 방파제를 축조하는 것을 시작으로 각종 항만시설이

갖추어 1968년 2종항으로 1971년 1종 지정항으로 승격되어 현재 항만법 상 무역항으로 지정되어 있다.

 

제주도의 여느포구처럼 서귀항도 배후에 천지연폭포가 있는 서홍천-연외천(솜반내),약 1km, -천지연천과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지금은 걸매생태공원, 칠십리생태공원, 천지연 국민관광지구가 연달아 이어진다.

샘물은 발원 수원지인 고냉이소(고양이 샘)로부터 솜반내(연외천)란 이름으로 흘러 절경인 천지연 절벽 위에서

떨어져 폭포를 이룬다. 문제는 1968년 11월 건설된 선일포도당공장이었다.

고구마(감저)를 부셔서 물로 침전시켜 얻은 녹말가루로 포도당을  현대식 공정으로 만들었다(박정권 시절)

관광자원 과 산림자연보호 보다는 우선 먹고사는 것이 시급한 시절이었다.

눈으로 본 사실이지만 80년대까지는 우리가 어릴적 헤엄치던 맑은 물은 사라지고 수량은 말할

것도 없이 공장패수가 흘러 항구와 천지천이 만나는 지점은 물은 썩고 냄새도 진동했었다.

결국 공장은 관광객에 밀려 전북으로 이전했다.

 

수원지인 고냉이(고양이)소의 모습이다.

위쪽에서 취수로 정체되었었던 냇물이 밑 사진에서는 흐른다.

 

 

 솜반내(연외천)으로 어릴적 이곳에서 여름에 물놀이를 하며 놀았다.

 그 당시는 다리라는 구조물은 없었다.

 서홍동 2568번지에서 발원한 서홍천은 서홍교 근방에서 호근천과 합류하고 하류에서 연외천과 합류한다.

 사실 천지연폭포로 흘러내리는 이 솜반내에는 주변 암반에서 용천수가 나와서 일년내내 수량이 풍부하다.

 서홍천 발원지에서 여기까지 거리는 약 5.7km정도 된단다.

 

* 걸매생태공원 모습이다.

 

* 칠십리 생태공원 모습이다.

 

 

* 다음은 천지연폭포다.

 

 

유명한 관광지 중에 하나인 천지연폭포는 높이 22m, 너비 12m, 수심 20m이다.

기암절벽의 절경을 이루고 있고 아열대성, 난대성 상록수가 우거져 울창한 숲이

폭포에서 바다쪽으로 형성되어 뻗은 깊은 천지연계곡 내 장관으로 무성하다.

이 일대는 천년보호지역으로 지정되어있다.

폭포 아래쪽 수심 20m 소 속에는 열대어의 일종인 무태장어가 서식하고 있다.

 

8. 새섬해안

 

 새연교를 건너면 새섬공원으로 건너 갈 수있다. 너머로 보이는 섬이 문섬이다.

 서귀포시 서홍동 서귀항에 위치한 연결다리로 2009년 9월 준공한 길이 169m 폭 4~7m 다리이다.

 

새섬에서 보이는 본섬쪽 해안 절벽은 해양도립공원으로 옛날에는 황무지로 불렸다.

선사시대 조개화석 무덤이 줄비했었다. 우측으로는 서귀포구 마을이 있었고 모래사장이 좋았다.

아직 타보지 못했지만  이곳에서 해저 관광 잠수함 이용이 가능하다. 왼쪽으로 황우지 해안과 연결된다.

 

 

 

9. 황우지해안

 

이 해안은 여러가지로 유명하다.

해방 후는  제주도 주재 고정간첩과 접선하려던 무장공비를

일망타진한 전적비가 있거 저 멀리 새섬 연육교가 보인다.

 

 

항우지해안 절벽에 구멍이 보이는 데

이것은 일제말기 앞바다를 지나는 연합군 군함을 저격하려는

 비밀병기 반 잠수정 운용하던 가미가재특공부대가 숨어 있던 인공동굴이다.

 

 

해안 위쪽에는 해상공원을 종주하는 올레길6코스와 7코스가 만나는 지점이다.

 

 

황우지해안가에 있는 천혜의 비밀 자연해상수영장(선녀탕)이 있다.

여름에는 인파가 꽤 모이는 명소다.

 

 

10. 폭풍의 언덕해안

 

남인수선생의 노래비

 폭풍의 언덕(바람모지)은 바람 많은 제주도 해안에서는 여기저기에 있다.

 황우지해안 위쪽 바람모지나 멀리 보이는 외돌개 너머 언덕도 바람이 꽤 쎄다.

 

11. 외돌개해안

 

 

오돌개해안으로 시선을 옮기기전에 한라산 정기가 남쪽으로 맺어 힘껏 솟아올라 구룡을 이룬 산

삼매봉을 살펴보자. 정상에 오르면 한라산과 남해 끝 마라도가 보인다.

산책로 입구부터 약300m 길을 밟아야 도착되는 삼매봉의 정점에 팔각정 인 남성정이 있다.

불로장생 항성 남극성이 보이는 곳 비록 지금은 세차운동에 의해 보이지는 않치만 희미하지만

시그마별이보인다고 한다.  현판시비

 

한라산 정기 뻗어 이룩된 큰 봉우리
세송이 매화 닮아 삼매봉되었던가
칠십리 푸른 구비 외돌괴로 돌아드네
그 옛날 왜관들이 바다로 침노할 제
조상님 봉화 들어 사위를 경계하니
여기가 탐라 지킨 망대가 완연코나
남극천 저 멀리에 노인성이 반짝이고
수복을 비는 길손 남성대 메웠으니
아마도 지상선경은 여기련가 하노라  <현화진>

 

* 삼매봉

삼매봉은 해발 143.6m 면적 334평방km가 되는 사흥동 819번지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 서면 동으로는 서귀포 구시가지 서로는 외돌개해안 너머 공물해안까지 보인다.

 

 

주차장을 건너 해안으로 내려가면 밑으로 깊은 계곡이 내려다 보인다.

 

단체사진 찍는 포토죤

 

외돌개 일대의 지질은 조면안산암으로 암회색 용암으로 기공이 거의 없이 치말하고

유동구조가 잘 보이며  판상절리와 주상절리가 발달하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외돌개는 높이 20m vhr 7~10m로 된 돌기둥으로 파도의 차별침식작용에 의해 강한 부분만

기둥모양으로  남은 것이다.

 

 

12. 공물해안

 

( 흔히 무명해안으로 불리는 이 해안은 공물해안이다 .)

 

 

 

* 외돌개해안을 통해 서로 가면 비경이 숨겨있는 돔베낭골 해안이 우리를 반긴다.

 

*  < 해안 사구>

특히, 해안사구는 염생식물의 보고이다.

바닷물이 있으면 육지 식물이 잘 자라지 못하지만, 바닷물이 침범하기 어려운 해안사구에는

소금기를 머금고 살아가는 식물인 ‘염생식물’ 군락이 살고 있다.

해안사구에는 키가 작은 풀에서부터 나무들이 다양하게 있어서 하나의 독립적인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고

바다로부터의 세찬 바람을 막아주는 방풍 역할도 해주고 있다.

 

해안사구에 분포하는 식물은 먹이연쇄의 근간으로서 중요한 생태적 지위를 갖는다.

초본식물은 모래땅을 덮어 바람에 의한 모래 이동을 방지하고 토양을 고정하는 기능을 하며,

배후지를 보호한다. 하지만 해안사구는 외부 영향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역으로서

일시적인 교란에도 생물종의 감소 또는 소멸이 급속하게 일어난다.

그럼에도 제주도 해안의 사구는 그동안 해안도로와 항포구 개발, 관광시설, 숙박시설 등으로 상당 부분 훼손된 실정이다.

 

위에 서술한 해안사구의 기능은 한반도의 해안사구와 크게 다를 게 없지만,

제주도 해안사구만의 큰 특징이 있다. 바로 해안사구 아래 형성되어 있는 용암동굴이다.

이를테면 김녕의 경우에 해안사구 아래에 형성된 당처물동굴과 용천동굴은 다른 용암동굴보다 독특한 종유석이 만들어진다.

비가 올 때마다 해안사구의 모래 중 탄산염 성분이 동굴 속으로 녹아 들어가면서 독특한 종유석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로 인해 용천동굴은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동굴 경관을 갖게 되었다.

용천동굴은 제주도가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는 곧 해안사구가 용천동굴의 신비스러운 경관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출처 : 제주의소리(http://www.jejuso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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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귀포를 아시나요

 

 

 

2.  서귀포 70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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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2년 <서귀포 칠십리>남인수  조명암/박시춘  노래에 붙여

    저녁노올 곱게 물든 칠십리 해안가 바다 너머로 돛단배 몇 척이 떠 있는 서귀포 전경이 보이는 곳에

    작사가 조명암(본명 조영출)이 서 있었고 옆에는 철썩대는 파도에 조약돌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시절은 봄으로 서귀포는 한 폭의 수채화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는 혼자 증얼거렸다.

    "지금 서귀포를 써두지 않으면 안돼, 서귀포는 언젠가는 훼손되고 말거야, 자연경관들이 모두

     파손되고 말거야"

     때는 일본이 일으킨 대동아전쟁이 막바지를 달리고 있었다.

     익년부터는 조선전역에 강제징병동원령이 발령되어 남자들은 노역자, 탄광광부, 부두 노동자로

     여자는 심지어 정신대로 끌여가게된다.

     서귀포에는 해군기지를 건설하는데 반잠수 가미기제 잠수정을 은익할 동굴도 해안에 파게한다.

     '바닷물이 철썩 철썩 파도 치는 서귀포

      진주 캐는 아가시는 어디로 갔나

      휘바람도 그리워라 쌍돛대도 그리워

      서귀포 칠십리에 물새가 운다.'

     작곡은 작곡가 겸 연주자인 박시춘(본명 박순동)이었다.

     경남 밀양 출생으로 부친은 기생 양성소 권번을 운영하는 분으로 어릴적부터 음악을 가까이했다.

     작품으로 <애수의 소야곡>1937, <가거라 삼팔선>1946, <신라의 달밤>1948,<이별의 부산 정거장>     

     노래는 가수 남인수다. 본명은 강문수 경남 진주 출생이다.

     <항구의 청춘시>1939, <울며 해어잔 부산항>1940, <서귀포 칠십리>1943  등 다수가 있다.

 

  * 서귀포 칠십리의 역사적 유래

     1679년(숙종5년) 당시 제주목 정의현 현감 김성구가 쓴 "남천록"에 정의현청 관아에서

     옷귀(의귀리)까지 30리, 옷귀에서 서귀포까지가 40리다. 라는 문귀가 있고,

     18세기 말에 쓰인 "제주읍지"의' 정의현지'를 보면 '서귀리'는 정의현청 관문에서 서쪽으로 70리

     거리에 있다. 천지연도 70리 거리에 있고' 서귀포'도 서쪽으로 70리 거리에 있다. 라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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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 1. 1.  한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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